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축하를 위해 떠난 9,000km의 여정

스페인 결혼식에서 발견한 축하의 본질

단 한 번의 축하를 위해 떠난 9,000km의 여정
이미지 출처 : 황예지 에디터

행진곡과 청첩장의 행렬로 분주한 5월. 교복 입은 학생의 모습으로 기억 저편에 멈춰있는 친구들의 결혼 사진을 볼 때면 여전히 기분이 이상합니다. 당장 결혼 생각도, 미래를 함께 하고 싶은 사람도 없지만 남몰래 상상해보게 됩니다. ‘나의 결혼식은 어떨까?’하고 말이에요.
이처럼 누구나 한 번쯤은 "인생에 단 한 번"이라는 주문 같은 말에 기대어 ‘나만의 결혼식’을 그려본 적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난한 준비 과정과 유래조차 알 수 없는, 연쇄 소비의 롤러코스터 같은 요즘 결혼 문화를 따라가다 보면 ‘결혼식은 왜 하는가?’, 그리고 ‘어때야 하는가?’ 질문하게 됩니다. 

그런 필자는 최근 마드리드에 살고 있는 스페인 친구의 결혼식에 초대 받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하루 온종일 이어진 낯설고도 뜨거운 축제 속에서 잊고 있던 그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됐습니다. 마드리드에서의 아주 개인적인 기록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결혼식과 축하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친구로부터 받은 청첩장, 이미지 출처 : 황예지 에디터

D-1 : 사랑하는 la niña(스페인어로 ‘여자아이’)를 위해 모인 마음


(1). 날씨 요정 수녀님과 13개의 달걀

촘촘하게 짠 일정 탓에 결혼식 바로 전날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결혼 준비로 바쁠 신부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섰지만, 친구는 늘 그렇듯 환하게 웃으며 공항에서 필자를 맞아주었습니다. 내일 결혼할 신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평소와 다름없이 여유로운 모습이었습니다. 딱 한 가지, '비 소식'을 걱정하는 것만 빼면요.

집으로 가는 길, 친구는 스페인에서 결혼식 날 맑은 날씨를 비는 특별한 방법을 들려주었습니다.

"수녀원에 달걀 13개를 바쳐야 해."

이미지 출처 catholic365

성 클라라(Santa Clara)는 중세 유럽에서 맑은 날씨와 평화로운 결혼 생활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졌습니다. 스페인어로 '클라라(Clara)'는 '맑다'는 의미를 가짐과 동시에 달걀흰자를 뜻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생겨난 속설이 바로 클라라 수녀원에 달걀을 바치면 맑은 날씨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행운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를 더해, 스페인에서는 13개를 전하는 풍습이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신부 측 여자 가족이 이름과 결혼식 날짜를 적은 달걀을 수녀님들께 드리면, 수녀님들은 좋은 날씨와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일은 아니지만, 이런 귀여운 전통 하나가 결혼 준비에 작은 설렘과 이야기를 더해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지키고만 싶은 전통
: Something Borrowed, Something New, Something Blue

서양 결혼식에는 오래된 것, 새로운 것, 빌린 것, 그리고 파란 것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유래한 이 전통은 각각 과거와의 연결, 새로운 시작, 행운의 전달, 그리고 사랑과 순수를 상징합니다.

이미지 출처 : The Knot

친구는 가톨릭 집안의 넷째로, 두 명의 언니와 오빠, 여동생이 있습니다. 결혼식 전날, 이미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언니들이 하나씩 친구를 찾아왔습니다. 제각각 웨딩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빌린 것' - 언니의 귀걸이, 이미지 출처 : 황예지 에디터

동네 샵에서 네일을 받고 있는 친구에게 찾아온 첫째 언니. 보석함을 열어 귀걸이 세 가지를 꺼내 보여줬는데, 그중에는 본인이 결혼식 날 착용했던 것도 있었습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가까운 사람에게 무언가를 빌리면 그 행운이 전해진다는 믿음, '빌린 것'의 전통입니다. 친구는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필자의 의견도 진지하게 물으며 귀걸이를 골랐습니다. 긴 고민 끝에 당일 드레스를 입어보고 최종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웨딩드레스 디자이너인 둘째 언니는 '새로운 것'을 책임졌습니다. 자매의 결혼 때마다 세상에 단 한 벌뿐인 드레스를 직접 만들어 선물하는 것이 이 집안의 방식이었습니다. 친구 역시 언니와 함께 천과 디자인을 골라 자신만의 드레스를 완성했다고 했습니다. 새 드레스와 구두가 집에 도착하는 것으로, 내일을 위한 준비가 하나씩 갖춰지기 시작했습니다.

'파란 것'-행운의 파란 리본, 이미지 출처 : 황예지 에디터

마지막 '파란 것'은 사랑과 순수, 정절을 상징하며 악귀를 쫓는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친구는 웨딩드레스 안감에 작고 깜찍한 파란 리본을 달았습니다. 자신만 아는 방식으로 행운에 대한 믿음을 간직한 것이 무척 귀엽고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3). 아버지와 왈츠를, 동생에게 부케를

거실에서의 왈츠 연습, 이미지 출처 : 황예지 에디터

언니들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역할도 중요했습니다. 신부 입장을 함께하는 것과 본격적인 파티가 시작되는 2부에서 신부의 왈츠 파트너가 되는 것이 핵심 임무였죠. 신부와 아버지, 신부와 신랑, 그리고 파트너가 있는 커플들 순으로 이어지는 왈츠 전통은 결혼식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만큼 거실에 모여 온 가족이 함께 춤 연습을 하며 오후를 보냈습니다.

부케는 하나뿐인 여동생이 받기로 했습니다. 결혼을 앞둔 친구에게 주는 경우가 많지 않냐고 물으니, "그냥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동생에게 주고 싶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날 밤, 친구 방에서 함께 마지막 밤을 보내다 잠들기 전, 친구의 어머니가 방에 들어왔습니다. 누워있는 친구를 꼭 끌어안으며 "la niña(여자아이)" 하고 눈물을 글썽이셨습니다. 이미 세 명의 자식을 결혼시켰고, 친구의 나이가 적지 않음에도 영원한 아기로 바라보는 그 마음에 덩달아 울컥했습니다. 결혼 전 마지막, 그러나 평생 기억될 것만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가족 구성원의 정성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모여 결혼식 준비가 끝이 났습니다.


D-day :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하루, 브레이크가 고장난 축하 행진

(1). 자유로운 신부, 집에서 시작되는 웨딩 준비

결혼식 당일 아침은 분주하지만 나름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집으로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포토그래퍼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포토그래퍼는 오늘 처음 만났지만, 파자마 차림부터 드레스를 입는 순간까지 집에서의 준비 과정을 살뜰히 담아주었습니다. 덕분에 가족과 함께하는 자연스러운 아침의 풍경이 그대로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그냥 해주는 대로"가 컨셉이라는 말처럼, 메이크업은 아주 내추럴했고 드레스 역시 혼자 거뜬히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이었기에 친구는 그 어느 신부보다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모습이었습니다.


(2). 1부 : 성당에서의 가톨릭 혼인 미사

스페인의 결혼식은 크게 가톨릭 방식과 일반 웨딩홀 방식으로 나뉩니다. 최근에는 결혼식을 생략하거나 동거만 선택하는 커플도 늘었다고 하니, 한국과 비슷한 흐름입니다. 친구의 결혼식은 가톨릭 전통을 따라, 예비 신랑이 오래 다니던 성당에서 1부 혼인 미사를 올렸습니다.

1부 가톨릭 웨딩, 이미지 출처 : 황예지 에디터

가톨릭 혼인 미사는 일반 결혼식보다 훨씬 긴 호흡으로 진행됩니다. 신부 입장으로 시작해 강론, 혼인 서약, 반지 교환, 미사까지 이어지는 구성으로 보통 한 시간 이상 소요됩니다. 단순한 예식이 아닌, 신앙 공동체 안에서 두 사람의 결합을 서약하는 의식이기에 성당은 단순한 예식 '공간'이 아닌, 신랑 혹은 신부가 오랜 시간 신앙을 쌓아온 '장소'로서의 의미를 가집니다.


(3). 핀카(Finca)에서의 피에스타(Fiesta)

성당 예식이 끝난 후, 하객들은 각자 차를 타고 시골의 핀카(Finca)로 이동했습니다. 핀카는 스페인의 대규모 농가나 저택을 개조한 야외 결혼식 장소로, 2부 파티를 위한 전통적인 웨딩 베뉴입니다. 위치와 규모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예약 경쟁도 치열하다고 합니다. 친구 역시 깜짝 프로포즈를 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이 핀카를 찾아 예약하는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2부 핀카 웨딩, 이미지 출처 : 황예지 에디터
피로연의 시작을 알리는 냅킨 춤, 이미지 출처 : 황예지

전날 거실에서 연습했던 바로 그 왈츠로 본격적인 파티의 막이 올랐습니다. 신부와 아버지, 신부와 신랑, 신부 아버지와 신랑 어머니 순으로 이어지는 왈츠가 끝나자 디제잉이 시작됐고, 그 뒤로 무려 7시간이 넘는 피에스타(Fiesta)가 펼쳐졌습니다. 꼬마 아이들부터 70대까지, 스페인 가요에 맞춰 모두가 어우러져 춤을 췄습니다. 신부도 중간에 구두를 벗어던지고 운동화로 갈아신은 채 끝까지 함께 했습니다.

2부 디스코 파티 현장, 이미지 출처 : 황예지 에디터

하루 전체를 축하에 쏟아야 하는 이 문화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밤늦게까지 함께 춤추는 하객들은 피로해 보이지도, 억지스럽지도 않았습니다. 아마 서로가 서로를 기꺼이 축하할 준비가 된 사람들만 모였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처음 만난 사람끼리도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술잔을 나누고, 함께 춤을 추며 친구가 되어 갔습니다. 음악과 춤, 열정적인 응원을 언제나 즐길 줄 아는 스페인 특유의 오랜 기질이 진심으로 부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스페인 결혼식에서 배운 것

단 한 번의 경험이 스페인 결혼 문화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사례로도 충분히 느끼고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방식이자 고려해볼 수 있는 선택지가 됩니다.

친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꼭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스스로 구분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선택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웨딩 스냅도 없었고, 청첩장 속 사진은 일상복을 입고 산 위에서 찍은 단 한 장이었습니다. 포토그래퍼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결혼식 당일 처음 만났고, 모든 준비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그렇다고 친구에게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기준이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과 친구의 도움으로 준비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하나씩 채워나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완벽한 신부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마음껏 사랑받는 신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48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하며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전통을 지키고 이어가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요. 몸은 피로해도 마음이 커지는, 그리고 하객에게도 분명히 좋은 영향을 주는 결혼식이었습니다.


우리 세대가 이어갈 축복의 방식

언젠가 '그냥 결혼식을 안 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한 적 있습니다. 빠르고 똑같이 돌아가는 공장형 웨딩도, 남다른 취향을 증명하는 듯한 특별한 웨딩도 모두 피곤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고 해서 하지 않거나 싫은 문화로 치부하는 것이 과연 정답일까요?

결혼식은 본래 마을의 잔치이자 공동체의 축복이었습니다. 핏줄도 아닌 운명의 상대를 만나 평생을 함께하고 싶어진다는 것은 고귀한 일입니다. 그만큼 지속하기 어렵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 약속을 맹세하는 일은,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고 득실로 계산되는 시대일수록 오히려 더 중요한 의례일지도 모릅니다.

거대한 산업이 되어버린 웨딩 시장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남겨야 할까요. 어떤 규모든, 어떤 형태든 새로운 시작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이들에게 온 마음을 다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의, 혹은 자신의 결혼을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