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영화동을 깨운 프로젝트 리터닝
골목 상생이 이뤄낸 로컬 문화공간의 미래
최근 몇 년 사이 군산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최근 군산북페어가 뜨거운 관심 속에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문화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듯이, 군산은 이제 단순히 짬뽕과 같은 음식만을 떠올리는 관광지를 넘어 자생적인 문화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외부의 관람객과 창작자를 끌어들이는 이러한 활력은 몇몇 축제에만 머무르지 않고 구도심 골목의 구석구석으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관이 주도한 보여주기식 정비 사업이 아니라 지역과 상생하며 자생적인 생태계를 일군 성공적인 도시 재생의 현장, 그 중심에 프로젝트 리터닝 군산이 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기획자의 손길
"프렌즈라는 게 크게 특별한 건 없습니다. 골목에서 함께하는 가게들이 다 저희 프렌즈죠."
프로젝트 리터닝 군산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직접 체험하고자 호텔 인그리드를 예약하며 이것저것 궁금한 점을 물어봤습니다. 그동안 크고 작은 구도심 재생 프로젝트를 여럿 경험했으나 이곳의 답변은 사뭇 신선했습니다. 자신들만의 독립된 문화 공간에 머물지 않고 주변 상점들과 스스럼없이 경계를 허물며 연대하겠다는 열린 태도가 답변 곳곳에서 묻어났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골목과의 상생을 최우선으로 둔 공간의 밑그림은 한 기획자의 고집스러운 뚝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과거 서울에서 유명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송성진 대표는 고향 군산에 문화적으로 즐길 만한 다채로운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에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이를 채워보고자 다시 군산으로 내려와 영화동의 부지를 매입했습니다. 그는 건축물을 전면 철거하고 새로 짓는 쉬운 길 대신 옛것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는 까다로운 리모델링 방식을 택했습니다. 당시 방화지구 규제 같은 현실적인 제약들이 발목을 잡기도 했지만 끈질기게 지자체를 설득하여 구조물의 원형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걸림돌을 넘어서며 이토록 어렵게 지켜낸 공간이기에, 그 안에 담긴 의미와 풍경은 분명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하나의 견고한 상생 플랫폼으로서 이곳이 보여줄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한 지붕 아래 모인 다채로운 역사
처음 공간에 들어섰을 때는 각양각색의 건물이 모여 있어 정말 하나의 재생 프로젝트인지 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동의 한 블록 전체를 재생한 프로젝트인 만큼 다양한 건물이 묶여 있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이는 군산의 겹겹이 쌓인 역사가 만들어낸 결과물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직접 호텔 인그리드에 머물며 공간을 찬찬히 경험해 보니 이러한 얽히고설킨 역사를 재해석한 의도가 깊이 와 닿았습니다. 일제강점기 개항장 시절의 적산가옥부터 미군 주둔 시절의 유흥업소와 점집에 이르기까지 시설이 지어지고 용도가 변하는 과정이 반복되며 쌓인 백 년의 세월이 높고 낮은 건축물 사이에 고스란히 얽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건물 사이의 골목을 지나가다 보면 일제강점기부터 미군 주둔기까지 오랜 세월을 거치며 고쳐 쓰고 덧대어진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라운지의 커다란 통창 너머로 마주하는 각 건물의 벽면에는 그 투박한 세월의 자국들이 억지로 가려지거나 지워지지 않은 채 날것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창을 통해 바라보는 거친 벽면과 옛 흔적들은 과거의 고단했던 기억을 숨기지 않고 지금 공간 속에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렇듯 제각기 다른 시대의 공기를 품은 건물은 이제 마당을 통해 자연스럽게 하나로 연결되고 있었습니다. 레스토랑, 카페, 재즈클럽 등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상점들은 각각 존재하지만, 마당을 중심으로 식재료를 나누고 인력을 공유하며 따로, 또 같이 어우러집니다. 과거의 다채로운 역사적 조각들이 모인 이 마당이 오늘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단단한 상생 플랫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골목으로 번지는 프렌즈와의 연대
공간을 둘러보다 보면 프로젝트 리터닝 군산의 생태계 안에만 머무르게 되지는 않습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로 영화동의 맞은편에 있는 옷 가게와 식당이 언뜻언뜻 자연스럽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바로 프로젝트 리터닝 군산의 이웃인 프렌즈 매장입니다.
프렌즈라는 이름은 군산에서 홀로 잘되기보다는 이웃과 함께 상생하고 싶다는 기획 초기의 의도를 담백하게 반영한 이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원래부터 그 자리를 지키던 매장부터 구도심을 함께 살리자는 취지에 공감하며 들어온 매장까지 느슨하면서도 단단한 연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연대가 결코 말뿐이 아님은 이곳의 이웃 매장들을 안내받는 과정에서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은 경쟁 관계라 언급을 피할 법한 인근의 다른 스테이 공간까지 아무렇지 않게 소개해 주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꼭 자신들의 공간에 묵지 않더라도 방문객이 군산 구도심의 매력을 온전히 경험해 보기를 바라는 진심이 크게 와닿는 순간이었습니다.
프로젝트 리터닝 군산의 진짜 매력은 단순히 오래된 공간을 예쁘게 고친 것에 있지 않은 듯했습니다. 낡은 공간을 부수는 대신 다듬고, 주변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택할 때 동네가 얼마나 활기를 되찾을 수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래된 골목의 정취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함께 묻어나는 이곳은 지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좋은 본보기가 되어줍니다. 군산에 발걸음하신다면, 이웃들이 서로 촘촘하게 연결된 이 다정한 골목을 꼭 한 번 천천히 걸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