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립으로 완성되는 자립

미술관 연대가 보여주는 자립의 진짜 조건

연립으로 완성되는 자립
출처 : Muzeum Sztuki Nowoczesnej

'자기의 일은 스스로하자.' 어린 시절 지겹게도 들었던 말인 것 같죠? 우리는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는 것을 성숙함의 척도로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상태와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지 않는 상태는 과연 같은 의미인지 의문이 드는데요. 2009년 출범한 유럽 미술관 연합체 L'Internationale(랭테르나시오날)을 경유해, '자립(自立)'이라는 말 옆에 '연립(聯立)'이라는 언뜻 상반돼 보이는 단어를 나란히 놓으며, 진정한 자립의 조건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자립의 역설

자립의 사전적 의미는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않고 제 힘으로 서는 일"입니다. 이렇게 들으면 굳건하고 멋진 말 같습니다. 하지만 이 정의에서 '의지하지 않음'에만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립은 고립과 구분이 어려워집니다. 아무도 필요하지 않은 상태. 아무에게도 손 내밀지 않는 상태. 그것이 정말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할 자립의 모습일까요?

사실 우리가 '자립'을 말할 때 진짜로 원하는 것은 조금 다를지 모릅니다. 누구에게도 끌려다니지 않을 것. 내 자리를 내가 지킬 것. 내 이름으로 설 것. 그 마음에 가장 가까운 답을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했습니다. 바로 미술관들의 연합체에서 말이죠.


L'Internationale, 노동가에서 미술관 연합으로

2009년, 유럽의 여러 미술관이 L'Internationale(랭테르나시오날)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모였습니다. 이 이름은 노동운동의 상징인 〈인터내셔널가〉에서 빌려왔습니다. 창립 이념은 단 한 줄이었죠.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함께 한다."

출처 : L'Internationale Online

현재 이 연합에는 14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Museo Reina Sofía),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Zagreb), 그리고 지금도 전쟁이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시각문화연구센터(Center for Visual Culture)까지. 지리도, 언어도, 처한 현실도 전혀 다른 기관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로 합쳐지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이름을 지켰고, 각자의 컬렉션을 지켰습니다. L'Internationale라는 이름은 그들 중 어느 기관도 아닙니다. 14개의 기관이 자립을 포기하지 않은 채 '함께 서기로' 선택한 이름이죠.


연립의 실천, Museum of the Commons

L'Internationale의 가장 최근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이 연합이 단지 아름다운 선언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L'Internationale Online

2023년부터 2027년까지 4년에 걸쳐 진행되는 'Museum of the Commons'는 L'Internationale의 네번째 프로젝트입니다. EU로부터 200만 유로의 지원을 받아 미술관을 '공유재(Commons)를 위한 오픈소스 도구'로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죠. 기후, 조직, 과거라는 세 개의 축을 중심으로 60여 개의 활동이 동시에 진행 중인데요.

이 프로젝트에서 주목할 것은 구성 자체입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시각문화연구센터 역시 정식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는데요. 지금 이 순간에도 키이우에서 문화 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같은 탁자에 앉아 있다는 사실에서 L'Internationale의 '연립'이 단순한 네트워킹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연립은 편한 상황끼리만 손을 잡는 것이 아닙니다. 불편하고, 어렵고, 서로 다른 현실에 놓인 채로 함께 서는 것이 연립이 됩니다.


연립의 한계 "연대에는 견고한 것이 없다"

하지만 연립을 마냥 아름다운 그림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출처 : Kyiv Biennial 2025

2025년 키이우 비엔날레 위성 포럼의 제목은 〈There Is Nothing Solid About Solidarity(연대에는 견고한 것이 없다)〉였죠. 그 자체가 하나의 고백처럼 들립니다. '연대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연대야말로 가장 불안정한 상태일 수 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 같습니다. 각자의 자리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서려면 언제나 협상이 필요하죠. 내가 원하는 방향과 상대가 원하는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 순간은 피할 수 없고, 그 갈등을 건너뛰고는 진짜 연립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연립은 모두가 같은 답을 가지게 되는 상태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답을 가진 이들이 끊임없이 협상하고, 불일치를 견디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자를 함께 지키기로 선택하는 과정입니다. 또한, 이 과정은 각자가 단단히 자립되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자리가 흐릿한 사람은 협상 자체를 할 수 없으니까요. 연립은 자립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립을 가장 정직한 방식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연립의 진짜 조건

L'Internationale의 14개 기관은 각자의 이름과 컬렉션을 단단히 쥔 채 한 탁자에 둘러앉았습니다. 누가 누구를 이끌지 않았고, 누가 누구에게 흡수되지도 않았습니다. 각자의 자리가 분명했기에 옆자리를 비워둘 수 있었고, 옆자리를 비워두었기에 각자의 자리는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자립이 연립의 조건이 되고, 연립이 자립을 완성하는 방식이 L'Internationale가 16년째 유지되어 온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혼자 서는 것과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진짜 자립은 분리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옆자리를 인정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죠.


자립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혼자인 사람을 떠올리지만, L'Internationale이 16년째 보여주고 있는 것은 조금 다른 장면입니다. 각자의 이름이 가장 또렷해지는 순간은 바로 다른 이름들과 나란히 놓일 때가 되죠.

어쩌면 자립이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상태가 아닐지 모릅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알고 있는 상태.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비어있는 옆자리에 오게 될 다른 누군가를 기꺼이 맞이할 수 있게 되죠. ​오늘 당신의 옆자리는 비워두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