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멋을 짓는 일

새로운 기준, 피어나는 문화

우리말의 멋을 짓는 일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

더 나은 소통을 향한 고민들

인간을 다른 존재와 구분 짓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말일 겁니다. 인류는 벽에 그림을 새기던 그림 언어를 지나, 입 밖으로 소리를 내는 음성 언어를 거쳐, 마침내 생각과 지식을 시공간 너머로 보존하고 전달하는 문자 언어에 닿았습니다. 문자를 가졌다는 건 곧 거대한 문명을 세울 수 있다는 뜻이었죠.

그런데 오랫동안 우리 문자 언어는 자립하지 못했습니다. 한자라는 빌려 온 그릇은 우리의 생각과 우리말을 온전히 담아내기에 부족했거든요. 외부의 언어 체계를 빌려 쓴다는 건 단순히 문자를 빌리는 일을 넘어섭니다. 세상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방식까지 그 틀에 맞춰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죠. 진정한 의미의 문화 자립은 내 입에서 나가는 고유한 음성을 온전히 묘사하고 공유할 수 있는 언어세계를 가질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기존의 규칙과 관습이라는 낡은 틀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자기 의지로 우리말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시도는 개인을 넘어, 공동체 전체에 앎의 즐거움과 시각적 가능성을 열어 주었습니다. 매일 사용하는 우리말의 형태를 빚어내고 문자 문화의 큰 전환점을 만든 네 사람을 소개합니다.


우리말 문자 문화의 전환점 4선

1. 세종의 훈민정음
: 소리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모듈 언어

세종의 초상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서 한자와는 서로 잘 통하지 않으니, 이런 까닭으로 글을 모르는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것을 가엽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이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한다."

문자 문화의 자립을 이야기할 때 한글을 창제한 세종을 빼놓을 수는 없겠죠. 일반적으로 우리는 세종을 애민 정신이 투철한 성군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훈민정음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단지 백성을 어여삐 여긴 임금이기 이전에, 풀어야 할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고 그에 맞는 해법을 창의적으로 설계한 기획자라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세종이 마주한 문제는 분명했습니다. 당시 한자는 글자 하나하나가 뜻을 통째로 담는 문자라, 수만 개의 글자를 외워야 했을 뿐 아니라 우리말을 적는 데에도 근본적으로 맞지 않았습니다. 글자의 형태가 거의 변하지 않는 단음절 위주의 중국말과 달리, 한국말은 조사와 어미가 발달해 '가다·가고·가니·가서'처럼 같은 말도 상황에 따라 소리가 끊임없이 달라집니다. 뜻을 담는 한자로는 이렇게 변하는 소리의 결을 따라잡을 수 없었던 것이죠. 이두냐 향찰 등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적으려던 이전의 숱한 시도가 번번이 한계에 부딪힌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종은 우리말의 소리 자체를 시각화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쪽을 택합니다. 언어를 소리라는 최소 단위로 해체해, 발성 기관의 모양을 본뜬 자음(ㄱ, ㄴ, ㅁ, ㅅ, ㅇ)과 하늘·땅·사람을 본뜬 모음(ㆍ, ㅡ, ㅣ)을 조립해 세상의 거의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 의도는 글자의 생김새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한자가 붓의 흐름과 손의 멋을 따라 다듬어진 글자라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은 '소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원리에서 출발합니다. 붓글씨가 아니라 설계 도면처럼 보이는 기하학적 형태야말로, 한글이 소리를 분해해 다시 조립한 시스템임을 보여 주는 증거인 셈입니다.

복잡한 현상을 단순한 원리로 환원하고, 그 원리로 다시 규칙을 쌓았습니다. 법칙을 찾는 과학자처럼, 형태를 빚는 예술가처럼. 세종은 그렇게 한글을 설계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더 놀라운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존재입니다. 단순히 새 글자를 발표한 선언문이 아니라, 이 글자가 어떻게 조립되고 읽혀야 하는지 차근히 짚어 둔 매뉴얼이었습니다. 이렇게 의도와 철학, 창제 원리가 분명하고, 심지어 문서화까지 된 언어는 한글이 유일합니다.

문화(文化)와 문명(文明), 문자(文字)는 모두 같은 글자 '문(文)'을 품고 있습니다. 글자가 곧 문화의 바탕이라는 뜻이겠죠. 세종이 지은 스물여덟 자는, 더 많은 사람의 느낌과 생각이 시간과 공간을 건너 다른 사람에게 가닿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600년 전의 마음을 읽고, 또 누군가에게 오늘의 마음을 남길 수 있는 것도 그 스물여덟 자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2. 호머 헐버트가 제안한 띄어쓰기와 문장부호
: 글줄과 시선의 흐름을 바꾸다

호머 헐버트의 초상

한글 대중화의 계보를 따라가다보면 교과서에서 자세히 접하지 못한 낯선 외국인의 이름을 만나게 됩니다. 1886년 조선에 도착한 미국인 교사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 1863~1949)입니다. 영어를 모어로 둔 헐버트가 한글을 본 첫 반응은 놀라움이었습니다. 단순한 자모 몇 개로 거의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다는 사실, 학습 시간이 영어보다 짧을 수 있다는 사실. 외부에서 자란 언어 감각으로 한글의 단순성과 아름다움을 일찍이 알아본 사람이었습니다.

1889년, 헐버트는 《사민필지(士民必知)》를 펴냅니다. 관리든 백성이든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제목 그대로, 한자 없이 한글만으로 쓴 세계 지리 교과서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 한글 교과서이며 유길준의 《서유견문보다 6년 앞섭니다. 한자가 곧 지식의 권위였던 시대에, 외부에서 온 사람이 한글만으로도 깊은 내용을 충분히 담을 수 있음을 책 한 권으로 보여 준 셈입니다.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 / 출처: 국립한글 박물관

나아가 더 중요한 변화는 1896년에 일어났습니다. 《독립신문》창간 작업에 합류해 서재필·주시경과 함께 한글에 가로쓰기띄어쓰기를 도입한 것입니다.

대나무를 엮은 죽간을 사용하던 전통에서 비롯된 세로쓰기는 가로쓰기에 비해 시선을 더 많이 움직여야 합니다. 인간의 눈이 좌우 수평으로 배치되어있기 때문인데요. 여기에 한자문화권은 전통적으로 오른쪽에서 시작하는 세로쓰기(우종서)를 했기 때문에 오른손으로 글을 쓰면 손에 묻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표의문자인 한자의 경우, 각 문자의 구분이 중요하고 붓으로 쓰기에 세로로 쓰는 것이 유리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표음문자인 한글가 굳이 이 관습을 고집할 필요는 없죠. 헐버트는 영어를 사용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같은 표음문자인 알파벳이 글을 전개해나가는 방식을 한글에 적용시키는 방법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1896년 조선소식(Korean Repository) 1월호에 제안된 한글의 띄어쓰기

헐버트의 자립은 매체 작업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1905년에는 한국어와 인도 남부 드라비다어를 비교한 문법 연구서를, 이듬해엔 《대한제국 멸망사(The Passing of Korea)를 펴내며 한국과 한국말의 가치를 영어권에 본격으로 알렸습니다. 외부인이 한국말의 깊이를 학문으로 탐구한 초기 사례 가운데 하나입니다.

헐버트는 1907년 헤이그 특사 지원을 빌미로 일본에 의해 조선 입국을 거부당합니다. 이후 헐버트는 미국에서도 일본제국의 침략과 한국의 독립에 관한 ,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다시 한국 땅을 밟습니다.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헐버트의 유언은 우리말 문화뿐만 아니라 한국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1989년 뉴욕 트리뷴 지에 기고한 'The Korean Language-조선어'
"조선에는 각 소리를 고유의 글자로 표기할 수 있는 진정한 소리글자 (True alphabet)가 존재한다. 모음은 하나 빼고 모두 짧은 수평, 수직의 선 또는 둘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 한글 조합의 과학성은 환상적이다"

3. 한창기의 뿌리 깊은 나무
: 앎의 즐거움을 널리 전하는 편집의 아름다움

한창기의 초상 / 출처: 중앙일보

세종이 한글의 골격을, 헐버트가 그 글이 읽히는 리듬을 다듬었다면, 한창기는 그 위에 정서와 미학의 기준을 세운 사람입니다. 1970년대 한국 잡지와 신문은 여전히 세로쓰기와 한자 혼용이 절대의 규칙이었습니다. 한자를 섞어 써야만 권위 있고 지적인 글이라는 고정관념이 팽배했죠.

뿌리깊은 나무의 광고

잡지 《뿌리깊은 나무》의 발행인 한창기는 이 견고한 지적 허영의 틀을 과감히 깼습니다. 한자를 걷어내고 잊혀 가던 토박이말로 지면을 채웠습니다. 읽기 편한 가로쓰기도 앞장서 도입했죠. 그의 목적은 명확했습니다. 대중에게 지식의 열등감을 심어 주는 대신, 누구나 쉽고 명료하게 읽으며 앎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돕는 일이었거든요.

쉬운 것과 가벼운 것은 다릅니다. 한창기는 한국 출판계 최초로 아트디렉터 제도를 도입해 글줄의 간격, 여백, 서체, 사진 배치를 다시 짰습니다. 우리말만으로도 얼마나 세련되고 수준 높은 시각적 만족감을 줄 수 있는지를, 한글 매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자리로 스스로 증명한 일이었습니다.

한창기는 토박이말과 한글이 촌스럽거나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다루는 사람의 안목에 따라 얼마든지 품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지면으로 증명했습니다. 권위는 한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용의 깊이와 그것을 담는 형식의 완성도에서 나온다는 그의 믿음은, 이후 한글로 만드는 모든 출판물이 기댈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잡지의 구실은 작으나마 창조이겠습니다. 창조는 역사의 물줄기에 휘말려들지 않고 도랑을 파기도 하고 보를 막기도 해서 그 흐름에 조금이라도 새로움을 주는 일이겠습니다. 뿌리깊은 나무는 그 이름대로 오래디 오랜 전통에 깊이 뿌리를 내리면서도 바로 이런 새로움의 가지를 뻗는 잡지가 되고자 합니다.

—《뿌리깊은 나무》창간사

4. 안상수의 안상수체
: 한자문화권의 네모틀을 부순 시각적 해방

출처: 마이크임팩트

한글은 수백 년 동안 한자 문화권의 그림자인 정사각형 네모틀에 억눌려 있었습니다. 초성·중성·종성이 어떻게 조합되든 획을 찌그러뜨리거나 늘려 똑같은 크기의 네모 안에 욱여넣어야 하는, 한 칸 안에 갇힌 족쇄를 차고 있었습니다.

1985년, 디자이너 안상수는 이 수백 년 된 고정관념을 풀어냅니다. 자음과 모음이 가진 본래의 단순한 형태와 비례를 그대로 드러내는 탈네모틀 폰트, 《안상수체》를 발표했습니다. 받침이 있으면 길어지고 없으면 짧아지는, 글자 본연의 생명력과 율동감을 해방시킨 겁니다.

탈네모틀에 대한 설명과 도식 / 출처: 타이포그래피 사전

흥미로운 것은 안상수가 자기 일을 부르는 방식입니다. 그는 '디자인(design)'이라는 외래어에 오래 짓눌려 있다가, 어느 날 그 본질이 결국 '멋을 내는 것'임을 깨닫고 이를 우리말 '멋지음', '멋짓'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옷도 짓고 집도 짓고 표정도 짓듯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을 '짓는다'고 하니, 디자인이란 결국 멋이 풍기도록 짓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번역되지 않는 '멋'이라는 말이야말로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의 땅이고, 그것이 곧 우리 디자인이 서는 자리라고 그는 보았습니다. 안상수체는 그 믿음을 글자라는 형태로 직접 지어낸 결과물인 셈입니다.

안상수에게 그 출발점은 언제나 한글이었습니다. 그는 한글을 '창제된' 것이라기보다 '디자인된' 것으로 굳게 믿었고, 세종을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로 꼽았습니다. 점 하나로 하늘을, 선 하나로 땅을, 그 사이에 사람을 세워 조합해 나가는 한글의 체계를 그는 600년 전에 이미 완성된 현대적 디자인으로 읽었습니다. 그러니 안상수체는 단지 새 글꼴 하나가 아니라, 세종이 처음 세운 그 설계의 정신을 600년 뒤의 손으로 다시 이어 지은 일에 가깝습니다.

안상수체를 제목에 활용한 <과학동아> 1월호

단순히 새 폰트 하나가 탄생한 사건은 아니었습니다. 안상수의 이 파격 덕분에 한글은 의미를 전달하는 건조한 텍스트에서 벗어났습니다. 그 자체로 공간을 지배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시각 매체로 한 번 더 자립했습니다.

안상수체가 던진 질문은 '한글이 꼭 네모 안에 있어야 하는가'였지만, 그 답이 향한 곳은 더 넓었습니다. 한글의 형태를 정해진 틀이 아니라 다시 설계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이후 수많은 한글 글꼴이 저마다의 비례와 리듬을 실험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안상수체는 완성된 정답이라기보다, 한글 디자인에 '왜 이래야 하는가'를 묻는 태도 그 자체를 남긴 셈입니다.

"칸딘스키는 점을 울림이라 했다. 세종은 점에 하늘을, 그러니까 우주를 담았다. 상상력의 그릇이 다르다. 그래서 나는 이 큰 한글의 아름다움과 같이 사는 것이 참 행복하다."

—《감히, 아름다움》

새로운 시대를 짓는 우리의 언어

세종, 헐버트, 한창기, 안상수. 네 사람은 모두 기존의 틀을 그대로 쓰는 대신 우리에게 맞는 것을 직접 지어낸 사람들입니다. 세종은 단순한 점과 선들로 글자를 새로 지었고, 헐버트는 바깥에서 익힌 읽기의 리듬을, 한창기는 보기 좋게 만드는 편집의 안목을 들고 왔습니다. 안상수는 네모 틀을 깨고 글자를 자유롭게 풀어 주었죠. 그리고 그 결과는 한 사람의 성취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서로 생각을 더 쉽게 주고받고, 그 위에 문화를 쌓아 갈 수 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인공지능이 순식간에 수만 개의 문장을 써 내고, 글 한 편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거의 0에 가까워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기계가 사람의 말을 그럴듯하게 흉내 내는 지금, 우리말로 우리답게 소통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어쩌면 답은 새로운 글자나 형식을 또 만들어 내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쏟아지는 말과 글 속에서 내 생각을 또렷이 갖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잘 전하는 법을 고민하는 일. 결국 중요한 건 어떤 도구를 쓰느냐가 아니라, 그 도구로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 묻는 태도일 테니까요. 남들이 다 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낸 네 사람처럼, 이제는 우리가 이 시대에 맞는 소통의 방식을 고민하고 만들어 갈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