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 - 비전 ヴジョン》
orm, 구기정, 양승빈, 박웅규, 이윤재

Trans- 비전 ヴジョン
삶에 끼어들 가짓수로 지은 낱말. 이는 경관으로 영 쓸모없는 우물과 같다. 차라리 그것이 연못이었다면 나름 볼만 했을 터. 평평한 바닥을 두드리며 당분간 손끝에 닿는 건 무엇이든 단단한 벽이겠거니, 한다.상행위를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무엇일까. 일각을 다루는 물음은 아니지만, 의도적으로 서두르며 과도한 불응을 시도한다. 연거푸 마신 고배. 한 시간 지나고 나면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을 상태는 희고, 드문드문 매듭 같은 공백을 꼬았다. 누군가는 이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였고, 그 복잡한 양태를 제 것으로 여기기도 하였다.비일상적인 면모를 기다리는 심정은 얼마나 많은 사물의 면면을 확보하고 있는가. 그것들 전부를 관통하는 개념과 이젠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관계, 그리고 검은 하늘. 어떤 시간을 앞으로 나아가길 거부한다. 사는 것이 말 그대로 사는 것이 될 때 하나는 더 이상 하나가 아니며 둘로 나뉜 존재들은 곁다리의 극치를 목도한다.

직접 보는 것만 못한 좌우 대칭의 날. 이는 이념적으로 그리고 환상적으로 존재의 앎을 서운케 했다. 할 말은 자연스럽게 입을 벌린 채 다 쓰러져 가는 집의 외형과 앞날의 환영을 엮고 또 엮었다. 배곯은 완전함이 원을 슬프게 굴렸다. 새로운 모델의 오디오 설비가 의미 없이 집 뒤편의 구획을 나누었다. 공간은 공원, 세금이 과도하게 투여된 평원. 목전에 기괴한 설문이 몸을 웅크리고 있다.다소 연약한 외마다. 그것이 덮고 잔 살갗은 지금도 좌우로 팽창한다. 확실하지 않은 횟수에 떠밀려 제법 나잇살을 깨부순 이의 혼잣말이 함성이 될 때 높다란 언덕배기에 절반쯤 탄 해가 걸친다.마당의 잡초는 뽑아도 금방 허리춤까지 자라났으며 이른 오후에 걸려 넘어지는 날이면 거대한 수풀을 마주했다. 그 실제적인 덤불을 손으로 걷어 내다보면 복잡한 속은 쉽게 무기력에 휩싸였다. 무거운 돌로 낡은 책 여러 권을 누르듯 한 경험이었다.


The Transparent Visual Engine (2025), 구기정, 655 x 367mm, 450 x 281mm, 아크릴에 UV프린트, LED, 스테인레스 프레임 | 이미지_양승
사물의 얼개와 대상의 가치를 달아둔 천칭은 나무로 만들어졌다. 겉면은 땅바닥에 붙어사는 벌레의 외피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 생경했으며 꺼림칙한 느낌이 다분했다. “적의로 가득한 사람을 만나러 갈 심산이다.” 누군가 말했다. 이때다, 하고 불어온 바람이 심중에 빗살무늬를 새긴다.균형을 토해내는 사뭇 못난 기구. 예의 천칭을 그렇게 불렀다. 저울은 사사건건 형편이 좋지 못한 이들을 재미 삼아 제 팔에 다는지도 모른다. 기구 같은 생각, 짝을 이루듯 기구한 팔자. 식전에 마시는 물로 조성한 강이 식음을 전폐한 사람의 바짓가랑이를 적셨다. 그가 지나간 길엔 어김없이 물 자국이 남아 있었고, 그것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끈질긴 흔적에 혹시나 훈김이 서리지 않을지 기대하는데, 이는 잘못 부른 이름처럼 온데간데없을 뿐이다.그러고 보니 아무도 없다. 적막마저 헤진 장막을 걷어내듯 저 위로 말려 올라가고, 무한한 진공 속에서 나는 뜻밖의 소질을 발견한다.


Dummy no.96 (2023), 박웅규, 920 x 640mm, 종이에 먹 / Dummy No.34, Dummy No.32, Dummy no.33 (2018), 박웅규, 각각 500 x 500mm, 종이에 먹 | 이미지_양승
전부터 흔들림을 보아왔다. 그것은 단속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침울한 떨림이었다. 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하늘은 한 치수 작은 무명옷이 되었다. 팔꿈치 쪽으로 끌려 올라간 소매가 어쭙잖은 인사를 거느릴 때 한 줌 세계 속 한 쌍의 동공만이 부동을 껴입는다. 한숨조차 찬 아침나절에.색이 바랜 부분이 드문드문 있지만, 그래도 청결한 느낌의 종이 위에 서랍을 적었다. 어째 적고 나니 그것은 미로의 일부분인 것 같기도, 지하 동굴의 입구 같기도 했다. 아무쪼록 더위를 타지 않는 방향을 바란다. 한사코 거절한 제안이 품귀 현상을 겪어도 아무렇지 않을 상태가 기억 속 거리에 즐비하길.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얻거나 잃었으며, 얼마나 자신만만하거나 의기소침해했을까.하마터면 잃을 뻔한 소지품을 주머니에 깊이 죄어 두었다. 알량한 사고는 무관심인가, 아니면 불안의 회로인가. 나에게 인접한 도형들이 전부 모서리를 과시했다. 한때 매무새로 가득 찬 현장이 들썩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