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길러내는 정관스님의 한 상
천진암의 사계(四季) : 씨앗에서 장독대까지
밥상 앞에 앉으면,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하나요.
오늘을 버티기 위한 것인지, 오늘의 나를 대접하는 시간인지. 그 간극은 작아 보이지만, 켜켜이 쌓이면 결국 삶의 결은 달라집니다.
어느새 얼어붙었던 공기는 녹아내렸고, 웅크렸던 것들은 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림자가 점차 짙어지는 계절, 때로는 그 짙은 그늘 아래 뒤엉킨 마음을 차분히 풀어낼 공간이 간절해집니다. 그 쉼을 찾아 당도한 곳은 전남 장성 백양사 천진암, 바로 정관스님의 거처였습니다.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을 통해 전 세계가 그녀를 주목했지만, 정작 본인은 요리사가 아니라 수행자로 남아 있습니다. 대지에서 온 생명을 마주하고, 계절의 흐름에 순응하며 매일의 밥상을 차려내는 일 - 스님에게 그것은 수행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찰음식의 대가, 정관 스님이 수운과의 콜라보 디너 '선한 테이블'을 위해 서울을 찾았다. [사진 수운]](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12/30/09768238-f7bb-48db-af6d-2f784fdc142d.jpg)

우리는 외부의 기준이나 타인이 만든 레시피에 맞춰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스님의 식탁은 오랫동안 덮여 있던 밥상보가 걷히는 순간처럼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나답게 지키는 본연의 맛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온전히 돌보며 살아낼 수 있을까요.
봄의 싹틈부터 겨울의 묵직한 숙성까지, 천진암의 사계를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나의 거처’를 이 글에 옮겨 봅니다. 그 첫 문장은 소리 없이 찾아온 어느 봄날의 5일장에서 시작됩니다.

봄 — 선택
봄이 찾아왔습니다. 물론 봄이 왔다고 소리쳐 알리는 이는 없지만, 계절은 그것을 감각하는 사람의 몫입니다. 그 감각을 가장 성실하고 영민하게 바라보는 이만이 계절이 건네는 축복을 오래 누릴 수 있습니다.
정관스님은 봄이면 천진암 주변 5일장을 찾습니다. 조그만 바구니 하나를 놓고 나물을 파는 할머니들을 보면, 그곳에 봄이 와 있기 때문입니다. "할매, 이 냉이는 왜 저 집보다 뿌리가 더 길어?’ ‘뿌리가 긴 게 참냉이지, 여태 그것도 몰랐나." 스님은 그렇게 한 해의 봄을 배웁니다. 봄은 멀리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앞에 놓인 바구니를 ‘읽는’ 일입니다. 타인이 정한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내 눈앞에 당도한 것을 스스로 판별해 내는 주체적인 응시입니다.

그 감각은 자연스레 텃밭으로 이어집니다. 사람의 편의를 위해 그렇게 부를 뿐, 그곳은 자연이 제멋대로 자라는 공간이라 숲과 밭의 명확한 경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흐릿한 경계 덕분에 오늘의 밥상은 더욱 풍성해집니다.

스님은 씨앗을 뿌리며 안부를 묻고, 사랑과 감사함을 담아 채소를 보살핍니다. 산짐승이 내려와 밭을 망치기도 하고, 잔 벌레들이 먼저 포식하여 볼품 없는 모습으로 자라기도 하지만, 스님은 이 모든 것이 자연의 뜻이라며 찬미합니다. 통제할 수 없는 변수까지 기꺼이 내 일부로 받아들이겠다는 단단한 수용과 씨앗을 고르고 흙을 만지며 마주하는 모든 무질서를 온전히 품어내겠다는 의지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봄은 단순히 씨앗이 움트는 태동의 시기를 넘어, 나를 살아가게 하는 재료를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계절입니다. 그 선택이 가져올 불확실성마저 자신의 품에 안아 드는 힘 - 천진암의 봄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여름 — 수용
여름은 치열함의 계절입니다. 뙤약볕 아래 작물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생존의 강인함을 증명하고, 주방은 그 생명력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한 열렬한 수행의 공간이 됩니다.
“어디서 나고, 어떻게 내게 왔는지 식재료의 여정을 알아야 제대로 음식을 만들 수 있어요. 식재료를 알아가는 건 나를 알아가는 과정과 같죠. 그래서 음식을 만드는 건 수행입니다.”
![본문 이미지 - [신간] '정관스님 나의 음식'](https://www.news1.kr/_next/image?url=https%3A%2F%2Fi3n.news1.kr%2Fsystem%2Fphotos%2F2026%2F2%2F23%2F7761477%2Fhigh.jpg&w=1920&q=75)
사찰음식은 단순한 채식이 아닙니다. 불교의 ‘인연법(因緣法)’에 뿌리를 둔, 수행자를 위한 정진의 음식입니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의 마음이 된다는 믿음. 생존에 필요한 만큼의 햇빛과 물에만 의지해 나고 지는 생명체의 단순함은, 역설적으로 수행자의 정신을 가장 맑게 일깨우는 힘이 됩니다.
“가지가 크는데 거의 두 달이 걸리는데, 5~7㎝ 이럴 때는 그냥 쪄서 소금 간만 해도 부드럽죠. 10㎝ 정도 됐을 때에는 간장을 보태야 하고, 더 지나서 종자 씨앗을 만들려고 가지가 딱딱해지려고 할 때는 더 찌고, 깨소금, 기름을 보탭니다. 20㎝가 넘으면 그간의 에너지를 부드럽게 해줘야 나와 융화가 됩니다. 나중에는 튀기거나 전을 하지요.”
식재료의 본질과 꾸밈없는 자연스러움을 마주하는 것이 요리의 첫걸음입니다. 그렇기에 정관스님에게는 정해진 레시피가 없습니다. 계절과 성장 단계에 맞춰 재료를 대하는 태도가 매순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기까지의 숭고한 과정을 외면한 채 오직 재료의 무게와 양만을 측정하는 것을 스님은 ‘죽은 음식’이라 부릅니다.

스님은 재료를 온전히 존중하고 수용합니다. 고유의 특성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이 식재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우리 삶과도 닮아있습니다.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고유한 맛이 있습니다. 싱거운 사람, 매운 사람, 혹은 쌉쌀한 사람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타인의 본모습을 내 입맛에 맞게 바꾸려 과한 양념을 더하곤 합니다. 그것은 결국 욕심일 뿐입니다.


여름은 치열한 생명력이 넘치면서도, 살아갈 수 있을 만큼만 취하는 적당함의 계절입니다. 본질을 왜곡하지 않고 존재의 무게를 있는 그대로 느껴보는 것, 타인이 만든 레시피라는 매뉴얼을 내려놓고 눈앞의 대상과 온전하게 대화하려는 노력. 그것이 정관스님의 여름이 우리에게 전하는 관계의 미학입니다.

가을 — 비움
가을은 흔히 풍요의 계절이라 일컫습니다. 하지만 결실의 계절인 동시에, 품어온 잎을 떨구며 스스로를 가볍게 만드는 정제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정관스님의 가을 식탁은 이 비워냄의 미학을 가장 정갈히 보여줍니다.
사찰음식의 가장 큰 특징은 오신채(五辛菜)를 허용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파, 마늘, 달래, 부추, 홍거. 이 다섯 가지는 본디 열을 내는 성질이 있어, 차분하고 정적인 내제화를 추구하는 수행자의 몸과 마음을 흥분시킨다고 봅니다. 특히 마늘은 한식에서 빠지면 서운한 재료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의식적으로 거둬냅니다. 역설적으로 음식에서 강함이 빠짐으로써 재료가 지닌 본질적인 맛과 향은 더욱 도드라지게 됩니다.

오신채를 거두는 손길은 단순히 맛을 포기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내면의 소란을 잠재우고 인간 안에 깃든 자연성을 되찾으려는 깊은 호흡에 가깝습니다. 인간 또한 지구의 일부이기에, 가장 안정된 에너지 상태란 결국 자연의 순리에 가까워지는 것임을 글을 쓰는 이 순간 다시금 깨닫습니다. 오신채를 비워낸 자리에서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나듯, 소란을 걷어낸 자리에서 비로소 인간 본연의 균형이 회복됩니다.
'수행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비우는 것에서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생명이 가지는 태생적인 욕심을 인정하는 데에서 자연을 바라봐야 한다.’
비움은 포기가 아니라 인식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무언가를 덧붙이는 일에 지쳐 있습니다. 화려한 직함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너무 강한 양념을 치고, 그 자극에 우리 자신마저 절여져 갑니다. 그릇을 가득 채우는 것보다 언제든 비울 수 있는 용기가 먼저라는 것을, 가을의 식탁이 말합니다. 덜어내고도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 단단함을 아는 사람은, 더 이상 계절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겨울 — 숙성

천진암에 칼칼한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눈마저 내리면 자연의 혈관 또한 얼어붙어, 고요한 맥박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세상이 멈춘 듯 보이지만, 천진암의 장독대에는 가장 느리고 정교한 일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 독 안에는 8년 묵은 된장, 20년 묵은 간장, 10년 묵은 감식초가 시간을 머금은 채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정관스님은 매년 음력 3월 3일 삼짇날이 되면 장을 담급니다. 스님은 사찰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늘 발효를 꼽습니다.
“음식 했을 때 풋내난다고 하죠. 맛이 안들었다고 하잖아요. 농사짓는 콩을 삶아서 된장을 담고 메주를 만들면 40~50일 동안 마르면서 저절로 떠요. 환경만 만들어주면 자연적으로 발효가 되는 거죠. 자연의 바람, 구름, 햇빛, 이슬 다 합쳐서….”

발효는 사람의 손길이 아닌 균과 온도, 습도, 그리고 숙성의 시간이 빚어내는 자연의 결실입니다. 우리의 역할은 그저 그 흐름을 믿고 함께 순응하는 것 뿐입니다. 낮에는 장독 뚜껑을 열어 햇빛을 쪼이고, 밤에는 뚜껑을 닫아 이슬이 끼는 것을 막습니다. 장물이 줄어들면 소금물을 채우고, 골마지가 생기면 정성스레 걷어냅니다. 이 지극한 정성이 약 40여 일간 이어져 메주와 장물을 나누는 ‘장 가르기’를 마치면, 메주는 된장이 되고 소금물은 조선간장이 됩니다. 이후의 숙성은 오롯이 하늘의 몫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맛은 깊어집니다.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견디지 못한 콩은 얼어 썩어버리지만, 그 추위를 제 안의 염분으로 품어낸 콩은 발효라는 기적을 일궈냅니다. 겨울은 만물이 멈추는 계절이 아니라, 순환이 가장 정교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스님이 건네주신 간장 한 방울에는 수많은 계절을 견디며 스스로를 지켜낸 존재의 시간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결국 나를 나답게 살아가게 하는 힘은 그렇게 켜켜이 쌓인 시간의 밀도에서 나옵니다.
정관스님이 매일 밥상을 차려 내는 일은 단순히 한 끼를 준비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씨앗을 심고 흙을 고르며, 계절을 견뎌,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한 방울의 맛으로 완성해 내는 일입니다. 결국 그것은 자기 자신을 길러내는 수행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바깥에서 삶을 지탱할 힘을 찾으려 합니다. 더 안정된 환경, 더 완벽한 조건, 더 많은 인정 속에서 흔들리지 않을 이유를 구하려 합니다. 하지만 천진암의 사계는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삶을 오래 견디게 하는 힘은 결국 외부가 아니라 내 안에서 자란다는 것. 그리고 자립이란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는 강인함이 아니라, 어떤 계절 속에서도 끝내 나를 존재하겠다는 용기 있는 태도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요.
누군가 차려주길 기다리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식탁을 차려낼 수 있는 삶. 화려하지 않아도, 조금은 느리더라도, 내면의 힘으로 하루를 살아내는 일. 어쩌면 그것이 정관스님이 천진암의 사계를 보내며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깊은 울림의 한 상인지도 모릅니다.
천진암의 장독대는 이번 겨울도 묵묵히 시간을 견뎌낼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깊은 맛을 담아낼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의 삶도 지나온 시간만큼 더 깊어집니다. 그 계절의 끝에서 우리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온전히 자기 자신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당신만의 생애가, 당신만의 계절 속에서 따스하게 피어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