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무 노구치 조각의 유용성
체험하는 조각, 공간과 몸이 만나는 자리
만 23세의 나이로 구겐하임 펠로우십에 선정된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 그는 절단이나 용접 같은 인위적인 제작 방식이 아닌 돌과 나무 같은 자연 재료가 가진 물성 자체에 주목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자연스럽게 '예술 작품이기 이전에 명확한 기능을 가진 사물'로서 조각의 '유용성(Usefulness)'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그의 작품 세계를 담은 책 『Isamu Noguchi – Essay and Conversation』에서 노구치는 유용성이 조각에서 필수적이라 말합니다. 조각은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닌 온전히 '체험'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할 때 종종 원시 조각과의 연관성을 끌어옵니다.
"태초에 존재했던 모든 조각품과 관련 있다. 여기 있는 내 조각들도 마찬가지다. 스톤헨지와 비교해 보면, 거의 같은 선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유용성'이란 정확히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의 조각에서 어떻게 나타날까요? 지금부터 그 의미를 함께 쫓아가 보시죠.
원시 조각이 가지는 ‘기능’
이사무 노구치는 조각 제작 과정에서 '표현하는 방식보다는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에 초점을 둔다고 밝힙니다. 그렇다면 그가 언급한 스톤헨지와 같은 원시 조각품은 어떤 '내용'을 담고자 했을까요?
영국의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Hans Josef Gombrich)는 과거의 조각품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들은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닌 명확한 ‘기능’을 가진 사물로 여겨졌다. … 조각상은 마술을 부리기 위해 사용된다.”
실제로 과거의 주술사들은 적의 형상을 작게 만들어 그 심장을 뚫거나 태우며 적에게 고통이 전해지기를 바랐는데요. 이때 중요한 건 형상의 정확한 재현이 아니라, 그 행위를 통해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투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스톤헨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태양과 달을 의식하고, 대지를 초월하고자 했던 인간의 마음이 거대한 돌의 배열로 나타난 것이죠.
즉, 원시 조각품의 '기능'은 외부 대상을 있는 그대로 흉내 내는 물질적 재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서 형성된 어떤 간절한 의식과 바람을 조각 안에 담아내는 데 있습니다. 노구치가 원시 조각에 주목한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예술이 되기 이전, 조각이 가졌던 본래의 유용성, 사람의 의식을 촉발하고 체험하게 하는 힘을 되살리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실용적 유용성'과 노구치의 '유용성'이 갈라지는 지점입니다. 도구의 유용성이 기능의 효율성에 있다면, 노구치의 유용성은 관계의 촉발에 있습니다. 조각이 공간 안에 놓이고, 사람의 몸이 그 주변을 걷고, 눈이 형태를 따라가며, 내면의 어떤 기억과 의식이 깨어나는 순간. 그것이 노구치가 말하는 조각의 유용성이 실현되는 순간입니다.
‘유용성’과 노구치의 조각
이사무 노구치는 조각, 정원, 무대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용성'에 대한 사유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 과정은 일관되게 세 가지 요소의 관계를 탐구합니다. 조각, 조각이 놓인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몸이 그것입니다.
<쿠로스(Kouros)>, 1945

1945년작 <쿠로스>는 대리석 판재로 구성된 약 3미터 높이의 조각입니다. 눈을 형상화하는 듯한 구멍과 십자가 형태의 팔 모양을 가지며, 못이나 접착제 없이 돌들 간의 정밀한 결구 방식만으로 연결됩니다. 이러한 구조는 상단의 무거운 덩어리가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노구치는 인간의 형상이 가장 기본적이고 표준적인 형태 중 하나이며, 예술은 사람의 기억을 자극하는 무언가를 떠올리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쿠로스>의 분절된 조각들과 눈, 팔, 머리를 암시하는 형태는 관람자 각자의 의식 속 기억을 재현하도록 유도합니다. 동시에 3미터에 달하는 크기는 관람자로 하여금 자신의 몸, 조각의 크기, 전시 공간의 볼륨 사이에서 끊임없이 관계를 재설정하게 만듭니다.
<험프티 덤프티(Humpty Dumpty)>, 1946

1946년작 <험프티 덤프티>는 리본 슬레이트(ribbon slate) 판 아홉 조각이 접착제나 나사 없이 맞물려 지지되는 구조입니다. 영국 동요에 등장하는 의인화된 알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이 작품은, <쿠로스>보다 비교적 작은 약 1.5미터 크기이지만 사람의 눈, 다리, 둥근 머리를 암시하는 형태를 담고 있습니다.
<쿠로스>와 유사하게, 관람자는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작은 조각의 크기와 자신의 신체, 공간의 볼륨 사이에서 끊임없이 관계를 맺습니다. 이음새 없이 맞물린 분절된 부분들은 관람자를 '논리적 추론의 주체'로 만들어, 각자의 의식 속에 내재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며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게 합니다.
세 번째 작품, <플레이 마운틴(Play Mountain)>, 1933

『Isamu Noguchi: the sculpture of spaces』에는 <플레이 마운틴>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불행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응답이었습니다. 도쿄의 절벽 위에 있는 황량한 놀이터를 두려움으로 다가갔던 경험이었습니다."
낮은 피라미드 형태, 오목하게 파인 부분, 능선 모양의 측면으로 이루어진 이 놀이 조각은 썰매를 타기 위한 경사면, 수영장, 계단을 포함합니다. 명확한 기능을 띠는 조각의 형태가 공간 속 어린이들의 몸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동시에, 피라미드나 계단 같은 특정 형태는 개개인의 의식 속에 잠재된 심리적 재현물로서 사용자로 인해 새로운 의미를 가집니다.
<아카리(Akari)>, 1951~

일본의 전통 갓등에서 영감을 받은 <아카리>는 아코디언처럼 접을 수 있어 가볍게 운반하고 보관할 수 있습니다. 반투명한 코조 섬유로 만들어진 외피는 공간에 은은한 빛을 퍼뜨리는데, 이는 일본 전통 건축의 쇼지(미닫이문)에서 얇은 종이를 통해 빛이 스며들던 노구치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빛을 반사하는 일반 조각과 달리, 아카리는 내부에서 빛이 새어 나와 조각 자체가 빛의 형태가 됩니다.
"결국 빛의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저는 조각에 대한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각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그런 느낌, 그때야말로 그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노구치의 조각은 개인적 경험과 기억에서 출발하여, 명확한 '기능'을 가진 일상적 사물이 '공간'과 '몸'과 관계 맺는 방식을 설계합니다. 그렇게 구성된 조각은 사용자의 '의식'을 불러일으키며 다시금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조각은 완성되는 순간이 아닌, 체험되는 매 순간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가장 오래된 질문으로 돌아가기
노구치에게 조각이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체험되는 과정입니다. 원시 조각에서 발견한 의식작용의 기능, 공간과 몸의 관계에 대한 탐구, 일상 사물로서의 실용성. 이 모든 것은 '유용성'이라는 하나의 개념 아래 연결됩니다.
마치 아카리의 반투명한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듯, 우리는 그의 조각 안에서 우리 자신의 의식과 마주합니다. 조각이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무언가를 '느끼도록' 만드는 경험. 그것이 바로 노구치가 말하는 조각의 유용성입니다.
예술이 되기 이전의 조각, 그 가장 오래된 '기능'인 인간의 의식을 살아있게 하는 힘으로 돌아가는 일. 기존의 예술 문법으로부터 스스로 분리되고 자립한 자리에서, 노구치는 조각이 다시 물어야 할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붙들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조각이, 그리고 우리 자신이 다시 되물어야 할 지점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