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한 페이지를 담백하게 닫는 법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루지 못한 꿈과 담백하게 작별하는 법에 관하여
끈질긴 노력 끝에 꿈을 이루어낸 이들의 이야기는 아름답습니다.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어떤 홀로서기는, 자신이 온 몸을 다해 사랑해온 무언가를 내려놓으면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드라마〈콩트가 시작된다〉는 무명 코미디언들이 꿈을 향해 달려가다가 여러 어려움 끝에 결국 성공을 맛보는, 흔한 청춘 드라마가 아닙니다. 이야기는 첫 화부터 콩트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세 사람의 사연을 다룹니다. 그러나 마냥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어떤 홀로서기는 잔인한 현실과 만나면서 시작된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여 결성한 콩트 코미디 그룹 ‘맥베스’의 세 사람은 콩트를 시작하기 전 가족과 약속합니다. 10년이 되어도 팔리지 않으면, 그러니까 아르바이트 없이 코미디만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되지 못한다면, 미련 없이 그만두자. 이렇게 결심하며 콩트를 시작한 그들은 마치 예언처럼 '팔리지' 못합니다. 세 사람은 10년 간 여러 부업을 전전하며, 본업인 '콩트'에 전념할 수 있는 때를 기다립니다. 매주 새로운 콩트를 쓰고, 연습하고, 관객이 거의 없는 소극장에서 공연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덧 서른을 앞두고 있습니다. 결혼하고 싶어하는 애인이 있고, 아들 걱정에 속을 끓이는 부모님이 있고, 물려받을 가업과 친구를 잃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그들을 옥죄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쓰디쓴 탈락과 패배의 시간을 지나, 해체를 결정합니다.
동시에 이 이야기를 바깥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카하마 리호코는 1년 반 전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뒀습니다. 동료들에게 배신당하고 혼자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 뒤, 한동안 폐인처럼 지내던 그녀는 우연히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거기서 매주 콩트를 연습하는 맥베스 세 사람을 보게 됩니다. 리호코는 서서히, 또 조용히, 그들의 숨은 팬이 됩니다. 누군가의 열정적이고 천진한 삶이 무너져 있던 그녀에게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리호코의 여동생 츠무기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길을 잃었습니다. 중고등학교 6년 내내 야구부 매니저로 '전설적인 매니저'라 불렸던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방향을 잃고 맙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온 사람이, 더 이상 그 역할이 없어지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겁니다. 대학에도 가지 않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스낵바 직원에 정착합니다. 그러던 중 회사를 그만둔 리호코가 집에 틀어박혀 우울해하자, 그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로 다짐합니다.

꿈을 내려놓으려고 결심한 사람, 배신당한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 보려는 사람, 타인을 위한 역할에서 벗어나 자기 자리를 찾으려는 사람까지.〈콩트가 시작된다〉가 그리는 홀로서기는 이렇게 다양합니다. 다섯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속도로, 한 페이지의 끝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홀로서기는 타인의 진심을 필요로 한다
맥베스는 주로 콩트를 쓰고 연출하는 ‘프론트맨’ 하루토와, 처음 콩트를 하자고 제안한 준페이,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한 슌타까지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팀입니다. 세 사람은 각자의 역할을 다 하며 한 집에서 합숙하고 있습니다. 드라마는 세 고등학교 동창이 결성한 콩트 트리오 '맥베스'가 직접 창작한 콩트 작품들을 각 에피소드의 줄기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 콩트들은 주인공 각자의 기억과 관계, 인생의 숙제와 연결되어 있음이 밝혀집니다.
슌타의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각별합니다. 그는 원래 프로게이머였고, 고등학교 시절 진짜로 죽음을 생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옥상에서 우연히 만난 하루토가 먼저 말을 걸었고, 슌타는 그 순간부터 "이 사람을 위해 내 목숨을 태우겠다"고 결심하며 맥베스에 합류합니다. 요컨대 슌타에게 맥베스는 꿈이기 이전에, 삶을 계속하기로 선택한 이유였습니다. 2화 콩트 '옥상'의 소품으로 슌타의 실제 유서가 쓰였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질 때, 우리는 그들의 콩트가 단순한 공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비로소 이해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들이 서로를 붙잡아온 방식이었고, 살아낸 시간의 증거였습니다.

하루토의 이야기는 3화 콩트 '기적의 물'에 녹아 있습니다. 다단계 사기에 빠져 대기업 직장을 잃고 히키코모리가 된 형의 이야기가 원재료입니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형과 그를 구하려는 동생이 끝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과정을 웃프게 그려낸 콩트인데, 하루토가 그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웃음으로 만들어냈다는 게 묘하게 마음을 건드립니다. 현실에서는 해결하지 못한 것들을 콩트라는 형식 안에서 다시 들여다보고, 다른 결말을 써보는 것. 하루토에게 쓴다는 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들과 계속 대화하는 방식이었던 셈입니다.
준페이의 홀로서기는 셋 중에서 가장 조용하고, 어쩌면 가장 긴 싸움이었습니다. 10년을 함께한 연인은 결혼을 원했고, 준페이는 10년 내내 "조금만 더"를 반복합니다. 맥베스가 끝나면 가업인 술 도매업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꿈도, 사랑도, 가족도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으려다가 결국 모든 걸 미뤄온 사람이 바로 준페이인 셈입니다. 9화 콩트 '결혼 인사'는 그 무게를 그대로 무대 위에 올려놓습니다.
한편 맥베스를 지켜보며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두 사람도 있습니다. 슌타를 만나면서 츠무기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에 다가가게 됩니다. 고등학교 매니저 시절을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던 그녀는, 맥베스의 소속사에서 매니저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됩니다. 리호코는 천천히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고 이직에 성공합니다. 이 에피소드들이 말해주는 것은 결국 우리의 삶은 타인과 주고받은 마음들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해체를 결정했지만, 그들이 '콩트'라는 방식으로 세상과 사람을 만나고 경험해온 자국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콩트'를 통해 그 시간들을 다시 확인하고, 새롭게 만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
마지막 공연을 몇 주 앞두고 슌타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정든 차를 팔기로 합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세 사람의 온갖 여행과 오디션, 공연을 함께했던 추억이 깃든 차입니다. 그 차와 작별하며 그들은 차를 직접 세차합니다. "이 차는 맥베스의 네 번째 멤버야." 하루토가 말합니다. 맥베스의 역사가 전부 깃든 차를 세차하며 그들은 정말로 작별이 임박했음을 실감합니다.
마지막 해산 공연에서 맥베스는 10년 동안 함께 만들어온 콩트들을 전부 다시 무대에 올립니다. 해산 공연이 곧 그들의 10년 전체를 펼쳐 보이는 시간이 됩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 세 사람은 마지막으로 가위바위보를 합니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그들이 함께 자취방에서 사용하던 ‘냉장고’의 주인을 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작별한다는 슬픔 대신 그들만의 활기찬 에너지로 가위바위보가 이어지는 동안, 하루토는 생각합니다.
“이대로 영원히 비긴다면, 이 시간을 끝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건 아마도 가위바위보 대결이 끝나면, 다시는 이런 바보 같은 시간이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모두가 꿈과 성공을 부르짖지만 그것만이 삶의 이유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 "다만 이야기가 남았"*다고. 그리하여 삶을 평가하는 기준이 세속적인 것들에만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맥베스를 바라보며 깨닫습니다. 더 큰 무대에 서지 못했어도, 심야 방송에 출연하는 스타가 되지 못했어도, 그들의 청춘은 충분히 아름다웠다는 것. 그들은 결국 빽빽하게 수놓은,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기억과 감정의 순간들을 지나왔다는 것.
*김상혁 시집,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
한 페이지를 어떻게 닫을 것인가
맥베스 3인방이 각자의 길을 찾아 흩어진 후, 그들이 살던 집에 새로 이사 오려는 개그맨 지망생들이 등장합니다. 마치 맥베스처럼 3인조인 그들은 부동산 중개인에게 묻습니다. "여기 전에 개그맨들이 살았다고 하던데, 잘 나갔나요?" 중개인은 이렇게 답합니다. "잘 되진 않았지만, 사랑받았습니다."
우리 또한 지금 뜨겁게 욕망하는 미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런 순간이 오면 '맥베스'가 그랬듯이, 라멘 한 그릇을 뚝딱 비우는 것처럼 담백하게 끝낼 수도 있을 겁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기다려주지 않으니, 그저 마음만 고쳐먹으면 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건 실패도 잘못도 아닐 것입니다. 그저 한 시절을 뜨겁고 치열하게 통과해온 것일 뿐. 그리고 이제 그 시절을 놓아주기로 했을 뿐. 울다가도 웃어 넘기고, 웃다가도 울음이 터져버리고 마는 미지근한 작별의 시간을 잘 보내고 나면, 한 페이지가 넘어가고 다음 페이지가 우리 앞에 놓일 것입니다. 무언가를 위해 내 전부를 태우는 삶이 아름다운 만큼 미완의 자국들을 오롯이 끌어안으며 다음을 기약하는 삶도 못지않게 아름답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