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플로어에서

스스로 씬을 만든 댄서들이 다음세대에게 남긴 것

한국에 없던 장르를 정착시키기 위해 자립한 댄서
Photo by Anna Frizen / Unsplash

혼자 설 수 있는 힘을 자립이라고 한다. 자립하여 그 힘을 발휘하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하고 오랜 시간을 요할 수밖에 없다. 만약 기반을 다지고 그 힘을 꺼내야 한다면 독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대부분의 경우 때가 오길 기다리곤 한다. 그와 반대로 필자는 댄서 활동을 하며 대한민국에서 홀로서기로 시작해 이후의 기반을 다져 많은 후배에게 영향을 줬던 댄서들을 목격했다. 기존의 힙합, 팝핀, 락킹, 왁킹 등 한국에서 알려진 장르가 아닌, 새로운 장르라는 씨앗을 땅에 심었던 그들은 어떻게 끝까지 버틸 수 있었는지, 그들의 자립이 다음 세대의 자립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한국의 볼룸의 시작, RAN

보깅(Voguing)은 1960년대 뉴욕 할렘에서 시작됐고, LGBT 문화를 배경으로 두고 있는 춤이다. 패션 잡지 속 모델 포즈에서 영감을 받아 직선적 동작, 좌우 대칭, 유체적 움직임이 특징이다. 보깅댄서는 House라는 공동체에 소속되어 배틀 형식으로 경쟁하며, 1990년대 마돈나의 노래 <Vogue>와 다큐멘터리 〈Paris is Burning〉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하우스라는 고유한 문화는 마더-프린세스-파더-프린스와 같이 팀원 각각의 역할이 정해지는 구조를 가진다. 스트릿댄스와는 달리 1:1의 배틀이 아닌 하우스끼리 배틀하는 볼룸(Ballroom)에서, 각 하우스는 페이스(Face), 런웨이(Runway), 암컨트롤(Arm-Control) 등 다양한 카테고리별로 경쟁하며 단순한 댄싱 능력만이 아닌 드레스 코드와 전체적인 예술적 표현을 겨룬다. 볼룸은 승패를 넘어 사회에서 소외된 흑인·라틴계 LGBTQ+ 커뮤니티가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해방구이자 제2의 가족 문화로 기능했다.

한국의 하우스 오브 러브의 단체 사진
이미지 출처: 인스타그램 @houseoflove.kr

하지만 2016년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퍼포먼스 속에서 사용되는 동작으로서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보깅을 널리 공유하고, 향유하고, 즐기기 위해 가장 먼저 볼을 열었던 사람이 바로 댄서 란(RAN)이다. 당시 왁킹처럼 매주 행사가 열리는 장르와 달리 보깅은 즐길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었고, 누군가 먼저 판을 깔아야 문화가 이어진다는 생각으로 망원 스튜디오에서 첫 볼을 열었다. 미러볼과 관객석 의자를 직접 준비하고 포스터도 손수 만들었으며, 친숙한 왁킹을 스페셜 배틀로 추가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이후 댄서 위자드(Wizzard)가 쇼미볼을 개최하는 등 뒤를 잇는 이들이 생겨났고, 하우스들이 직접 볼을 여는 단계까지 씬이 빠르게 확장됐다.

동영상 출처: 유튜브 채널 <고래비츠 Gorabbitz>

그러나 판을 만든다는 것이 늘 환호 속에서 이뤄지진 않았다. 댄서 란은 한국 대표로 출전한 레드불 월드 파이널에서 아무 호응 없는 정적 속에 배틀을 망쳤던 날, 그녀는 그동안 너무 즐기기만 했었는가에 대한 의문점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그녀가 다시 일어선 방법은 옛날 영상을 보며 멈춰있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작은 성장 하나를 붙잡는 것이였다. 란에게 자립이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이러한 자립의 방식은 다음 세대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녀가 수업에서 수강생에게 동작 하나를 배운 뒤 바로 프리스타일을 시키며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독려한 것처럼, 볼 문화 역시 누군가에게 허락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공간을 만들고 채워나가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수강생들이 소문을 내고, 그 제자들이 또 볼에 관심을 가지면서 씬은 자생적으로 성장했다. 그녀가 실행한 문화 공유, 향유, 즐겨야 이어지는 태도가 한국 볼룸 씬 전체의 문화적 토대가 된 셈이다.


선구자로 활동하는 댄서, MING

멤피스 주킨(Memphis Jookin)은 미국 남부 멤피스라는 도시에서 태어난 춤이다. 클럽에서 DJ Spanish Fly의 〈Gangsta Walk〉라는 곡이 나오면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도는 G-train에서 갱스터 워크가 나왔고, 음악도 점차 발전하며 많은 댄서들의 요소가 더해져 탄생한 스타일이 멤피스 주킨(Memphis Jookin)이다. 주로 워킹, 풋 노트, 스텝을 위주로 사용하는, 멤피스의 음악과 라이프 스타일, 문화가 담긴 춤이다.

멤피스 주킨 세션 영상 / 동영상 출처: 유튜브 채널 <LILBUCKDALEGEND>

밍은 한국에 아무도 없던 주킨이라는 장르를 혼자 개척하며 성장시켰다. 수업 환경조차 갖춰지지 않았던 시절, 줌(ZOOM)으로 수업을 들으며 독학에 가까운 방식으로 실력을 쌓았고, 주킨 행사를 직접 열면서 저지, MC, DJ까지 두루 경험했다. 그러나 재미있어서 시작한 일이 어느 순간 외로움이 됐다. 플렉싱도, 주킨도, 무언가를 전향할 때마다 아무도 옆에 없었다. 그는 재밌어서 시작하고 선택한 장르지만,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홀로 선다는 것은 외로움과 책임감을 동시에 짊어지는 일이었다. 홀로서기에 어려움이 있을 땐, 그는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 되물었고, 늘 자신의 춤을 사랑하기에 의문점에 답이 되었다.

댄서 밍(Ming)의 라인업 8강배틀 / 동영상 출처: 유튜브 채널 <Bitgoeul Dancers>

그 과정에서 댄서이자 DJ로서 활동하는 5000(오천)이 주킨 음악을 틀어주고 샤라웃을 해주는 등 주변의 연대가 씬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이를 혼자 한 게 아니라 그 타이밍과 자리에 있던 분들 덕분이라 돌렸다. 이렇게 그가 쌓아온 씬은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로 이어졌다. 그는 수업을 진행하며 다양한 제자이자 동료를 늘려갔고,  AZN STEPPERZ라는 팀을 꾸려 국경과 지역을 넘나드는 커뮤니티를 만들어냈다. 그가 제자들에게 늘 강조한 것은 기술보다 춤을 추는 것에 재미있어야 한다는 태도였다. 호기심 하나로 시작한 이들이 스스로 주킨을 즐기고 전파하는 선순환, 그것이 댄서 밍이 만들어낸 구조였다.

동영상 출처: 유튜브 채널 <노피크루 l NOP:E CREW>


무에서 유로 만들어 영화계까지 진입한 댄서, MUTURN

플렉싱(Flexn)은 1990년대 초 자메이카의 댄서 Bruk Up이 창시한 브룩업(Bruk Up) 스타일에서 비롯되어, 1992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시작된 케이블 쇼 <Flex N Brooklyn>을 통해 독자적인 춤 문화로 자리잡았다. 포우징(Pausing), 겟 로우(Get Lo), 그루빙(Grooving), 햇 트릭(Hat Trick), 본브레이킹(Bone-breaking), 커넥팅(Connecting), 글라이딩(Gliding), 7가지의 요소를 통해 춤을 자유자재로 표현한다. FDM(Flexn Dance Music)은 댄스홀의 베이스를 기반으로 브루클린에서 만들어진 플렉싱 댄스 음악으로, 강한 킥과 베이스 레게 보컬, 영화와 게임의 FX 효과음이 특징이며 다크하고 웅장한 느낌을 주는 음악으로 손꼽힌다.

이미지 출처: https://neocha.com/magazine/flex-n-korea/

댄서 Muturn(뮤턴)은 그의 춤을 통해 멋을 전달하고 싶어한다. 깊은 의미나 메시지보다, 멋이 담긴 춤을 추고 그것을 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한다. 그러나 그 멋을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플렉싱의 본고장인 뉴욕에서 몇몇 흑인 댄서들은 아시아인이 자신들의 춤을 추는 것을 두고 문화를 약탈하는 행위라 욕했다. 심지어 총으로 쏴 죽여야 한다는 내용까지 들었기에 그 말은 상처가 됐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고 바로 뉴욕으로 건너가 결승까지 올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인종차별에서도 춤이라는 문화와 그의 실력을 통해 손가락질하던 대상에게 인정을 직접 받아냈다. 

동영상 출처: 유튜브 채널 <플렉싱 뮤턴 Muturn>

뿐만 아니라 플렉싱이라는 장르를 자리매김하기 위한 실행력과 묵묵히 해내는 꾸준함은 결국 스크린으로까지 이어졌다. 〈방법〉, 〈킹덤〉, 〈해피니스〉,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외계인〉, 〈헌트〉, 〈무빙〉, 〈스위트홈 시즌2〉 등 상상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움직임을 플렉싱의 요소를 통해 구현하며, 영화와 춤을 연결하는 새로운 매개체가 되었다.와중에도 그는 문화를 널리 알리고 많은 제자 양성을 위해 플렉싱의 본토로 넘어가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세 명의 댄서는 서로 다른 장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각자의 자리에 섰다. 댄서 란은 판을 직접 깔았고, 댄서 밍은 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외로움을 버텼으며, 댄서 뮤턴은 묵묵히 쌓아온 꾸준함으로 새로운 문을 열었다. 표현은 달랐지만 공통된 맥락은 하나다. 외부의 인정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의 내면에서 버티는 힘을 찾았다는 것이다. 혼자 서 있던 사람이 결국 다음 사람이 설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한국의 볼룸 씬의 토대가 되어 이제는 각국의 댄서들이 한국에 모이게 했고, ‘AZN STEPPERZ’의 팀 결성으로 국경을 넘는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스크린은 플렉싱이 닿을 수 있는 세계를 넓혔다. 그들은 거창한 선언 없이 그저 씨앗을 심고 있었을 뿐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지금 무엇을 심고 있는가? 만약 두려워진다면, 기억해도 좋다. 그들도 처음엔 아무도 없는 플로어 위에 혼자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