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잠든 사이

너의 잠결에 나는 비로소 용기 있는 사람이 된다 악몽과 마주할 용기 죽음의 이별을 받아들일 용기 풋풋한 사랑을 꿈 꿀 용기 아, 사실을 말하자면 모두 거짓말이다 아마도 너의 그리움이나 욕망의 변신일 뿐 이런저런 용기는 그저 너의 명령어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너의 잠결에서 나는 젊고 순수하다 저만치 어린 나의 청춘이  아니, 너의 청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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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소식

진눈깨비 내리는 아침 까치가 들고 온 소식에 선운사 동백꽃 이야기도 있고 동박새 이야기도 있었다 사랑스러운 연둣빛 깃털로 마냥 어려 보이는 동박새는  꿀독에 빠져 세상사 아무것도 모른다는 둥 흉을 보았다 그나저나 까치가 동백꽃 소식을 물어왔으니 어이할까 하늘이 뽀얗게 눈이 내리면 동백꽃 내 심장보다 붉겠구나 꽃을 보러 가려는 게 아니니 다음을 기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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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이유

오늘 한 사람이 바다에 와서 사는 이유를 물었어 물고기라도 되려는지  바다 속으로 뛰어들 기세야 괜스레 겁이나서  엉겹결에 말했어 나는 작은 물고기라 뇌도 작고 아는 것이 없으니 큰 바다로 나가 혹등고래에게 물어보라고 사는 이유를 캐는 건 해초가 물고기의 단단한 비늘을 들추고 여린 살결을 더듬어 보려는 일 같은 거야 사람들은 왜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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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눈이 내려도

숲은  너무도 은밀하다 며칠 눈이 내리고 은빛 갑옷으로 무장한 겨울 숲일지라도 훔쳐보기를 멈출 수가 없다 산까치는 박새를 훔쳐보고 박새는 산토끼를 훔쳐보고 산토끼는 나를 훔쳐본다 나는 내리는 눈을  훔쳐보느라 모든 것을 놓쳤다 하늘도 나무도 지나가는 새도 내리는 눈송이에 은밀히 숨었다 숨어도  숨어도 낙하하며 훔쳐보는 눈이 수천수백만 개 쌓인다 내 두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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