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사회 전체에서 일어난다

요제프 보이스의 작품 3선으로 본 예술의 본질

예술은 사회 전체에서 일어난다
요제프 보이즈, ⓒArstper Magazine

과거의 예술이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재현의 문제에 몰두했다면, 현대 예술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집중해 왔습니다. 이 질문에 가장 급진적인 답을 제시한 인물이 바로 독일의 예술가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입니다.

보이스는 예술을 단순히 박제된 오브제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이자 사회 전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동적인 에너지라고 정의했습니다.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한 그는 우리에게 친숙한 백남준과 함께 독일 뒤셀도르프를 무대로 교류하며 예술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그에게 예술은 곧 삶 그 자체였습니다. 정치, 교육, 환경, 공동체 등 모든 사회적 행위가 예술이 될 수 있으며,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든 창조적 행위가 곧 예술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조각과 퍼포먼스, 설치 미술을 넘어 직접 정치 활동에 참여하며 예술의 무대를 미술관 밖, 즉 사회 전체로 확장했습니다.

기존의 예술이 결과물로서의 작품에 머물렀다면, 보이스 이후의 예술은 변화의 과정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활발히 논의되는 참여 예술이나 관계 미학의 뿌리에는 모두 보이스의 사유가 흐르고 있습니다. 보이스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예술의 관념을 근본부터 뒤흔든 혁명가였습니다.

<7000 그루의 떡갈나무 (7000 Oaks), 1982>

요제프 보이즈, <7000그루의 떡갈나무> 프로젝트 시작을 알리는 모습

이 프로젝트는 1982년 독일 카셀에서 열린 도큐멘타에서 시작된 보이스의 대규모 예술 프로젝트입니다. 이 작업은 전시장 안에 놓인 하나의 완성된 오브제가 아니라, 7,000그루의 나무를 심고 자라나게 하는 수년에 걸친 과정 그 자체를 예술로 정의합니다.

보이스는 도시에 7,000그루의 떡갈나무를 심겠다고 제안하며, 나무 한 그루당 하나의 현무암 비석을 세웠습니다. 누군가는 이것을 단순한 환경 운동이나 공공 미술로 볼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보이스의 예술관인 '사회적 조각(Social Sculpture)'이 현실 세계에서 완벽하게 구현된 사례입니다.

사회적 조각은 보이스의 핵심 예술 개념입니다. 그는 사회를 하나의 거대한 조각으로 간주했습니다. 기존의 조각가가 돌이나 금속을 깎아 형태를 만들었다면, 사회적 조각가로서의 예술가는 인간의 사고, 언어, 행동을 재료 삼아 더 나은 사회를 빚어가는 사람인 것이지요.

그는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누구나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창의성을 발휘해 사회라는 거대한 조각품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7,000명의 시민이 참여해 나무를 심고 도시의 풍경을 바꿔나간 이 프로젝트는 예술이 미술관을 넘어 정치, 교육, 생태계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건이었습니다.

<7000그루의 떡갈나무> 프로젝트

<펠트 수트 (Felt Suit), 1970>

펠트 수트, 1970 ⓒ Tate

벽에 걸린 펠트 소재의 양복 한 벌. 이것이 작품의 전부입니다. 외형적으로는 매우 미니멀하고 차가운 개념 미술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보이스 예술 개념인 보호와 에너지, 그리고 사회적 주체에 대한 사유가 담겨 있습니다.

보이스에게 '펠트'는 매우 특별한 소재입니다. 이 천은 열을 보존하고 인간의 몸을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합니다. 그는 예술을 단순히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대상이 아니라, 상처받은 인간과 사회를 치유하고 에너지를 보존하는 매체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이 양복은 따뜻한 온기를 품은 정신적 외피이자,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막을 의미합니다.

또한, '양복'이라는 형태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상징합니다. 개인이 사회 속에서 수행하는 역할과 그를 규정하는 사회적 제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양복 안에 사람이 없다는, 즉 주체의 부재입니다. 물질은 존재하지만 그 안에서 행동할 인간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이 옷을 입게 될 누군가의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보이스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이 결과물로서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입혀지고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되는 잠재적 에너지임을 말합니다. 아직 아무도 입지 않은 이 양복은 우리 모두가 사회적 조각가로서 행동하기 직전의 상태, 즉 새로운 사회를 형성할 수 있는 창조적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거대한 퍼포먼스나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인간과 사회의 구조를 '옷'이라는 가장 가까운 사물로 치환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이스의 예술관이 급진적이고도 함축적으로 드러난 작품입니다.

<우리는 혁명이다 (We Are the Revolution), 1972>

우리는 혁명이다 ⓒ MoMA

'우리는 혁명이다'라는 문구가 쓰인 포스터 작업으로, 보이스 자신이 모자와 조끼를 입고 정면을 향해 걸어오는 사진이 담겨 있습니다. 단순한 포스터처럼 보이지만, 그의 예술 사상이 직접적으로 투영된 선언문과 같은 작품입니다. 사진 속에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보이스의 모습은 그가 박제된 초상이 아니라 움직이고 행동하는 주체임을 보여줍니다.

흔히 혁명이라고 하면 정치적 급변이나 특정 집단의 물리적 행동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보이스는 혁명이 외부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내부에서 시작되는 개인의 내적 변화임을 상기시킵니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는 그의 개념은 예술가를 특별한 소수가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고 영향을 미치는 모든 인간으로 정의합니다. 또한 예술은 가만히 서서 감상하는 대상이 아니라 현실을 변화시키는 구체적인 행위임을 나타냅니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로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보이스가 말하는 혁명은 꼭 거창한 것만이 아닙니다. 나의 고정된 사고가 변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이 전환되며, 나와 관계 맺는 것들이 재구성되는 것. 그는 이것이 곧 진정한 의미의 혁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예술을 전공하다 보면 요제프 보이스라는 이름을 피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합니다. 현대 예술의 기틀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예술 이론과 사유 방식에도 그가 남긴 유산은 매우 깊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는 그의 말은 예술 전공자 입장에서 처음 접했을 때 마냥 편하게 들리지만은 않았습니다. 예술가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치열하게 사회를 고민하며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려 애쓰는 사람들만이 겨우 예술가라 불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저는 그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누구나 작품을 만든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에 관심을 두고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한다면 우리 모두가 이미 예술가로서 존재한다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회의 구성원이자 주체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사회적 문제들을 나와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고, 당장 내 앞에 놓인 일에만 매몰되어 있지는 않은지 반성하게 됩니다. 보이스가 말하는 사회적 실천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작은 나무 한 그루를 심듯 사회에 작은 관심을 보태는 것, 내 삶에서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 자체가 곧 예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질문을 던져봅니다. 우리는 지금 예술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는 내 삶의 창조적인 주체인가요? 보이스의 작품을 마주하며 우리 각자의 삶과 실천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