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쉼이 있는 공간, 뮌헨의 현대 미술관 3곳

여행 중 고요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조용한 쉼이 있는 공간, 뮌헨의 현대 미술관 3곳

독일 남쪽에 위치한 뮌헨은 맥주 애호가들에게 천국 같은 도시입니다. 세계 최대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가 매년 이곳에서 열리니, 축제가 시작하는 9월이면 도시는 살짝 취한 듯 유쾌한 분위기로 물듭니다. 그런데 뮌헨이 단지 맥주로만 유명한 건 아닙니다. 이 도시는 알테 피나코텍(Alte Pinakothek), 노이에 피나코텍(Neue Pinakothek), 피나코텍 데어 모데르네(Pinakothek der Moderne)라는 세 개의 미술관으로 구성된 세계적인 미술관 단지인 ‘피나코텍(Pinakothek)’을 품고 있습니다. 고전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이 방대한 컬렉션 덕분에, 뮌헨은 독일에서도 손꼽히는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조금 덜 알려졌지만, 현대 예술 애호가라면 꼭 들러야 할 뮌헨의 현대미술관 세 곳을 소개합니다. 사람들로 붐비는 유명 미술관 대신, 차분하고 깊이 있는 감상을 원하는 분들에게 특히 추천합니다.


Pinakothek der Moderne

© myrzikundjarisch
© myrzikundjarisch

‘피나코텍 데어 모데르네(Pinakothek der Moderne)’는 유럽 최대 규모의 현대 미술관 중 하나로, 현대 미술, 디자인, 건축, 판화까지 네 가지 분야의 컬렉션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고전미술을 다루는 알테 피나코텍, 19세기를 중심으로 한 노이에 피나코텍과 함께 뮌헨 3대 피나코텍 중 하나입니다. 미술관 건물은 회색 콘크리트와 투명 유리를 활용한 미니멀한 구조로, 자연광이 은은하게 들어와 작품 감상에 몰입하기 좋습니다.

출처: 웹사이트 "Kunstareal München"
출처: 웹사이트 "Kunstareal München"

현대 미술 컬렉션(Sammlung Moderne Kunst)은 20세기 초부터 지금까지의 회화, 조각, 사진, 비디오 아트를 아우르며, 약 2만 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파울 클레(Paul Klee),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같은 독일 작가들뿐 아니라, 피카소(Pablo Picasso), 마티스(Henri Matisse), 달리(Salvador Dalí), 워홀(Andy Warhol) 등 전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 Rainer Viertlböck
© Rainer Viertlböck

디자인 컬렉션(Die Neue Sammlung – The Design Museum)은 세계 최초이자 최대 규모로, 바우하우스에서 현대 산업 디자인까지의 흐름을 훑어볼 수 있는 귀중한 공간입니다.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디터 람스의 초기 브라운 전자제품이나 바실리 체어처럼, 사진으로만 보던 디자인 아이콘들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건 이곳만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디자인이나 가구,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될 뮤지엄입니다.

출처: 웹사이트 "Kunstareal München"
출처: 웹사이트 "Kunstareal München"

판화 컬렉션(Staatliche Graphische Sammlung München)은 무려 40만 점이 넘는 드로잉과 판화를 소장하고 있는데,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부터 19세기 독일 드로잉까지 폭넓은 작품들이 감상할 수 있습니다. 유화에 익숙한 눈에 색다른 자극을 주는 컬렉션이며, 뒤러, 렘브란트, 미켈란젤로, 반 고흐, 세잔 등의 드로잉도 만나볼 수 있으니,우리가 알던 거장들의 또 다른 면모를 엿보게 되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출처: 웹사이트 "Kunstareal München"

건축 컬렉션(Architekturmuseum der TUM)은 도면, 사진, 모형 등 수십만 점의 아카이브를 자랑하며, 독일어권 지역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건축을 전공하거나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보물 같은 자료실이기도 하죠.

출처: 웹사이트 "Kunstareal München"

전시를 다 보고 나면, 미술관 앞 잔디밭에 앉거나 누워 여유를 즐겨보는 것도 좋습니다. 바로 앞에는 알테와 노이에 피나코텍이 보이고, 파란 하늘 아래 병맥주 하나 들고 앉아 있으면 이 자체로 훌륭한 여행의 한 장면이 됩니다.


Brandhorst Museum

출처: 웹사이트 "Museum Brandhorst"

‘브란트호스트 뮤지엄(Brandhorst Museum)’은 피나코텍 데어 모데르네에서 가까운 예술 지구인 쿤스트아레알(Kunstareal)에 위치해 있습니다. 외관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데, 36,000개의 세라믹 막대가 23가지 색을 입고 리듬감 있게 배치되어 있어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이곳은 유럽에서 가장 많은 앤디 워홀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사이 톰블리의 대작인 12점으로 구성된 「레판토(Lepanto)」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특별히 설계된 8각형 전시실에 상설 전시되어 있어, 추상미술 애호가라면 놓치면 후회할 만큼 인상적입니다.

뮤지엄 자체가 비교적 한적해 조용히 감상하기 좋고, 1층에 위치한 ‘Walther König’ 예술 서점도 들러볼 만합니다. 디자인, 예술, 건축 서적을 천천히 고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또 하나의 숨은 매력은 카페입니다. ‘Café im Zebra’라는 이곳은 예술가 듀오 가이튼/워커가 디자인했으며, 다른 미술관 카페들과는 다르게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의 사랑을 받는 곳입니다. 아침에 가면, 책을 읽으며 브런치를 즐기는 뮌헨 사람들의 일상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Haus der Kunst

출처: 웹사이트 "Deutschlandfunk"

‘하우스 데어 쿤스트(Haus der Kunst)’는 독일 뮌헨의 중심에 위치해 있습니다. 영국 정원(Englischer Garten) 인근에 있어 공원을 산책한 뒤 전시를 감상하기에 좋은 동선입니다. 이 건물은 다소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1937년 나치 정권에 의해 “Haus der Deutschen Kunst(독일 미술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나치의 예술 정책과 선전을 위한 중심지로 활용되어, 보수적인 사실주의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었죠. 하지만 1946년 이후, 현대 예술 전시 공간으로 새롭게 거듭나며 지금은 많은 현대 미술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 미술관은 상설 전시 없이 기획 전시만으로 운영되며, 다양한 인종과 배경을 지닌 동시대 작가들의 전시도 활발히 열리고 있어, 실험적이고 다채로운 현재의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공간입니다.

© muenchen.de/Benedikt Feiten

미술관 바로 옆에는 뮌헨의 또 다른 명소가 숨어 있는데요. 바로 도심 속 서핑 스팟인 ‘아이스바흐벨레(Eisbachwelle)’입니다. 영국 공원을 가로지르는 인공 수로의 시작점에 위치한 이곳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고정 파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1m 정도 높이의 파도지만 흐름이 강하고 일정해, 고수 서퍼들이 즐겨 찾습니다. 주변에는 늘 서핑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고, 파도 소리와 함께 서퍼들의 멋진 라이딩을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여름엔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이곳, 미술관 가는 길에 꼭 한 번 들러보세요. 짧은 시간이지만 오래 기억에 남을 경험이 될 겁니다.


글에서 소개한 세 곳의 미술관은 제가 뮌헨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 자주 찾던 장소입니다.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영감을 얻기 위해, 또는 마음이 심란할 때 고요함을 찾기 위해 찾곤 했죠.

현대 예술은 때때로 어렵고 멀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뮤지엄에서 마주했을 때, 그 거리감은 조금씩 좁혀집니다. 작품의 크기나 질감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만 느껴지는 감동도 있고, 공간 속에서 빛을 발하는 작품들도 있으니까요.

유럽 여행에서는 주로 고대, 중세, 근대 미술을 감상하게 되지만, 뮌헨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현대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에 한번 들러보는 건 어떨까요? 생각보다 깊은 울림을 안겨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