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이라는 말 뒤의 존재들: 노년, 장애, 치매를 다룬 책 3권

자립이라는 말 뒤의 존재들: 노년, 장애, 치매를 다룬 책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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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립한 사람을 좋은 어른이라고 부릅니다. 혼자 벌어서 생활하고 본인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 반대로 누군가에게 기대야 하는 사람은 미성숙하거나 불쌍한 존재로 쉽게 여겨집니다. “폐 끼치지 말아야지” “자기 앞가림은 해야지” “언제까지 도움받고 살 수는 없잖아” 같은 말들은 긍정적인 언어처럼 들리지만, 사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움츠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말 혼자 설 수 있는 존재일까요. 우리는 대부분은 부모의 돌봄으로 자라왔고 늙어가면서 다시 의존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이는 출생 후 성장해서도 스스로 생활이 어렵고, 또 어떤 사람은 노년 이후부터 혼자 설 수 없는 상태에 놓입니다. 그런데 사회는 여전히 자립 가능한 인간을 표준으로 삼습니다. 이 글은 자립하지 못하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자립할 수 있는 사람만을 인간의 기준으로 삼아온 사회의 문제를 들여다보려 합니다.


1.어머니를 돌보다 : 늙어가는 몸은 왜 짐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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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과 노인의 신체적 경계가 명확할까요? 노인도 어느 날 갑자기 자립을 잃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조금씩 느려지고 기억은 깜빡하다가 흐려집니다. 병원에 가는 일이 잦아지고 혼자 해내던 일들이 하나씩 타인의 손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그렇게 걷는 일, 씻는 일, 밥을 먹는 일, 약을 챙기는 일, 병원 예약을 확인하는 일 등도 혼자서는 버거워집니다. 젊은 몸에게는 사소한 일상이지만 늙어가는 몸에게는 점점 무거운 과제가 되버립니다.

'어머니를 돌보다'는 돌봄을 아름다운 효도의 이야기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병든 어머니를 돌보는 시간이 얼마나 지린하고 복잡한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낱낱이 보여줍니다. 돌봄에는 숭고한 사랑만 있는 것은 아니죠. 책임감, 피로, 죄책감, 짜증, 미안함, 다시 돌아오는 애정이 뒤섞여 있습니다. 이 복잡함을 지우고 “부모를 잘 모셔야 한다”거나 “늙어서 자식에게 짐이 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순간, 노년의 삶은 존엄한 시간이 아니라 죽을때까지 관리해야 할 부담으로 바뀝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노인이 얼마나 오래 자립할 수 있느냐가 아닙니다. 늙어가는 몸이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 의존을 수치스러운 과정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는가입니다. 노년은 자립의 반대편에 있는 예외적 상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향해가는 확정된 미래입니다. 그렇기에 늙어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끝까지 혼자 버티라는 요구가 아니라, 기대어도 존엄을 잃지 않는 관계와 제도입니다.


2.장애학의 시선 : 혼자 할 수 없는 몸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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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해보지 않고 쉽게 이야기하는 말들이 일상에 떠다닙니다. 특히 중증 장애인은 자립이라는 말이 가장 폭력적으로 작동하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사회는 장애인에게도 자립을 요구합니다. 독리적으로 자기 삶을 살아야 가치있고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살아야 한다고 등을 떠 밉니다. 이 문장 자체는 틀리지 않습니다. 아니, 당사자가 가장 원하는 삶입니다. 문제는 자립을 요구하면서도 실제로 함께 살아갈 조건을 충분히 만들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장애학의 시선'은 장애를 한 개인의 결핍이나 극복해야 할 불행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장애는 몸의 상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의 설계가 만들어내는 경험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경사로 없이 계단뿐인 건물, 언제나 충분하지 않은 활동지원, 한 번 외출이 노동이 되는 대중교통, 가족에게 전가되는 돌봄노동 등 정상적인 몸을 기준으로 짜인 일터와 학교의 일상을 상상해본 적 있으신가요? 이런 환경 속에서 장애인은 ‘혼자 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혼자 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세계에 놓여 있습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장애인의 자립은 아무 도움 없이 살아가는 상태라고 이야기 할 수 없죠. 오히려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그 도움을 받으면서도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주체성이 사라지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의존한다고 해서 존엄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요. 문제는 의존 자체가 아니라 의존하는 사람을 낮은 위치에 두는 사회의 시선입니다. 이 책이 주는 명확한 한 가지는, 자립의 기준을 “혼자 할 수 있는가”에서 “지원 속에서도 자기 삶을 결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3.스틸 앨리스 : 내가 나를 잊어도 나는 여전히 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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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두려운 삶의 끝 모습을 상상해본적 있습니다. 저에게는 치매입니다. 치매를 겪는 사람은 자립의 가장 깊은 전제를 송두리째 흔듭니다. 자립의 근본은 자기 자신을 알고 필요를 말하고, 내가 내린 결정을 이해하고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있다는 믿음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치매는 이 믿음을 천천히 무너뜨리죠. 기억이 흐려지고 언어가 끊기고 익숙한 길에서 길을 잃고맙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영화로 더 잘 알려진 스틸 앨리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한 사람의 내면을 따라갑니다. 중요한 것은 치매 환자를 외부의 시선에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언어를 잃어가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붙들려고 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한때 지적 능력과 언어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던 사람이 점점 그 능력을 잃어갈 때, 사회가 말하는 자립적 인간의 조건도 함께 무너져 내립니다. 이 때 우리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질문을 어느새 마주하게 됩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관리하고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은 여전히 온전한 사람인가.

치매를 겪는 사람은 타인의 손뿐 아니라 타인의 기억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좋아했던 음식과 음악, 싫어했던 말투와 욕지거리, 친밀한 가족들만 아는 오래된 습관 등을 타인이 대신 기억해줄 때, 그는 더 이상 '나'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은 자립했다고 부르고 어떤 사람은 의존한다고 지칭하는 이유는 그들이 완전히 다른 존재이기 때문만은 아니죠. 사회가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을 다르게 배정해왔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다뤘던 노인, 중증 장애인, 치매를 겪는 사람은 자립에 실패한 존재가 압닙니다. 그들은 오히려 인간이 애초에 얼마나 관계적이고 의존적인 존재인지 드러냅니다. 자립할 수 없는 삶은 예외가 아니라, 인간 조건의 한 형태로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언젠가 누군가에게 기대야 하고, 어떤 사람은 평생 기대며 살아가기 때문이죠. 그래서 필요한 질문은 “어떻게 하면 모두가 자립할 수 있을까”가 아닙니다. “자립할 수 없는 사람도 존엄하게 살아가려면, 우리는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입니다.

사실 여전히 저도 자립을 의존보다 좋은 삶의 기준으로 삼곤 합니다. 혼자 설 수 있는 사람만 인간답다고 말하는 사회에서는, 혼자 설 수 없는 삶은 미안한 삶이 되니까요. 부끄럽지만 저는 혼자 설 수 있는 자리에 있고 싶습니다. 하지만 삶의 존엄은 혼자 해내는 능력에서만 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누군가를 돌보고, 옆 사람의 기억과 손에 의해 계속 살아가는 방식 안에도 인간의 존엄은 살아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