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회 아마도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

고요손 x 문현정

제 13회 아마도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
<제 13회 아마도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 아마도예술공간, 2026.04.10 - 05.10 이미지_양승규

억지로 편 종이는 볼썽사나운 자국을 남기며 우그러들었다. 별안간 뉘우친 기색이 역력한 어제가 자꾸 말하다가 말고, 하다가 말고 그런다.
기껏해야 변한 마음이 논한 취향. 모종의 신호를 확인하여도 세 시간이라는 장막은 눈앞에 펼쳐져 비바람을 불러오기도 한다. 손목의 불꽃, 이것은 장치인가.
"그 사람은 알고도 모를 인물이었지요. 표정의 층위가 얼마나 기묘하던지 이를 단숨에 오르고 싶은 생각마저 들더군요(이건 그의 인물됨과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만)."
그는 여기까지 쉼 없이 말하곤, 어떤 보상을 요구하는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조형된 침묵 위로 장거리 주자와 더블 바순 연주자가 일순 겹쳐 보였다.

그가 소리를 반기는 것으로 말은 이어졌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고 혼잣말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혼자였는지, 주변에 누가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런 걸 고려할 만큼 여유롭지는 않았어요. 당시 나는 속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것도 요령 없이요."
그의 말은 단단한 벽돌집을 떠올리게 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제법 정겨운 면이 있는 벽돌집이다.
그는 오후 네 시의 적막함을 확인하고 나에게 이를 재차 확인하듯(분명 당신도 보았지요) 지그시 나를 보았다.
그는 무수에 젖었고 나는 비통했다.

고요손, 적積, 2026, 도자 점토, EPS, 철, 185 × 75 × 72cm 이미지_양승규

"그 사람은 알다가도 모를 인물이다. 혹은 그 반대여도 나는 아무 상관 없어요. 정말 상관없어요."
그는 관련 없음에 관하여 신신당부하며 말을 맺었다.
한때 그가 열었던 사상이 이해될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이를 위해 그는 지금까지 말했는지도 모른다. 대화에 열중하는 이들의 모임이라는 제목이 어딘가 붙으려 한다.

나는 일정한 부위에 있어요. 그가 말한 듯하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일정한 부위에 있어요.

고요손, 바람(願), 2026, 사각 강관, 케이블 타이 730 x 100 x 420cm / 상(像), 2026, EPS, 우레탄 레진, 갈바륨 강판 100 x 40 x 170cm / 1975-아마도, 2026, EPS, 철, 철사, 미러 시트 100 x 100 x 360cm 이미지_양승규

선택에 의하여 초록은 우거졌다. 동등한 위치였던 붕괴는 사라진다.
천장을 들고 내리는 불빛 속 비밀 같은 흔적이 점점 선명해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무성한 녹음 아래서 생각한다.
조심스러운 바람이 수중에 파고들었다. 이른 만남.
남겨질 뿐인 감각은 어수선한 상황 몇에 질적으로 우수한 서두를 끼얹으려 하는데, 쉽지 않은 모양이다. 행위의 반복을 요령 있게 하기 위해선 우스운 생활상이 일부 필요할지도 모른다. 시선의 투정을 뒤로 물리는 생각, 꽤 괜찮은 농담. 서늘한 주위에 담뿍 불안을 옮겨 담는다.

고요손, 큐레이터 온 어 벤치, 2026, 석고 붕대, 브론즈 페인트, 철, 우레탄 레진, 철사, 180 x 76 x 119cm 이미지_양승규

만나자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보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그 사이에서 형평성이라는 것을 떠올리는 나의 입장은 둥글면서 굵다. 우연에 연연할 정도로 운수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지름길이 순수하게 기름지길 기대한다. 염원. 활보와 함께하는 운명 공동체. 비틀거리는 뒷모습에서 비정함을 느낀다면, 이는 어떤 자격이 될지도.
타오르는 풍경 뒤엔 위태로운 계단이 제딴에 옳은 판단을 하며 언 밤을 지닌다. 그것은 결코 길지 않아 순간적인 순례 같기도 하다.

"그렇긴 하네." 그의 동의는 어딘가 쓸쓸한 면이 있었다. 말투에 섞여 든 어조의 공백이 친절하게 갈 곳을 안내한다. 1층으로 올라가셔서 바로 보이는 문 말고, 그다음에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본의 아니게 여름을 두 번 보낸 기억은 당시의 상황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전체의 상을 숨겼다. 열심히 뛰어가는 사람들이 간과한 건 과거의 거적인가. 출구 근처 벽지가 울었다.
대상의 구김진 구성은 꿈틀거리는 속내를 그늘에 두었다. 이제껏 등장한 적 없던 그들이 어제에서 내일에서 오늘로 몰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