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가까워지고 싶다면
세 편의 소설로 탐색하는 나만의 문학 취향
아름다운 문장에서 감동을 얻거나 사회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문학을 숙제처럼 느껴지게 만들진 않았나요? 그런 고정된 잣대를 내려놓는 순간, 문학을 즐기는 방법은 훨씬 다양해집니다. 지금 내가 끌리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찾아가는 것, 그것이 문학을 만나는 가장 좋은 출발점이자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나만의 답을 쌓아가는 방법일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각기 다른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개성적인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아름다운 언어로 보편적 물음에 닿는 작품, 지금 이곳의 현실을 날것으로 비추는 작품, 그리고 엉뚱한 상상력으로 이야기 자체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작품까지, 문학이 가진 다채로운 매력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감각적인 문장으로 마주하는 질문들
— 한강, 『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흰』은 기존의 소설들에 비해 독특하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흰 것들에 대한 65편의 짧은 글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소설이면서도 시처럼 읽히기도 하죠. 한강 작가 특유의 정제된 문장들은 고요한 아름다움을 자아냅니다.
작품 속 '그녀'는 폭격으로 95%의 건물이 초토화된 '흰' 도시였던 바르샤바에 머물며, '흰' 강보에 싸여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를 떠올립니다. 언니가 떠났기 때문에 자신이 태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 위에서, '그녀'는 눈, 파도, 성에, 초 등 흰 것들을 매개로 삶 곁에 늘 놓여 있는 죽음과 사라짐을 사유합니다. 우리의 삶이 누군가의 부재와 무언가의 사라짐 위에서 영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질문을 던집니다.
소설은 아름다운 언어와 실험적인 형식으로 이 질문을 감각적으로 마주하게 만듭니다. 촛농, 성에, 눈송이처럼 한순간에 사라지거나 녹는 것들을 정제된 언어로 정교하게 묘사하고, 구판본에는 흰 것에 대한 사진 이미지가 삽입되어 텍스트 너머의 감각까지 확장하죠.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주변의 흰 것들, 사라지는 것들을 새삼 떠올리게 됩니다. 언어의 아름다움을 통해 삶의 물음에 도달하는 것, 이것이 『흰』이 보여주는 문학의 힘입니다.
우리가 지나온 현실,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
— 박상영, 『믿음에 대하여』

작년 영화와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대도시의 사랑법』을 아시나요?『대도시의 사랑법』이 20대 퀴어의 뜨거운 사랑을 그렸다면, '사랑 3부작' 최종장인 『믿음에 대하여』는 30대 퀴어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사회초년생 시절을 통과해 직장에 자리를 잡아가고, 동반자와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가려 하죠. 하지만 일과 사랑 어느 하나도 만만치 않습니다. '요즘 애들'이라는 프레임과 부당한 처우, 회사 안 눈치 보이는 정치 싸움, 영끌로 함께 집을 마련하는 현실 등 우리 사회의 구체적인 경험들이 소설의 결을 이룹니다.
특히 202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팬데믹과 방역 시스템이 개인에게 어떤 낙인으로 이어졌는지를 날카롭게 그려냅니다. 감염자의 동선이 공개되면 온라인에서 비난이 쏟아지고, 주변으로부터 원망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죠. 나아가 소설은 소수자에게 혐오가 집중되던 현실을 비추며, 이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삶을 보여줍니다. 이들에게 감염자 동선 공개는 자신의 정체성과 관계가 노출될 수 있다는 위협이자, 겨우 꾸려놓은 일상 자체가 흔들리는 경험이었죠.
이 작품은 우리가 막 겪은 현실을 기록함으로써 당시에는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보게 만듭니다. 방역이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에게 쏟아진 시선이 정당했는지, 우리가 무심히 가담한 것은 없었는지를 되묻게 하죠. 문학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은 이런 것입니다. 이처럼 문학은 때로 빠르게 지나간 현실을 붙잡아 놓고 우리가 놓쳤던 질문을 꺼내 보게 합니다.
이야기 자체가 건네는 즐거움과 위로
— 이유리, 『브로콜리 펀치』

마지막으로 소개할 『브로콜리 펀치』는 가장 직관적인 방식으로 독자에게 다가옵니다. 이야기의 재미 그 자체로요. 『브로콜리 펀치』에는 엉뚱한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집니다. 번아웃에 빠진 복싱 선수의 오른손이 브로콜리로 변하고, 유골을 심은 화분에서 아버지가 식물로 되살아나며, 죽은 남자친구가 옷에 남아있던 손톱 조각에 빙의해 5년 만에 나타납니다. 그런데 인물들은 크게 놀라지 않고 대처하죠. 이 태연함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톤이 이 소설집의 첫 번째 매력입니다.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엉뚱한 이야기는 다음 페이지를 얼른 넘기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소설집이 단순히 엉뚱해서 재미있는 것은 아닙니다. 황당한 설정의 이면에는 차마 말로 꺼내지 못한 애틋한 감정들이 숨어 있습니다. 너무 많은 괴로움을 삼키다 손이 브로콜리가 되어버린 이와 그를 묵묵히 위로하는 연인의 다정함, 죽음 이후에도 다른 형태로 이어지는 부녀 사이의 사랑, 잊고 있던 감정을 마저 정리하며 진정한 이별로 향하는 마음처럼요. 그 애틋한 마음을 발견하는 순간, 웃음은 울컥함으로 바뀌고 어느새 위로를 얻게 됩니다.
깊은 철학적 물음이나 사회적 메시지가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이야기 자체의 흡인력이 독자를 끌어당기고 결국 정서적 울림을 만들어 냅니다. 읽는 재미라는 가장 본능적인 경험을 통해 독자의 마음에 닿는 것, 그것 역시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문학은 단 하나의 얼굴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 소개한 세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흰』에서 사회적 맥락을 읽어낼 수도, 『브로콜리 펀치』에서 인간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지요. 하나의 작품 안에서도 독자마다 발견하는 것이 다르다는 점이야말로,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의 폭이 무궁무진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문학이 무엇이냐는 정의가 아니라, 지금 내 손에 들린 한 권의 책이 나에게 어떤 울림을 주느냐 하는 경험입니다. 그 울림이 향하는 곳이 곧 자신만의 문학적 취향이며, 그 취향을 따라가는 일이야말로 문학을 가장 정직하게 만나는 방법이 아닐까요. 이 세 작품이 그 탐색의 출발점이 됐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