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질 수 있는 조각들
김보경, 김영서, 김진선, 김채은, 나하윤, 박희민, 방은우, 신민주, 윤아인, 은신영, 이가영, 이고은, 이서원, 이용현, 이주은, 이채영, 주수빈

방문을 열자,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찬기가 밀려온다. 그것은 종일 기다린 형색인데, 이를 마주하며 어찌어찌 두 손을 비비는 것으로 무언가의 형태를 끈다. 다분히 의식적인 자의식이다.어둑한 낮은 낮으로서 충분하지 않다. 대상을 식별하기에 어려움이 없다고 해도, 제 존재에서 얼마간 빗나간 것이다. 환하지 않은 건, 과도한 몸짓으로 말썽을 일으키는 악동의 결과적으로 선한 행위인지도 모른다.쌍을 이루는 것들의 형상을 처음엔 일부로만 받아들이다가 어느 시점을 지나선 그것을 주저 없이 총체로 맞는다.저 뒤편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조금도 새롭지 않을 때 움츠린 대상의 다부진 음영을 요란하게도 깨진다. 이렇게 이름 없는 비명과 한때의 번영은 기록을 같이하고.

두 팔 벌려 반길 어슴푸레함이 있다. 은연중에 그것을 생각한다. 진척 없는 바람은 이젠 흐릿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애석한 일이지만, 정답기만 해서는 무엇도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주관은 단순한 나열을 거부하기에 거창한 외형이라도 급히 빌려와야 하는지도.나보다 먼저 존재한 개념에 서린 흔적은 그동안의 행보로 파악되며, 그 일종의 항해는 난해한 안부를 거리낌없이 전한 후 선명하게 떠난 사람들의 행렬을 떠올리게 한다. 내리막길엔 바닥이 없다.

골목에 여러 가게가 즐비한 것치고 인적은 드물었다. 이곳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공존하는지도 모른다. 만약 가게의 수가 줄어들거나 골목이 사람들로 붐비면 기분 좋은 균형은 한순간에 과녁이 될지도.뭉그적대는 구름을 홧김에 재촉한다. 이 성화는 공중에 옮겨붙어 가지 못하는 곳이 없으리라.'의미를 던지지 못한 신호는 아무것도 아니며 무엇도 될 수 없는 환경 그 자체이다.' 머리들이 속삭였다. 아무도 듣지 못한 말은 작디작은 새장에 갇힌다.

가만히 있는 것의 두려움은 이국의 언어가 침범할 때 느끼는 감정과 동일했다. 그 정도가 알아듣기는 하나,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한다. 혹은 대변한다.자리를 털고 일어나 자세에 적당한 기울기를 입히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주변을 넘긴다. 그것은 넘어갈 때마다 개별적인 장을 토하고, 낱장은 곧 불안을 토로한다."어디까지가 여기이고, 어디까지가 저기인가. 지금은 항상 먼발치에 놓여, 마음 같지 않은 미완을 어제로 여기며 이와 결부된 세계를 다른 인격으로 보냈다."

모르는 곳으로 도약한다. 걸음은 굳이 나누자면 무거운 쪽에 가깝다. 춥지 않은 날씨가 그것의 무게를 조금 덜지도 모른다.낙서의 존재 증명. 저들끼리 이룬 떨림. 움직임은 떠든다. 너무 당황스러워 어떤 말도 하지 못한 날의 정경은 여전히 무디고 조용하다. 칠흑 같은 밤이었다고 누군가 말했다.'기왕 하루를 뛰어넘을 거라면 미지근한 온도가 좋을까.' 적당한 의문은 기교 없이 비교적 순탄한 꼬리를 서슴없이 내렸다.

한층 더 깊이, 메마른 마음도 잊고. 우리의 만남으로는 좋은 핑계가 될 수 없다. 충분함의 여부보다는 그저 부서지게 낯설기 때문인지도. 알 수 없는 깊이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좀먹음을 칠한다. 이 과정에 개입할 실수는 어린 벼락 따라 간 지 오래고. 황량한 방편에 무수한 새싹이 돋는 상상으로 속을 죈다.형태를 갖춘 군더더기의 미덕이 퉁명스럽게 돌아서며 건넨 뒷모습이 특정 부분이 빛나는 사물처럼 느껴질 때,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는 사물은 이 기록의 문장처럼 길게 고개를 빼고 좌우를 변증한다. 논리적인 대상이 될 텐가, 아니면 실제적인 삶과 끝없는 조우를 겪고 무엇이든 직각(直覺)으로 느낄 텐가. 위아래는 너무나도 달라서, 좌우의 다름과는 영원히 같지 않아서.

별반 다르지 않은 것들이 제 걸음을 논한다.'그들은 한 번도 다름에, 덧없는 탄생에 오른 적이 없대.'영 탐탁지 않은 행진은 진척 없는 문제에 감히 여정을 두었다. 이에 대한 인식의 부재는 돈 내고 돈 먹기. 기껏 차린 상에 재 얹기.혼란한 상황에 홀로 자리 잡은 녀석을 떠올려야지. 어떤 여지도 주지 않고 빈번한 생략을 통과한 그것을.번뜩이며 떠오르는 생활상이 가로로 접힌다. 우둔한 대상에 우호적인 태도는 삼가기로 한다. 이전까지 배려가 나를 벼리고, 나는 황급히 날을 버린다. 예기를 띤 시선은 인식을 등에 업고 없이 자란 한때를 과도함에 두는데."같잖아, 그런데 이전 너와 같잖아."

"우리 저 높은 구름을 보면서 살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