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영화 대신 뮤지컬 영화를
어색한 비약을 보고 안심하는 순간
수천 평의 세트를 짓지 않아도 세계관을 구현할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배우를 교육할 필요도, 제작비를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감탄을 만들지만, 보고 또 보다 보면 피로가 쌓입니다. 인간이 굳이 해온 모든 걸 AI는 순식간에 구현합니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왜 노력한 것인가” 그렇게 삶의 본질을 고뇌하게 됩니다.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AI 영화를 피하고 싶었습니다.
AI 영화를 마음으로 느낄 수 없는 이유는, 어쩐지 ‘사람’의 이야기 같지 않은 탓일까요? AI 영화를 피해 뮤지컬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굳이 뮤지컬 영화인 이유가 있습니다. 뮤지컬 영화에는 요즘의 AI 영화가 추구하는 바와 정반대의 감성이 있습니다.
AI 영화는 인간의 감정을 따라하기 위해 디테일하고 고저가 깊지 않은 감정선을 보여줍니다. 표정 근육을 얼마나 잘 쓰는지가 '사람을 잘 따라했는지'의 이상한 기준이 되고요. 그러나 인간은 생각보다 설득력 있는 감정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상한 이유로 울고 웃고 소리지릅니다. 뮤지컬 영화는 이런 감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음악을 통해 주인공이 감정선을 더 과감하게 보여줄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하죠.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 현실적이지 않은 세트까지 등장합니다. 주변 인물은 일제히 춤을 추기 시작하고요.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말할 정도로 초심자에게는 난해한 전개일 겁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영화가 당신을 이끌어 줄거 거든요.

1900~1920년대 여성의 삶은 쇼비즈니스 그 자체입니다. 직접적으로 쇼비즈니스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주체성을 가지려면 오히려 가부장적이고 물질만능주의인 시대를 인정해야 한다는 모순 속에서, 여성들은 다른 자아를 꾸며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최선의 탈을 씁니다.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무기가 되기 때문이죠.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1953)

로렐라이는 ‘아름답지만 멍청한 금발’이라며 애인의 지인들로부터 무시당합니다. 그러나 사실 누구보다도 영리한 그녀는 당당히 이 노래를 부릅니다. ‘Diamonds are girl’s best friend’ 여성의 사회 진출이 어려운 시대에서 물질로 나를 지켜야 한다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시대를 정확히 관통하는 메시지로 작품에 깊이를 더합니다.
물랑 루즈 (2001)

새틴은 파리의 카바레 물랑 루즈의 주인공입니다. 그녀가 등장하면 모두가 감탄하지만, 그녀는 ‘진짜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자신이 정말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고뇌합니다. 결국 그녀는 사랑하는 무대 위에서, 그리고 애인의 품속에서 마지막 숨을 뱉습니다. 처절한 새드엔딩 같아보이지만, 가면을 쓰고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룬 장엄한 엔딩으로 느껴지도 합니다.
시카고 (2002)

살인을 저지른 벨마와 록시는 감옥에서 만납니다. 유능한 변호사를 한 명을 두고 그를 선임하기 위해 서로 견제하고 갈등합니다. 그러나 결국 힘을 합쳐야 생존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두 인물은 결국 작품 끝에는 하나의 무대에 섭니다. 그렇게 듀오 댄서가 된 두 여성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춤을 춥니다. 꿈결 같으면서도 현실 같은 마지막 장면은 뮤지컬 영화의 환상성을 배가 시킵니다.
장면의 화려함과 달리 세 작품 속 현실은 암울합니다. 돈이 필요한 주인공은 돈을 좇고, 미래를 꿈꾸던 주인공은 사랑을 찾고, 사형 선고를 받은 주인공은 생존을 쫓죠. 하지만 현실의 타개책을 단 하나로 규정하고 이를 향해 직진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쾌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인생을 해결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구멍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가는 주인공, 우리는 그곳에서 인간의 본질을 느낍니다.
비현실성은 현실에 발을 디딘 감정을 말하고 있을 때 비로소 설득력을 갖춥니다. 기술의 발전은 결국 표면일 뿐, 시청자인 인간의 본질에 닿지 못하면 ‘작품’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을 터입니다. AI 영화에 깊이가 생긴다는 건 그런 의미가 아닐까요? 점점 판타지로 향하는 AI 영화계가 언제 현실에 발을 붙이게 될지 지켜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