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회화 Painting in Spring

강종길, 김민조, 문유소, 문주혜, 박시원, 이코즈

봄 회화 Painting in Spring
<봄회화 Painting in Spring>, 강종길, 김민조, 문유소, 문주혜, 박시원, 이코즈, 2026.04.04 - 05.02, 대안공간 루프 이미지_양승규
문유소, 그 어디도 아닌 곳, 2024, 캔버스에 유채, 162.2 x 260.6cm / 그 어디도 아닌 곳 6, 2025, 캔버스에 유채, 130.3 x 193.9cm 이미지_양승규

누구의 염원보다 더 긴 시간이 도래할 듯하다. 설령 이미 닥쳤다고 하더라도 큰 차이를 빚어내지는 못할 터다.
몸을 웅크려야지 잠들 수 있는 존재의 수는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았다. 고정된 실체가 정도껏 발악하는 듯해 평소보다 더 서둘러 눈 감고 떴다.
'횟수에 젖은 보화, 어렵사리 빛나며 사물은 점점 사사로워지는데.'
적막한 풍경을 여러 번 거른다. 촘촘한 체에 걸린 침묵의 일부는 광활한 하늘을 연상시키다가도 아무것도 아닌 채 그저 멎는다.

막연한 사유가 막다른 길에 몰려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할 때 정돈된 주변과 정지한 개체는 그것을 위해 무언가 하려 들지도 모른다. 관념적인 사다리나 그에 준하는 들것을 준비하며.

이코즈, J-D 북구 중장면 -하옥계곡-선녀탕 #A, 2025, 캔버스에 유채, 181.8 x 227.3cm / J-D 죽장면 상옥계곡-마을 맨 끝-나므 대문으로 #A, 2024, 캔버스에 유채, 181.8 x 227.3cm 이미지_양승규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위상은 접촉과 함께 대상을 떠났다. 급속도로 허물어진 관계가 둘로 나뉜 것들을 관망한다.
심도 있는 대화를 기피하다 보면 머지않아 바닥이 보이지 않는 우물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까마득한 깊이에 어안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저도 모르게 명징한 거리를 지나 아한 공간에 들어설 때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이 조소를 부서져라 두드리며 깨우침을 줄까.
애먼 상자 옆에 눈먼 이상을 쌓고, 이 누적에 거리낌없이 말을 건 후 천연덕스럽게 그러지 않은 체한다. 기껏 편 제자리가 죄스러워 바라만 보았다.

골몰하기 좋은 장소를 찾아 떠난다. 목적이 확실한 여정이지만, 어째 방황을 매개로 한 일인 듯하다. 터무니없는 웃음 내지 주름을 얼굴에 올리고 무수한 계단을 오르는 생각에 빠진다. 사실 나는 줄곧 계단을 오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점점 높아지는 고도가 예고된 몰두를 느슨하게 조이며 낯빛으로 무량한 대상을 만들어내며.
'무량한 대상을 만들어내는 것. 대상을 무량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둘의 차이 속에 산다.
차가운 지붕은 뻣뻣한 몸이 아무렇지 않은 듯 그 상태를 지속하였다. 흔적보다 뒤처진 걸음이 한기 아래 쏟아진다.

"넌지시 물어봤다고 하지만, 사실 제법 절박했던 거야. 어떻게든 구슬리고 싶었던 거겠지. 결국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고, 나중에서야 오히려 그게 더 나았다고 생각됐지만, 그러기까지 정도를 우습게 아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것도 종잡을 수 없게."
질문을 가장한 말이 있었다. 그것은 단정적인 어조로 누구에게든 향했다. 비록 한때라도 당시엔 아무도 가림이 없었다.

수풀로 우거진 어귀를 지날 때마다 물에 젖은 덩어리 일반을 기어코 떠올린다. 특징 없는 덩어리.
진한 초록의 형태. 무엇을 쫓아내지도, 그것에 떠밀려 밀려나지도 않는 고독한 자국.
흔들거리는 의자에 앉아 비스듬히 천장을 바라본다. 절로 삼킨 위아래는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군더더기 없이 드러내고. 나타남과 같은 모자람이 기묘한 잔상을 남긴다.
예의 어귀를 뒤로한다. 판단 없는 보행을 이제껏 유지한 건 어째서인지. 알 수 없음도 이동한다.
황량한 장면이 단편적으로 이어지며 이와 결부된 흐름은 오직 좌우로만 겉돌고.
단속적인 잠을 목에 둘렀다고 그는 말했다.

강종길, 구음풍경[어기아 어야], 2025, 캔버스에 유채, 22.7 x 15.8cm 이미지_양승규

장식 없는 화단을 지나니 곧 장대 밑이다. 그것을 올려다보는 게 여지없이 하늘 아래 있음을 상기시킨다. 되도록 그런 상황에 빠지지 않으려 하지만, 부득이하게 의식은 머리 위로 향한다.
물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아 근처에 개울이 있는 것 같은데, 선뜻 찾을 마음은 들지 않는다. 아래로 흐르는 물 따라갈 시선이 단지 괜하게 느껴질까 봐. 이 걱정은 유백색이다.
걸터앉을 데가 어디 있나, 하고 두리번거리던 내게 길에 연이어 늘어선 돌부리가 덜컥 내려앉는다. 그것들은 제법 견고한 모양이다.
'폭이 좁은 골목과 견줄 건 그늘에 느닷없이 부딪힌 볕뿐이다.' 이 단상은 앞선 충돌처럼 갑작스럽다.

주중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유리병에 잠을 반쯤 채우는 중이었다. 병의 입구가 넓어 다행히 바닥에 떨어지는 건 없었다. 기쁜 일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번거롭지 않아 서두름 없이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가능성의 측면에서 두 번 각성하고 한 번 잠든다. 쉼의 형태는 일그러진 후로 여전히 이지러진 꼴이다. 어지럽게 사물을 파악하는 방법. 쫓은 꿈과 변두리의 낙서. 허무하고도 낯선 밤이 펼쳐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