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보고 쓰며 만드는 자립의 자리
『박물관은 조용하지 않다』 저자 이연화의 일과 자립
AI가 사람의 일을 대체하고 있다는 소식이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옵니다. 일의 방식과 속도가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바뀌고 있죠. 이제 누구나 자기만의 이름, 자기만의 일, 자기만의 생존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자립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이자 새로운 불안이 되었습니다.
자립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혼자 모든 것을 처리하는 완벽한 사람을 상상합니다. 흔들리지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도 않으며 독보적인 자기 영역이 있는 사람을 떠올리죠. 그래서 자립은 홀로 버틸 수 있는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처럼 그려지곤 합니다.
『박물관은 조용하지 않다』의 저자 이연화의 시선은 조금 다릅니다. 자립은 타인과 만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그 관계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점점 더 정확하게 발견해가는 과정에 가깝다고 이야기 하죠. 이연화가 말하는 함께 보고, 쓰고, 만드는 자립의 자리들을 살펴봅니다.
Part 1. 자립의 시작은 정확한 자기소개부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독립 에듀케이터이자 문화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연화입니다.
『박물관은 조용하지 않다』라는 책을 썼고, ‘문안’, ‘반갑잔치’, ‘호장품’,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감각과 경험을 말로 풀어낼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있어요.
요즘에는 박물관과 지역, 물건과 기억,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식에 대해 탐구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감상이 또 다른 사람에게 작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고 믿으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독립 에듀케이터*'라는 이름이 인상적입니다.
동료 기획자가 저를 그렇게 불러줬어요. 처음에는 낯설기도 했어요. 독립 큐레이터는 익숙했지만 독립 에듀케이터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거든요.
생각해보니 박물관 밖에서 박물관이라는 키워드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저를 설명하기에 정확한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료의 호명을 통해서 이제 정말로 자립했구나 느꼈죠.
*에듀케이터 : 문화예술 현장에서 교육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전문가
정확한 명칭이 있으니 나의 일을 설명하기 쉬워지는군요.
자신을 소개할 때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큼 내어줄 수 있는지 정확히 알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 나눌 수 있는 것, 아직 모르는 것, 함께 해볼 수 있는 것의 범위를 정확하게 알리는 거죠. 그랬을 때 내가 몰랐던 나의 활용성을 타인이 만들어주는 기회가 생기기도 합니다. 누군가 저를 ‘독립 에듀케이터’라고 불러줬을 때처럼요.
자기소개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 하는 일이잖아요. 타인 앞에서 나를 설명하면, 타인이 나를 그들의 눈으로 바라봐요. 그 눈을 통해 내가 다시 보입니다. 마치 작은 모험처럼요. 이 모험을 통해 자기소개는 계속 갱신돼요. 그런 자리가 반복되다 보면 잘 닦여서 윤이 나는 자기소개가 생깁니다. 그걸 가지고 더 멀리 갈 수 있게 되죠.

저서 『박물관은 조용하지 않다』는 어떻게 시작된 책인가요?
3년 전 거의 매달 직접 기획한 프로그램을 열었어요. '전시독후감'은 함께 모여 전시를 보고 나서 감상을 나누는 프로그램, '호장품'은 박물관에 있는 유물들처럼 자신의 애정하는 물건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죠.
아무리 홍보를 해도 모객이 잘 되지 않았어요. 답답한 마음이 커져 프로그램 포맷을 블로그에 모두 올렸어요. 제가 만든 자료까지 아낌없이 모두 공유했죠.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 출판사에서 먼저 출간 제안이 왔어요. 교육 목적의 실용서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용기를 냈죠. 전시 관람법이라고 하면 광범위할 수도 있지만, 전시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적으로 다루는 시장은 없다고 판단했어요. 일반 관람객에게도 교육 담당자에게도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죠.
블로그에 기록한 것이 기회로 연결됐군요.
나의 일에 대한 증거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록이 필요해요. 회사나 기관 내부에서는 일하는 것이 무엇이든 문서 형태로 남아요. 기획안도 쓰고 결과보고서도 써야 하죠. 개인이 하는 일은 의식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문서가 남지 않아요. 나의 경험을 기록하지 않으면 쉽게 휘발되고, 없었던 일로 취급되기 쉬워요.
운영하는 프로그램들도 포스터 이미지만 남지 않도록 끝나고 나면 꼭 회고를 쓰려 해요. 사람들의 감상을 글로 나누고, 함께 쓰는 모임도 만들었어요. 누군가 이 자료를 보고 도움을 얻게 될지 모르니까요. 또 다른 기회의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고요.
책이 발간된 후 자립의 측면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요?
이제 단번에 저라는 사람을 소개할 수 있게 됐어요. 구체적인 관점과 방법론을 가진 사람으로요. 소속된 회사나 기관의 이름에 기대지 않고도 나를 설명할 수 있게 된 거죠.
그전에는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설명하는 데 많은 체력이 소모됐어요. 경력도, 자격도, 소속도 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았거든요. 이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셈이에요.
흥미로웠던 것은 책에 대해 가장 처음 반응을 보인 분들이 도서관 사서, 학교 교사들이었다는 거예요. 업계 밖에 있지만 유사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먼저 읽힌 것이죠.
전문성이 그렇게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업계 안에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가닿고, 그 반응을 통해 다시 업계와 대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Part 2. '박물관'이라는 키워드에서 삶을 담는 세계관으로

처음 기획한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었나요?
'전시독후감'이라는 프로그램을 2016년에 박물관 인턴 발표회 때 처음 선보였어요. 박물관 내부자들은 전시를 읽는 법을 공유하고 있는데, 정작 관람객들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무엇을 보고 나와야 하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잖아요. 전시를 어떻게 보는지 알려주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느꼈죠.
한 주제를 파고드는 것은 책이나 유튜브같은 매체에서 더 잘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전시가 열리는 공간에서만 할 수 있는 교육은 무엇일까 고민했죠. 전시장에서 생기는 연출, 기획 의도, 타인과 접점을 만드는 방식이 분명히 있을 텐데, 왜 우리는 1시간 동안 설명을 듣기만 하고 돌아가야 할까 하고요.
박물관에서 나온 뒤 같은 문제의식이 제가 속해 있던 여성 커뮤니티 안의 소모임으로 이어졌어요. 저는 아직 주니어였지만, 그래도 전시를 기획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으니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죠. 가볍게 제안했을 때, 일반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박물관에서 이 프로그램을 찾기도 했다고요.
박물관 시민자문단으로 초청을 받았어요. '전시독후감' 멤버들이 실제로 박물관 자문위원회에 참여해 의견을 나누는 경험이었죠. 한 번이면 실험일 수 있지만 두 번 초대되었다는 것은 내부 관계자들도 들을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의견이 실제로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중요한 건 관람객이 소비자가 아니라 전시에 대해 말하는 자격으로 자리에 섰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 리뷰 쓰기 모임 '문안'도 이 흐름과 이어져요. 전시를 보는 사람들이 자기 언어로 말하고 쓸 수 있어야 자문도 할 수 있으니까요.
시민, 관람객, 자문 위원이라는 말은 각각 정치적이거나 소비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지만, 한 인간은 시민이자 소비자이자 의견 생산자이기도 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전시를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고, 그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들리게 하고 싶었습니다. 단일한 목소리를 크게 만드는 것보다 더 건강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박물관'을 중심에 두면서도 몸, 역사, 지역, 농업처럼 다양한 주제의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이 활동들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요?
박물관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박물관 옆에 있는 것들을 함께 봐야 해요. 전국에 다양한 주제의 박물관이 있는 것처럼, 박물관이라는 키워드는 매우 넓습니다. 역사, 불교 문화, 농업과 먹거리 같은 주제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죠. 박물관은 특정한 유물만 모아둔 엄숙한 공간이 아니라, 지역과 사람과 사물의 이야기가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니까요.
몸의 기록을 다루는 모임 '버디바디'나 농장, 양조장과 함께하는 활동들도 그런 맥락에서 이어져 있어요. 나의 몸 또는 지역 상점이 이야기의 주체가 되면, 그곳을 중심으로 작은 커뮤니티가 생깁니다. 그 커뮤니티를 박물관이라는 키워드로 연결하고 지지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지역 먹거리를 먹고, 그 지역에 있는 박물관을 관람하면서 지역을 만나고,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는 식으로 전국을 다녀보고 싶기도 합니다. 박물관을 보러 가는 일이 곧 지역에 있는 다채로운 삶을 맛보는 일이 될 수 있으니까요.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예술 현장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술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삶의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믿어요. 이 맥락이 없었다면 제가 하는 여러 활동은 흩어져 보였을 거예요. 박물관에 가는 일, 농촌에 가는 일, 프로그램을 여는 일, 글을 쓰는 일, 차를 마시는 일이 같은 세계관 안에 연결되어 있죠.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저에게 수행성이 높은 작업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언제나 렉처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예술의 세계와 농사의 세계가 사실 하나의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누군가에게 “저런 세계도 있네” 하고 느끼게 하는 것. 그런 장을 만드는 일이 재미있어요.
Part 3. 진정한 자립이란 함께 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

자립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자립의 중요한 지점은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감각하고, 어디까지 해볼 수 있는지 현실적으로 말해보는 일에 있는 것 같아요. 연습이 필요한 일이죠.
자립 초반에는 쪽팔린 마음이 클 수밖에 없어요. 가지고 있던 소속도 사라지고, 회사나 기관에서 협업하던 것과 스케일이 다를 수밖에 없죠. 구멍도 많고, 결과도 작아 보이고요. 그래서 완성도가 높아지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생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계속 표현해야 타인도 나를 찾을 수 있어요. 계속 자기 자신에 대한 정확한 언어를 만들고, 그것을 발신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나는 아직 잘 모르지만 이건 해본 사람이다”, “나는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작게라도 공유해야 해요.
넘어지는 순간은 힘들지만, 일어날 때는 모두가 박수쳐줍니다. 누군가 비웃을까 봐 걱정하는 건 나의 마음이에요. 실제로는 응원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죠. 당장은 부끄럽고 내가 작게 느껴지더라도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실제로 살아보는 일이 중요해요.
자립은 결국 타인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립과 공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법과 제도의 시뮬레이션 안에서는 자립을 혼자 서는 것으로만 표현해요. 자립이라고 하면 혼자 아등바등 버티는 것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혼자 번역서를 끙끙대며 읽을 때, 책에 나오는 현장을 현실에서 찾고 싶을 때, 첫 책을 내고 이야기할 곳을 찾을 때, 결국 저를 도왔던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작은 제안들이었어요.
자립은 혼자 거창한 세계를 완성하는 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외계와 만나면서 계속 나를 구성해가는 과정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지금 내가 믿는 것을 정확히 말하고, 그것을 삶의 여러 장면에서 작게라도 실천하는 과정인 것이죠.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떻게 우리가 서로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를 많이 생각해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를 읽고, 내 언어를 갱신하는 것.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혼자 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서게 됩니다.

함께 일하고 관계 맺을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있나요?
타인과 교류할 때 이상적인 협업이나 관계를 쉽게 떠올려요. 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낮은 범위, 최소한의 영역에서 시작해야 할 때가 많아요. “여기까지는 해볼 수 있을까?”를 실험해보고,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천천히 봐야 합니다.
타인과 교환할 수 있는 정확한 지점을 알려줘야 해요. “우리 함께해요”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오해가 생기기 쉬워요.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할 수 없고, 모든 것을 나눌 수도 없으니까요. 대신 “이만큼은 정말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이 기간 동안 이 주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함께해보고 싶어”라고 말해주는 것이 서로에게 좋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으세요?
앞으로는 박물관이라는 세계와 현실 세계를 교환하는 작업을 확장하고 싶어요. 박물관 안에서 오래 일하신 분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세계 바깥과 어느 정도 단절되는 지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내부와 외부를 모두 경험했고, 그 두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하고 싶어요.
이미 주목받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직 세상이 충분히 바라보지 않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에요. 어쩌면 그것은 각자가 믿고 있는 신화를 바꾸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런 삶도 있구나”, “이런 방식으로도 세계를 바라볼 수 있구나”를 보여주는 일이니까요.
그럼에도 쉽게 포기되지 않는 일이 있다면 계속 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나의 세계를 향하는 통로는 다양합니다. 하나의 글이나 하나의 프로그램이 나를 전부 설명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그 통로로 누군가 들어올 수 있다면, 거기서부터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으니까요.
이연화가 말하는 자립이란 동료가 호명한 이름으로 나를 다시 발견하고, 타인의 언어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과정입니다. 타인이 나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입구를 열어두고 서로를 읽어 나가는 여정은 고될 수는 있어도 외롭지는 않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 여기저기 솟아 있는 수많은 고원들의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고원을 쌓고 서로에게 들어갔다 나오며 너른 평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죠. 자립을 꿈꾸고 있다면, 내가 믿는 세계로 직접 뛰어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조직 밖으로 나가는 일은 어쩌면 더 큰 세계와 몰랐던 나 자신을 만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독립 에듀케이터이자 문화기획자. 박물관에서 교육과 전시를 만들고 운영해왔다. 지금은 기관 밖에서 사람들과 함께 전시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기록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박물관은 조용하지 않다』라는 책을 썼고, ‘문안’, ‘반갑잔치’, ‘호장품’,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감각과 경험을 말로 풀어낼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 문화유산이나 예술을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닌 각자의 삶을 이해하고 서로를 만나는 매개로 바라보기에 함께 보고, 듣고, 질문하는 과정에 관심이 많다. @yhgh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