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0원 살이
돈 없이 현대 사회에서 '자립 자족'하는 삶
'자립'한 우리는 여전히 자본주의 시스템에 종속된 채 살아갑니다. 시스템의 바깥에도 우리는 여전히 존재할 수 있을까요. 책 《0원으로 사는 삶》은 그 물음에 대한 하나의 대답입니다. 영국 워킹홀리데이 도중 의도치 않은 퇴사 후, 생계 유지를 위해 돈을 아예 쓰지 않는 삶을 택한 저자 '박정미'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약 2년간의 '0원살이 프로젝트'를 통해, 그녀는 영국과 독일, 리투아니아, 세르비아 등 세계 곳곳에서 대안적 삶의 방식들을 몸소 체험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 식량 문제, 주거 불안이 가속화되는 시기여서일까요, 어떠한 소비도 소유도 없는 그녀의 여정이 유독 강렬하게 와닿았습니다. 현대 사회의 자본주의 시스템 바깥에서 자립이란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그녀의 여정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글을 통해 질문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부. 시스템 '안'에서의 자립
노동을 조건으로 무료 숙식하는 법
: 우프 네트워크
일하던 회사에서 강제 퇴사를 당한 후, 런던 월세를 감당할 수 없었던 그녀가 처음 시도한 것은 우프(WWOOF)였습니다. '세계 유기농 농장 자원봉사 네트워크'라는 뜻을 가진 우프는 자원봉사자와 농장을 연결해 주는 글로벌 단체입니다. 각국의 자원봉사자는 현지 농장의 일손을 돕는 대신, 농장으로부터 무료 숙식을 제공받습니다.

책의 도입부에는 약 6개월간 그녀가 영국의 여러 농촌 마을에서 겪은 '우핑 체험기'가 등장합니다. 그중 하나는 영국 서머싯의 '팅커스 버블'입니다. 1994년에 설립된 이 공동체는 하나의 숲에 모여 살며, 전기와 수도, 가스도 쓰지 않고, 오로지 노동으로 모든 것을 충당합니다. '자연 파괴 없는 지속 가능한 삶'을 목적으로 하는 마을이기 때문입니다. 먹거리의 90% 이상을 자급자족하며, 설탕과 같이 현대 사회에서 '자본'의 역할을 하는 향신료는 쓰지 않습니다. 열대 사탕수수의 재배 과정에서 일어나는 삼림 파괴와 노동 착취, 부의 불균형 때문입니다. 이렇게, 식탁에 올라갈 식재료 하나에도 환경과 윤리의 무게를 따지는 탓에 저자는 초반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팅커스버블이 사과 주스를 만드는 방법
이후 그녀는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다양한 공동체에서 프로젝트를 이어갑니다. 대개는 현대 산업 및 자본주의 사회의 양식을 거부하고, 자체적인 생활 방식과 실천 양식을 갖춘 곳들이었습니다. 그중 '크리스'라는 호스트가 운영하는 마을은 '사람들에게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공동체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의 존재 양식은 '살아감(living)'으로, 먹고 자고 입을 것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생활 기술을 뜻합니다. 우리의 조부모 세대처럼 생활 기술을 배우고, 직접 고치고 만들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립이라고 크리스는 말합니다. 실제로 저자는 이후 한 자전거 가게에서 일손을 돕는 대신, 가게의 중고 부품으로 자신의 자전거를 조립하는 거래를 하게 됩니다. 한 달간의 노동 끝에 그녀가 얻은 것은 수리된 자전거 한 대와, 펑크 정도는 혼자 메울 수 있을 만큼의 정비 기술이었습니다. 자전거가 그녀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곧 그녀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었습니다.
대도시의 쥐처럼 살아가기
: 스퀏팅, 스킵 다이빙
런던으로 돌아온 이후, 그녀는 농촌이 아닌 도시에서도 0원 챌린지가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런던의 '급진적 주거 네트워크'를 통해, 그녀는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두 가지 방법을 체득합니다. 빈 건물 점거 대안 주거인 '스퀏팅'과 버려진 음식을 수거하는 '스킵 다이빙'입니다.

빈 건물을 점거하여 산다는 점에서, '스퀏팅'은 흔히 불법으로 인식됩니다. 그런데 이 행위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깁니다. 유럽 중세 초기, 영주들이 공유지를 사유화하면서 생계를 잃은 평민들의 저항에서 시작되어, 2차 대전 이후 집을 잃은 이들의 생존 방식으로, 1980년대에는 예술가와 활동가들의 문화 운동으로 이어져 온 주거권 운동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도시사회학자 마르티네스 로페즈는 스퀏팅을 "고립되고 불법적인 일탈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도시의 초국가적 운동"으로 정의한 바 있습니다.
저자는 7년 이상 빈 상태로 방치된 런던의 건물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 스퀏팅의 일원으로서 주거를 시작합니다. 그녀가 거주하던 시기의 영국에서는 빈 상업 건물을 점거하는 행위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오히려 스퀏팅이 건물주와의 일종의 거래가 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오래 방치된 빈 건물은 각종 범죄의 본거지가 되기 쉽고, 관리되지 않은 채 허물어져 갑니다. 따라서, 건물주는 건물주는 소액의 관리비만을 조건으로 일종의 건물 관리의 목적으로 거주를 허용하기도 합니다. 사유재산권과 생존권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이렇게 스퀏팅은 때로 양쪽 모두에게 합리적인 대안이 되기도 합니다.

급진적 주거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그녀는 대형 마트와 시장에서 매일 폐기되는 수많은 음식물 쓰레기를 사냥하는 '스킵 다이빙'을 통해 끼니를 해결하기 시작합니다. 쓰레기통 근처에서 음식을 뒤지거나, 가게에 폐기할 음식을 달라고 요청하는 행위가 처음부터 쉬웠을 리 없습니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그녀는 실패자로 비칠까 두려워 신경 쓰던 체면을 내려놓고, 런던의 실력 있는 스킵 다이버로 거듭납니다. 그런 그녀를 두고, 친구는 프리거니즘(자본주의적 소비를 총체적으로 거부하는 운동)을 진정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UNEP의 2024년 식량 낭비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전 세계에서 10억 5천만 톤의 음식이 버려졌습니다. 소비자 단계에서만 전체의 19%가 폐기되고, 이 음식물 쓰레기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10%를 차지합니다. 같은 해 전 세계 인구의 약 10%는 식량 부족으로 인한 굶주림을 견뎌야 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한 사람의 하루를 연장해 주는 생존의 관점으로 본다면, 폐기 직전의 음식을 주워 먹는 행위에서 잃는 체면은 '진짜' 문제가 아님이 분명합니다.
2부. 시스템 '밖'에서의 자립
자연과 연결되는 삶
: 라마스 생태 마을, 레인보우 개더링
농촌과 도시에서 이어간 0원 프로젝트 이후, 그녀는 진정으로 시스템 바깥의 '자연'과 연결되는 삶의 방식을 본격적으로 탐색합니다. 그녀가 잠시 머문 웨일스 북부의 '라마스 생태 마을'은 본래 황무지였던 곳에 정착하여, 스스로 생태계를 만들며 살아가는 퍼머컬처 공동체입니다. 2009년 웨일스 정부의 '원 플래닛 개발' 정책을 기반으로 건축 허가를 받은 이곳은 9개의 소규모 농지가 공동체 허브를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이들은 황폐한 땅에 1만 그루의 나무와 관목을 심고 6개의 연못을 조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벌레와 곤충, 새 등 다양한 생명체가 모여들었고, 황무지는 생명력을 되찾았습니다. 이들이 짓는 집은 원형 흙집으로, 만약 흙이 수명을 다하면 먹거리를 심는 밭이 되기도, 다음 세대의 집을 위한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마을의 구성원인 '자스민'은 그녀에게, 이 삶에서 가장 먼저 되찾아야 할 것이 '직관'이라고 말합니다. 사계절의 변화를 지켜보고, 주변에 귀를 기울이며, 그 공간에서 어떤 생활 패턴을 그려나갈지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 즉, 자연 속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온 감각으로 알아차리는 능력입니다. 초기 인류와 원주민은 문명 교육을 받지 않고도 이 직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끊임없는 소비와 자극 속에서, 우리가 조금씩 잃어버린 감각이기도 합니다.
비로소 0원살이 여정의 끝에서, 그녀는 리투아니아에서 열리는 '레인보우 개더링'에 합류합니다. 1972년 미국 콜로라도에서 처음 시작된 레인보우 개더링은 지금도 매년 전 세계 야생 곳곳에서 열립니다. 인디언 유목민의 삶을 표방하며, 소비주의와 자본주의, 대중매체로부터 벗어나 평화와 연대로 살아가는 일시적 공동체입니다. 이곳에는 디지털 기기 사용 금지, 화학 제품 금지 등 독특하고 엄격한 규칙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각자의 정해진 역할은 없습니다. 매일 필요에 따라 서로를 돕는 방식으로 함께 생활하며, 합류도 헤어짐도 모두 자유입니다. 무언가 필요하면 '커넥션'을 외치면 됩니다. 누군가가 반드시 부름에 응답합니다.

저자가 '레인보우 개더링'에서 겪은 경험들은 이 책의 클라이맥스이기도 합니다. 정확한 규칙과 목표, 노동과 돈 없이도 마치 자연처럼 흘러가는 공동체 속에서, 그녀는 진정한 자립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이 글에서 다룬 그녀의 여정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시스템 바깥의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그녀에게서 돈과 노동, 생존에 대한 불안을 서서히 걷어냈습니다. 삶의 방식이 단순해지고, 가벼워질수록, 그녀의 질문은 '어떻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에서 '어떻게 사랑이 될 수 있을까'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 과정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는, 직접 책에서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돈이 없어도 삶은 있다. 저자 박정미는 현재 지리산 숲속에 오두막을 지어 살고 있습니다. 직접 지은 집에서 전기세 없이 살며, 먹거리의 대부분은 직접 길러 자급자족합니다. 최소한의 돈은 영어를 가르치고, 문화해설을 하고, 이웃의 농사를 돕는 일로 충당합니다. 그녀는 0원 프로젝트를 통해 비로소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사랑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정에서 직접 익힌 생활 기술을 토대로 자연과 공존하며 사는 그녀의 삶은, 시스템 바깥에도 삶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강박, 노동을 멈추면 뒤처진다는 불안, 시스템 밖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두려움. 필자에게 그녀의 자립 이야기는 그동안 당연하다고 믿었던 자본주의적 가치들에 대한 의문을 들게 했습니다. 이것들을 좇느라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