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땅에서 타지의 소리를

서울 언더그라운드 파티에서 포착한 장르의 미래

우리의 땅에서 타지의 소리를

플로어를 부술 듯이 작렬하는 베이스와 그 위로 흐르는 낯선 언어의 보컬, 그리고 서울이라는 좌표. 음악의 기원이 어디든지간에 그것이 이 도시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일이 더는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풍경을 만들어낸 건, 다름 아닌 그 음악의 뿌리가 아닌 이들입니다.

사운드와 이를 둘러싼 문화 전체를 자처해서 짊어지고 머물 자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이들의 작업은 음악을 옮기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K-POP이라는 타이틀이 한국에 새겨놓은 의의가 있다면 '퍼포먼스란 총체적 경험이어야 한다'는 것인데, 최근 서울의 언더그라운드 파티에서도 이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발원지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울에 이들이 타국의 목소리를 가져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가져온다는 행위 안에서, 무엇이 지켜지고 무엇이 바뀌고 있을까요?


Footwork: Seoul Footwork

1980년대 중반 시카고의 게토 하우스(Ghetto House) 씬에서 싹을 틔운 이 음악은 수십 년에 걸쳐 진화했습니다. 게토 하우스의 사촌 격인 주크에서 보다 실험적이며 가속화된 형태로 발전한 것이 풋워크(Footwork)로, 분당 약 160비트의 템포에 거칠게 잘린 보컬 샘플과 반복적인 베이스라인이 얽히는 형태로 구성됩니다.

풋워크는 댄스 배틀을 위해 탄생한 음악입니다. 빠른 비트 위에서, 댄서들은 리듬에 맞춰 한 발 한 발에 응축된 에너지를 날렵하게 찍어냅니다. 차례를 기다리는 각 팀의 아우라, 마주 선 댄서들의 집중력, 그리고 그 긴박감은 영상으로 접하더라도 화면을 뚫고 넘어오는 생생한 호흡이 존재하는데요.

시카고의 흑인 커뮤니티 안에서 폭력과 빈곤, 부패한 정치 속에서도 음악과 예술을 통해 창의성을 키워낸 문화이기도 한 풋워크는, 2000년대에는 시카고 공립학교 내 믹스테이프 교환을 통해 유통되다 DJ 라샤드(DJ Rashad)의 앨범을 유럽 레이블들이 조명하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서울풋워크 공식 인스타그램

한편 서울풋워크(Seoul Footwork)는 한국에서 풋워크와 주크 문화를 소개하겠다는 목적으로 2024년 출범한 크루입니다. 주목할 지점은 이들은 단순히 장르를 재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건데요. 파티에서는 관객들이 플로어에 원을 그리며 직접 풋워크를 추기도 하고, 마이크를 잡는 라이브 랩 공연도 함께 펼쳐집니다. 이는 풋워크의 배틀 문화를 고스란히 서울의 클럽 플로어 위에 옮겨오는 그들만의 방식입니다. 

서울풋워크의 파티에서는 정통 풋워크 음악이 흐르다가도 K-팝이나 한국 록밴드 음악의 리믹스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언더그라운드 특유의 날것을 유지하되, 국내 청중들도 호응할 수 있는 접점을 열어두죠. 장르의 색을 가져옴과 동시에 그것을 이 도시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셈입니다.

이들의 시도는 이미 로컬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전 세계 파티 씬을 조명하는 MIXMAG 매거진의 Functions 시리즈가 서울풋워크를 별도로 다룬 것은 이 크루가 국제적인 풋워크 흐름 속 하나의 거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방증입니다.

Sound System Culture: Bahnya Sound System

풋워크가 댄서들의 몸짓에서 시작되었다면, 자메이칸 사운드 시스템은 소리 자체를 물리적 경험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47년 킹스턴, 영국 공군 출신 엔지니어 헤들리 존스(Hedley H. G. Jones)가 직접 설계한 앰프로 거리에서 음악을 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자메이카에는 라디오도 TV도 없었기에 사운드 시스템은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었고, 소리가 닿는 곳마다 파티가 열리곤 했습니다.

수요가 늘며 경쟁도 시작됐습니다. 오퍼레이터들은 장비를 고도화하고 희귀한 음반을 확보했으며, 아티스트에게 자신만을 위한 전용 트랙인 덥플레이트(Dubplate)를 의뢰했습니다. 여유가 없는 이들은 기존 트랙 위에 즉흥으로 가사를 얹었고, 이는 힙합의 래핑보다 앞선 구술 퍼포먼스인 토스팅(Toasting)이 되었습니다. 

문화는 자메이카 안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DJ 쿨 허크(Kool Herc)가 브롱크스로 가져간 사운드 시스템 문화는 힙합(Hip-Hop)의 씨앗이 되었고, 영국으로 건너간 자메이카인들을 통해 정글(Jungle), 덥스텝(Dubstep), 드럼앤베이스(Drum n bass)가 탄생했습니다. 오늘날 글래스고의 Mungo's Hi Fi부터 브루클린의 Dub-Stuy까지, 사운드 시스템은 새로운 토양에서 발전된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데요.

출처: 반야사운드시스템 공식 인스타그램

반야 사운드 시스템(Bahnya Sound System)은 그 계보가 서울에도 닿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크루입니다. 사운드 시스템이 단순히 음악을 트는 장비가 아니라 DJ·MC· 엔지니어가 하나의 단위로 움직이는 집합이라는 정의 그대로, 박준, 스마일리 송, MHMD 세 명은 각각 덥와이저(Dubwise)·셀렉타(Selecta)·연주자 겸 엔지니어로서 하나의 시스템을 이룹니다.

이들은 레게와 덥을 기반으로 베이스 문화 전반을 아우르며, 스피커를 직접 설계하고 제작합니다. 자메이칸 사운드 시스템의 기획자들이 더 강한 소리를 위해 직접 앰프를 만들었던 것처럼요.

반야의 사운드는 특정 공간이나 청중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Bahnya Dub Temple 등 자체 이벤트를 기획하는 한편 다양한 파티와 협업하며, 리스너들에게 잊지 못할 청취 경험을 선사합니다.

 

Latin Club: Raw Hearts

사실 '라틴 클럽(Latin Club)'이라는 명칭은 그 정체성을 담기엔 온전하지 않습니다. 과라차(Guaracha)·트라이벌(Tribal)·바일레 훵크(Baile Funk)·랩터 하우스(Raptor House) 등 각기 다른 역사와 맥락을 가진 라틴 아메리카의 장르들이 이 한 카테고리 아래 단순화되기 때문입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오래전부터 존재한 음악들이 이제서야 유럽과 북미의 주목을 받으면서 사후적으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고요. 라틴이라는 단어 자체가 라틴 아메리카가 아닌 미국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점에서, 외부의 시선을 깊게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태그가 완전히 무의미하지 않은 건, 팬데믹 이후 온라인으로 연결된 라틴 아메리카의 프로듀서들이 각자의 로컬 장르를 클럽 뮤직으로 변환하며 스스로 씬을 구축해왔다는 사실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보고타의 클럽 씬이 이 음악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프로듀서 코레도어(CRRDR)는 동료들과 함께 직접 파티 시리즈 무악(Muakk)를 열었고, 그 파티는 자연스럽게 퀴어 씬과 연결되었습니다. 기존의 테크노 씬이 배척한 음악이 오히려 그 바깥에 있던 이들을 불러 모은 것입니다. 처음부터 경계 밖에서 자란 씬이었기에 혼종과 확장이 이 장르가 추구하는 바와 통합니다.

출처: Raw Hearts 공식 인스타그램

서울의 아트 콜렉티브, 로우하츠(Raw Hearts)가 라틴 클럽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유사합니다. 장르 자체의 확장성이 짙기에, 서울이라는 토양에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여지가 충분하죠.

로우하츠는 라틴 클럽과 하드 트라이벌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나 스스로를 장르적 특성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소셜 미디어와 AI가 예술과 엔터테인먼트를 소비하는 방식을 재편하는 동안에도 이벤트 기획의 방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보고, 새로운 세대의 수요를 반영한 몰입형 파티를 만들겠다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습니다.

출처: Raw Hearts 공식 인스타그램

그 몰입은 음악의 차원을 벗어납니다. 로우하츠는 라이브 퍼포먼스, 테크놀로지, 비주얼 아트를 한데 조합하고, 때로는 시각과 청각을 넘어 촉각과 미각까지 자극할 수 있는 이벤트를 설계합니다.

이들이 지향하는 건 장르의 보존이 아닌 재구성과 유동성입니다. 한국이라는 지역성과 라틴 클럽의 정신을 합쳐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파티라는 형식을 예술적 행위로 끌어올리고 싶다는 것. 라틴 클럽이라는 장르 자체가 정통성을 고집하지 않는 만큼, 이들 또한 그 경계를 넘나들며 씬 내에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타지의 음악을 가장 진지하게 다루는 서울의 세 크루. 문화적 기원과 먼 곳에서 출발한 이들이지만 오히려 더 집요하게 그 본질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뿌리를 공유하지 않기에 간극은 존재하나, 그 공백을 어떻게 볼 것인지는 여전히 열린 질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의무 없이 선택한 자리에서, 문화의 불씨를 새로이 점화하고자 가장 많은 것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지금 서울 어딘가의 플로어를 채우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모습에서 장르의 다음 챕터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문화에 정형화된 틀이 있을까요? 그것이 처음 어떤 몸과 공간에서, 어떤 이유로 태어났는지 그 동력을 생각해 봅시다. 이들의 행위를 변질이라고 부를 수 없는 건, 뿌리 바깥에 서 있는 이들이 그 동력을 가장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번역은 불완전할 수 있으나 때론 그 불완전함에서 원류가 미처 포착하지 못한 가치를 찾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