익숙한 낯섦
하라 켄야 디자인에 담긴 질문들
2000년 도쿄의 복합문화공간 스파이럴(Spairal)에서 한 전시가 열립니다. 전시 제목은 <리디자인 – 일상의 21세기>로, 총 32명의 디자이너들이 참여했죠. 이들은 ‘약간의’ 새로움을 더한 일상 용품들을 선보입니다.

건축가 시게루 반은 ‘네모난’ 화장지를 만들었고요. 조명 디자이너 멘데 카오루와 건축가 켄고 쿠마는 ‘나뭇가지’ 성냥과 ‘두루마리’식 바퀴벌레 덫을 제작했습니다.
일본에서 시작해 전 세계를 순회한 <햅틱> 전시도 마찬가지인데요. 해당 전시의 요구 사항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형태나 색이 아닌 촉각적인 요소로 디자인의 ‘본질’을 감각하게 할 것’.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사뭇 다른 감각의 물건들을 보여줬습니다. ‘종이’로 만든 벽시계, ‘실제 과일’ 같은 주스 팩, ‘물렁한’ 젤 소재 리모컨이 그것이죠.

이러한 전시를 기획한 사람. 바로, 일본의 그래픽 디자이너 하라 켄야(Hara Kenya)입니다. 무사시노 미술대학을 졸업한 그는 1991년 본인의 사무소인 하라 디자인 연구소를 설립, 2002년부터 지금까지 무인양품의 아트 디렉터를 맡고 있죠.
하라 켄야는 ‘좋은 디자인’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좋은 디자인은 해답으로서가 아니라, ‘질문’으로서 사람들을 일깨우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디자인을 통해 세상에 던지고 싶은 ‘질문’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질문은 디자인의 ‘본질’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상황’을 디자인하다
“나의 강점은 … 다시 말해, 사물이 아닌 상황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하라 켄야는 현재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매스매티카(Mathematica)’를 말합니다. ‘매스매티카’는 수학(Mathematics)의 어원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검토하거나 재고함’을 뜻하죠. 그러니까 새로운 ‘발명’ 보다 기존 것에서의 ‘발견’을 의미합니다.
가령, 하라 켄야는 <리디자인> 기획을 통해 “디자인을 발견할 수 있는 ‘의외의 장소’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싶었다”고 말하는데요. 앞서 나왔던 화장지와 성냥, 벽시계와 리모컨은 일상의 여러 곳에서 무감각적으로 사용되죠. 하지만 하라 켄야는 무심코 사용했던 것들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상황. 그런 상황에 대한 ‘감각’을 제공합니다. 이것이 그가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리디자인’은 우리 생활 속에서 익숙한 물건들을 다시 만들어 보는 것이다. 이미 익숙한 대상들을 마치 '처음' 접한 것처럼 바라보는 시도라고 말해도 좋다.”
이러한 감각은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의 미지화’라는 그의 말처럼, 알고 있던 것 앞에서 갸우뚱해지는 ‘미묘한’ 감각의 디자인이죠. 이는 하라 켄야의 “정보의 건축(Architecture of Information)”과 깊은 연관성을 가집니다.
아는 것을 ‘모르게’ 만들기
“세상은 온통 네모로 디자인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우리가 그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세상은 낯설어 보이기 시작한다.”
“정보의 건축”은 하라 켄야만의 디자인 사고방식입니다. 그는 이를 3단계로 설명하는데요.
첫 번째. 시각, 촉각, 미각과 같은 오감을 포함한 ‘다감각’의 외부 자극이 있다.
두 번째. 이것이 사람들에게 지각되면 과거의 ‘기억’을 건드린다.
세 번째. 그러면 그 안에서 ‘이미지’라는 일종의 심상이 형성된다.

그리고, 이것들이 쌓이면 하라 켄야가 말하는 “정보의 건축”으로 구축됩니다. 즉, 외부 자극이 과거 기억을 건드리는 그 지점에 느껴지는 ‘낯설고도 익숙한’ 감각들이 정보 건축의 구성 요소인 것이죠.
하라 켄야는 이를 “의도적으로 또 계획적으로 발생시키는 것”이 디자인 행위라고 말합니다.
그는 나가노 동계 올림픽 인쇄물 디자인에서 이와 같은 방식을 사용합니다. 올림픽 개회식의 차례를 설명하는 프로그램 북에서 프랑스어와 영어, 일본어의 ‘조판 방향’을 의도적으로 부딪치게 하는데요.

이는 국제 무대에서 처음 시도하는 레이아웃으로, 프랑스어와 영어는 ‘가로’쓰기를, 일본어는 전통적인 조판 방식인 ‘세로’쓰기를 사용하는 것이죠.
이렇게 구성된 문장 배열은 각국의 언어가 가진 ‘차이’를 드러냅니다. 전체 구조에서 느껴지는 ‘낯선’ 감각은 개인만의 감각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통된’ 감각이죠. 하라 켄야가 말하는 디자인의 본질은 바로 이러한 지점에 있습니다.
우메다 병원의 사이니지 프로젝트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사이니지가 ‘천’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기억 속 대부분의 사이니지는 플라스틱 혹은 철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기억 위에 천이라는 재료의 '촉각'과 백색이 주는 ‘청결함’의 이미지가 더해지면, 낯설지만 왠지 모를 안도감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나타나는 것이죠.
'본질'을 다시 묻는 일
하라켄야는 질문을 던지는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가끔씩 돌리고 있는 접시들을 툭툭 건드려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전이 멈추고 떨어지기 때문이다. …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한다.”
이처럼 그의 디자인에는 답은 없습니다. 본질의 감각을 건드리는 '질문'만이 있을 뿐이죠. 그가 말하는 그 본질은 근본적으로 나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라 켄야는 이러한 공통된 감각을 '발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미 그곳에 있던 것을 발굴하고, 다시 표면 위로 끌어올릴 뿐입니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매스매티카'이고, '정보의 건축'이며, '리디자인'의 본질입니다.

어쩌면 좋은 디자인이란, 우리가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잠시 멈춰 서게 만드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멈춤의 순간,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처음 보는 눈으로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러한 경험이 있나요? 아마 그곳에 하라 켄야가 말하는 디자인의 본질이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