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아닌 이유로 인생책 만나기
고전 문학에 얽힌 지극히 개인적인 독서 기록
고전 문학이 선뜻 집어 들기 어려운 종류의 책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래서 되짚어보았습니다. 내 인생에서 오랫동안 남아 있는 책들을 어쩌다 읽게 되었는지요. 대체로 지극히 사소한 경험에서 시작했더라고요. 묵직한 교훈이 남은 책도 있었지만, 읽는 과정 자체가 즐겁고 신선해 기억에 남은 책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상품을 구매할 때를 생각해볼까요? 제조 과정, 브랜드 철학, 제품 품질도 중요합니다만 “그거 맛있어.”, “그거 쓰고 인생 폈잖아.”처럼 옆에서 누군가 툭 던지는 말이 경험의 동기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책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지극히 사적인 에피소드도 누군가에게 고전 문학의 입구가 될 수 있겠더라고요.
흥미진진한 줄거리 소개와 수려한 작품 해설은 없습니다. 투박하지만, 저만의 고유한 독서 경험을 풀어보려 합니다. 소개하는 책에서 이미 읽은 책이 있다면 동질감을,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이라면 ‘별거 없군!’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의 부담을 조금 내려놓아도 됩니다. 여러분이 다녀온 독서 여행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나도 그랬지’하고 잠시나마 웃을 시간을 가지시길 바라며!
첫사랑과 함께 쿵-! 들어온 고전 문학
조지 오웰,『1984』

첫사랑을 무엇이라고 정의하시나요? 처음 느낀 사랑, 처음 만난 사람 등 사람마다 첫사랑의 기준이 다르더라고요. 제게는 첫사랑의 기억과 함께 따라오는 책이 한 권 있는데요.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주제의 책, 디스토피아 소설의 교과서처럼 불리는『1984』입니다.
어릴 적 저는 칭찬받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남들이 읽지 않는 책을 읽으면 선생님과 친구들이 칭찬해 줄 것 같아 고전 문학 작품을 읽던 아이였죠. 그렇게 읽은 책의 내용은 당연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책 읽었어요!” 하고 말하거나 적당한 독후감을 써내면 충분했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읽고 싶어서’ 고전 문학을 계속 읽게 해준 작품이 바로『1984』였습니다. 어쩌면 첫사랑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스무 살, 좋아했던 선배가 있었습니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아무 말이나 이어가다가 가방에 무엇이 있는지 물었는데, 선배 가방에서 나온 책이『1984』였습니다. 아니, 고전을 읽는 사람이라고? 갑자기 도전 의식이 생기더군요. 나도『1984』를 읽고 올 테니 다음에 만나면 같이 책에 관해 대화를 나눠 달라 부탁했습니다.
같은 책을 읽고 나면 대화거리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 밑줄까지 그어 가며 두 번이나 읽었습니다. 대화가 목적이었으니 눈으로 쓱 훑는 독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정독할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1984』를 ‘씹어 먹게’ 되었습니다. 흑심으로 시작한 독서였지만 무척 재미있어 약속한 한 주보다 훨씬 빠르게 사흘 만에 완독했던 기억이 납니다. 쓰였던 당시에도, 1984년에도, 그리고 지금도 많은 독자들이 ‘충격 받았다’라는 후기를 공유하는데요. 고유명사가 된 빅 브라더의 감시 체계와 언어 조작에 대한 묘사가 매번 우리의 현재와 겹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 순간 사회 제도, 행정 체계, 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 음모들을 걱정하며 살아가지는 않지만,『1984』덕분에 그 존재를 인지하게 되었다며 선배와 감상을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요? 음, 저는 고전 문학 덕후가 되었습니다. 네, 그렇다고요.
“난 책으로 사랑을 배웠어.”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지금은 사라진 동네 서점의 한 매대 앞을 지나가다가 멀리서 봐도 말랑한 연애 소설이 분명해 보이는 분홍빛의 책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창 밤을 새워 인터넷 소설을 읽던 10대 중학생 시절이라 눈을 빛내며 집어 들었습니다.
집에 가져와 읽기 시작했는데, 이런. 파격적인 설정과 롤러코스터 같은 줄거리로 독자를 유혹하는 인터넷 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옛날 사랑 이야기더군요. 그런데 왜 이리 잘 읽히는 걸까요? 달콤하고 가벼워 술술 넘어가는데, 와중에 생각할거리가 자꾸 남았습니다.
10대 여자아이에게 사랑은 ‘감정’이었습니다. 자꾸 끌리는 것, 뭐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내 세상이 모두 그 사람이 되는 것 말이지요. 하지만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사랑의 결실은 감정 폭발의 순간을 기점으로 맺어지지 않더군요. 차분히 관찰하고, 판단하고, 자신의 오만과 편견을 수정하면서 ‘사람’을 보며 비로소 결실을 맺더라고요. 그 때 평생 잊지 못할 사랑의 원칙이 생긴 것 같습니다. 아,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하려면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구나! 원하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온전히 그 사람 자체로 바라볼 수 있는 겸손함과 차분함을 가져야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인 오스틴은 진정한 사랑을 가로막는 요소를 오만, 편견 두 단어로 정리해주었습니다. 그 두 가지만 지우면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처럼 꼭 맞는 짝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죠. 제인 오스틴만 믿고 살아왔는데요, 오만과 편견이라는 결점을 고치기 위해 평생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건.. 『오만과 편견』을 읽었던 10대 때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오만하고, 편견 덩어리인 사람인 것 같습니다.
세상의 끝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게 될까?
알베르 카뮈,『페스트』

코로나19 팬데믹이 벌써 6년 전이랍니다. 시간 참 빠르죠? 저는 그때『페스트』를 처음 읽었습니다. 매일 보도되는 사망 인구를 보며 인류 멸망의 가능성을 헤아려보던 때였죠.
좀비 영화, 재난 영화가 현실이 된다면 어떨까요? 팬데믹 당시 그 가능성을 꽤 진지하게 헤아려보았습니다. 전염병 시대에 따라야 할 행동 지침은 아마 준비되어 있을 겁니다. ‘이상 증세를 보이는 인간은 즉시 사살할 것’, ‘타인과 대화 금지’.
하지만 전염병 시대에 어떤 철학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갈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철학보다 생존이 먼저니까요. 그런데『페스트』를 읽고 나서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인류 멸망의 현상 앞에서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행동 지침이 아니라 사람의 연대라던가, 부조리에 맞서는 개인의 침착함 같은 것들이거든요.
영화에서는 인류를 구원하는 히어로 캐릭터만 남습니다. 하지만 『페스트』를 덮고 나서는 특별한 영웅 서사 없이 “그냥 오늘도 자기 일을 하는 인물”이 가장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인간의 무력함에 좌절할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묵묵히 해내다 보면 이 시간도 지나가겠구나’ 싶더라고요. 공포와 긴장으로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조금 풀어졌었죠. 팬데믹을 핑계 삼아 무기력하게 흘려보내던 시간을 다시 내 것으로 삼기 위해 노력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단절과 고립의 시대에서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하던 시절. 덤덤한 희망의 목소리로 우리 심지를 붙잡아 준 책이 『페스트』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실제 팬데믹 이후 재독 후기가 급증했다고 하네요.
여행 보내주는 책
가와바타 야스나리,『설국』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각 계절이 오면 클리셰처럼 떠오르는 음악, 영화, 책이 있지 않으신가요? 제게 겨울은『설국』을 꺼내 읽어야 하는 계절입니다. 영화 『러브레터』이전에 문학 작품『설국』이 있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해보고 싶네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작가는 첫 문장부터 우리를 전혀 다른 세계로 데려다 놓고 휙 떠나버립니다. 눈 덮인 시골 마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신비로운 여인이 다가옵니다. 남녀 사이의 어긋나는 감정, 차가운 바람 같은 허무함, 시린 계절감… 뾰족하게 명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독자에게 흘러 들어옵니다. 『설국은』 문장으로 그려내는 풍경과 아련한 감정 묘사가 아름답습니다. 본 적 없는 일본 겨울 풍경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어지고,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사는 여인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죠.
자고로 고전 문학이라면 삶을 깨뜨리는 도끼 같은 교훈을 남겨줘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설국』은 그 편견을 깨준 것 같습니다. 그냥 아름다운 것만으로 파동을 남기는 힘 또한 문학의 힘임을 느꼈거든요. 읽고 나서 달라진 것이라면, 겨울을 마음으로 감각하게 해주는 『설국』으로 계절을 맞이하는 루틴이 생긴 것뿐입니다. 작품이 쓰인 시대적 배경이나 작가의 사상, 내용이나 소재 또는 인물 설정의 논란 같은 것들은 접어두고, 설원의 감각만이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어쩌면 그게 가장 강렬한 독서 경험인지도 모르겠네요.
부모님들과 함께한 독특한 독서 모임 경험
셰익스피어, 『햄릿』

함께 읽은 책은 더 강력하게 남는 것 같습니다. 처음 고전을 접하시는 분들이라면 독서 모임을 기웃거려보셨을 텐데요. 단골처럼 등장하는 지정 도서가 몇 권 있습니다. 두께가 얇아 완독 부담이 덜하면서도 토론할 소재가 풍성한 책들입니다.
저는 유독 『햄릿』을 읽었던 모임이 기억에 남는데요. 비슷한 또래들로 구성되는 여느 독서 모임과는 다르게 부모님 세대의 분들과 함께 소감을 나눴습니다. ‘나 문학 전공이야!’라는 자존심으로 (나름대로) 날카로운 질문들을 준비해 놓았는데요. 다른 분들이 꺼내 놓으시는 이야기를 듣다가 준비한 질문지를 슬그머니 치워버렸습니다.
흔히 『햄릿』이라 하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와 함께 ‘우유부단’의 인간화를 떠올립니다. 이도 저도 못하는 인간상을 잘 그려냈다는 작품 해석만 상기하고 끝나기 마련입니다.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마치 읽은 것처럼 착각하는 책이 고전이라는 정의에 딱 들어맞는 작품이랄까요.
『햄릿』 모임에 오신 분들은 이렇게 출발했습니다. 햄릿이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는 햄릿을 ‘아들’이라는 역할에 가두고 바라본 결과라는 것이죠.
아버지를 독살한 삼촌이 없었다면 햄릿은 한 나라의 왕이어야 했습니다. 국가 정세나 민심처럼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았죠.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삼촌과 어머니를 죽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국가 원수 자리가 공석이 될 테고, 왕위에 오른 사람이 연달아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며 민심은 바닥을 칠 것입니다. 위태로운 왕권을 기회로 삼아 외세가 공격해 올 것이고요.
아버지의 원한을 무시하고 방관한다면? 아버지의 유령이 신하들을 해칠지도 모릅니다. 아버지의 복수를 하자고 어머니를 죽인다면? 이러나저러나 불효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요소를 뜯어보니 햄릿이 우유부단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더군요.
모임에 참여한 멤버들은 저마다의 고민을 꺼내놓았습니다. 사회와 가정에서 부여받은 역할과 책임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가 때마다 내리는 결단이 얼마나 불완전하며, 세월이 길어지며 자신의 무지를 자각할수록 햄릿처럼 불안한 심정이 된다는 사실을 토로했죠. 훨씬 극악의 환경에서 결단을 내야 했던 햄릿이 ‘책임감 있는 남자’, 혹은 ‘조국과 백성, 신하들을 아끼는 군주’로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와 함께요.
3시간에 걸친 대화가 끝나고 생각했습니다. 아, 고전은 함께 읽어야 한다는 말이 이해된다고요. 나와 전혀 다른 경험을 배경으로 한 깊은 생각들을 넓게 풀어놓고 나눌 수 있는 경험이 무척 값졌습니다. 무언가를 이미 알고 있다고 스스로 확신하는 것 또한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습니다. ‘정말 그럴까?’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에게 더 많이 만들어줘야 하겠더군요. 『햄릿』이 그 동기가 되어주었습니다.
고전 문학? 재미있어서 읽어요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면도날』, 『인간의 굴레에서』

고전 문학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어렵고 지루하다는 것인데요. 서머싯 몸의 책을 집어들 땐 매번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서머싯 몸의 어떤 책을 읽어도 “참 재밌었어!”라고 말할 수 있었거든요.
서머싯 몸은 이름난 이야기꾼입니다. 몸에게는 소설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철학이 있었습니다. 현학적이지도 않고, 거드름 피우지 않고, 뻔하지 않게 이야기로 독자들 잡아당깁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게 ‘한 방’이 있는 결말을 숨겨두고, 개성적인 인물을 만들어 독자가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죠.
서머싯 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20대들의 필독서로『달과 6펜스』가 언급되는 것 같습니다. 화가 고갱을 모델로 한 화가 이야기인데, 안정적인 직장과 가정을 뒤로 하고 꿈을 쫓는 주인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게 되거든요. 예술은 무엇이며, 평범한 삶을 포기할 만큼의 열정과 꿈이 내게는 있었는지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되죠. 심오한 질문을 남겨주지만 책은 술술 읽힙니다. 고전이 원래 이렇게 잘 읽히는 거 맞나? 처음에 무척 놀랐을 정도로요. 누구에게나 깊은 생각거리를 안겨주는 필독서들로 시작하는 것도 좋습니다만, 고전과 오랫동안 인생을 동반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재미있는 책을 먼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무감과 허영심은 오래 가지 못할 감정이거든요.
서머싯 몸은 재미난 이야기와 함께 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책상 앞에 놓고 떠나는 작가입니다. 담백하고 단순하게 이야기를 즐기고 싶다면 가장 유명한 『달과 6펜스』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면도날』과 『인간의 굴레에서』로 넘어가 보세요. 혼자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주체적인 삶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특유의 간결하고 유머러스한 문체 때문에 그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고민할 수 있답니다.
AI가 일상을 점령했습니다. 업무에 도움을 받고 정보를 빠르게 얻는 것 이상으로 제 삶이 AI에게 끌려다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취향과 사상이 정해진 틀 안에서만 돌아간다는 느낌입니다. 나의 개성이 서서히 희석되는 것도 모자라 타인이 지닌 개성 또한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을 때는 굉장히 불쾌해졌습니다.
그렇게 다시 들여다보게 된 장르가 고전 문학입니다. 나와 전혀 다른 시대와 문화, 민족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여행하면서 ‘나의 세계는 어떤지’ 다시 들여다보게 되거든요. 느리고 지루하고 뒤처진 고전을 굳이 골라 헤집어가는 작업은 빠르고 간결하게 논리를 전달하는 AI와 대척점에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고전 문학을 억지로 가까이할수록 AI가 빠르게 가져온 논거를 더더욱 뜯어보게 됩니다. AI의 결론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하고 점검하는 힘이 길러지더라는 것이죠.
그럴듯해 보이는 결론보다 지난한 과정에 가치를 두며 살 때 길러지는 힘. 아직 그 힘이 무엇인지 명명할 수 없지만, 과정에서 얻어지는 ‘경험력’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나만의 경험력을 만들어가고 있으신가요? 저는 고전 문학을 도구로 고유한 경험과 시선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