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지만 외면할 수도 없는
나를 증명하는 지독한 타자들
밤하늘에 가득 찬 수없이 많은 별들. 모두 홀로 고고하게 빛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중 절반은 짝을 지어 움직이고 있습니다. 천문학에서는 이를 ‘쌍성계’라 부르는데요. 쉽게 설명하면, 두 개의 별이 서로의 중력을 축으로 삼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돌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마치 두 항성이 보이지 않는 끈에 묶여있는 것처럼 말이죠. 이 둘의 관계는 꽤나 오묘합니다. 서로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 충돌하지도, 그렇다고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져 영영 멀어지지도 않습니다. 오직 상대방이 가진 ‘무게’만큼의 힘으로 서로를 당기고 밀어내며,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사람의 수명처럼 별의 수명 역시 영원하지 않습니다. 만약 견고한 균형을 이루던 두 별 중 하나가 빛을 잃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남은 별은 방향을 잃고 튕겨져 나가거나, 커다란 충격을 받지만 겨우 살아남거나, 혹은 또 다른 별을 만나 새로운 쌍성을 이루기도 합니다. 물리적 실체는 사라졌을지언정, 떠난 별이 남긴 중력의 잔상이 남겨진 별의 궤도를 영원히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사람의 관계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나’라는 존재가 스스로의 선택과 의지로 빚어지는 독립적인 단독자라 믿고 싶어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한때 생의 전부를 공유했던 누군가를, 마치 영혼이 연결되어 있다 여길 정도로 가까웠던 그들을 말입니다. 비록 지금은 어떤 계기들로 멀어져 가벼운 안부조차 묻지 않는 사이가 되었을지라도, 우린 그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더 이상 함께일 수 없음에도 여전히 서로에 의해 규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 대한 감정이 증오이든, 연민이든, 동경이든, 혹은 그리움이든. 그렇다고 라이벌이나 조력자, 생판 남이라고도 단정할 수도 없는, 그래서 도무지 무어라 이름을 붙여야 할지 알 수 없는 애매한 관계들. 이 아티클은 ‘이해할 수 없지만 결코 외면할 수도 없는’, 그 지독하고도 기묘한 관계들에 대해 탐구합니다.
낙인으로 얼룩진 관계
『베르세르크』, 그리피스와 가츠
미우라 켄타로(三浦 建太郎)의 1989년 작, 『베르세르크』의 중심엔 고독한 검사인 가츠와 용병단 ‘매의 단’을 이끄는 천재적 전략가인 그리피스가 있습니다. 이 둘은 전장에서 우연히 만나 신의와 투지로 맺어진 유일무이한 동료가 됩니다. 가츠에게 그리피스는 처음으로 ‘가족’과 같은 온기를 알게 해 준 인물이었고, 그리피스는 가츠에게서 자신의 굳건한 야망을 뒤흔들 만큼의 강렬한 감정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리피스는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이상을 위해, 피붙이나 다름없던 매의 단 단원 전체를 끔찍한 마물들의 제물로 바치는 참혹한 선택을 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끈끈했던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뒤틀리게 되죠.

결국 그리피스는 동료들을 제물로 바쳐 범접할 수 없는 힘을 얻고, 인과율을 다스리는 신에 가까운 군주로 군림하게 됩니다, 반면 가츠는 마물들의 학살 속에서 홀로 살아남아 처절한 복수의 길을 걷게 되죠. 하지만 가츠의 몸엔 평생 마물의 추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제물의 낙인‘이 찍히고 맙니다. 이 낙인은 그리피스의 광적인 야심 때문에 가츠의 남은 삶이 저당 잡혔음을 의미하는 잔인한 표식이나 다름없습니다. 자, 이제 한 명은 하늘 위 성좌에서 세상을 통치하게 되었으나, 다른 한 명은 그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지옥 속에서 맹렬히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관계일 수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멀어질 수도 없습니다. 가츠가 짊어진 낙인이 그를 끊임없이 그리피스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가츠가 그리피스에게 도달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이미 그리피스는 인간의 감정과 육체를 버리고 ‘페무토’라는 반신적 존재가 되었고, 인간인 가츠가 아무리 칼을 휘둘러도 닿을 수 조차 없습니다. 물리적으로는 같은 세상에 존재할지 몰라도, 삶의 층위는 결코 동일하지 않죠. 그렇기에 가츠의 불타는 복수심은 가츠 자신을 강해지게 할 순 있으나, 이는 오히려 그리피스가 설계해 둔 증오의 궤도에 점점 더 깊이 스며드는 꼴이 됩니다. 물론 절대적 권위를 얻은 그리피스에게도 가츠는 의미 있는 존재입니다. 자신이 한때 인간이었음을 환기시키는 유일한 증인이니까요. 이처럼 배신과 증오로 얼룩진 관계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남긴 채 서로의 좌표를 끊임없이 의식하게 됩니다. 결국 상대를 파괴하려 들면서도, 동시에 서로로부터 벗어나지도 못하는 운명 안에 놓이게 된 것이죠. 결국 그 끝은 어느 한쪽의 죽음이 아닌, 서로를 향한 집착이 완전히 소멸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가능해지지 않을까요.

서로의 실패마저도 지지하는 용기
<키즈 리턴>, 신지와 마사루
틈만 나면 땡땡이에, 학교 성적 최하위를 다투는 골칫덩이 단짝 신지와 마사루. 둘은 여느 고등학생들처럼 무료한 일상과 지루한 수업, 도통 짐작할 수 없는 불투명한 미래 앞에 열렬히 방황하는 중입니다. 어찌나 서로 마음이 잘 맞는지 크고 작은 사고를 칠 때도 항상 함께죠. 끝내 둘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를 결심하게 되는데, 그때마저도 함께입니다. 기타노 다케시(北野 武)의 1996년 작, 영화 <키즈 리턴>은 이처럼 학교라는 보통의 궤도를 제 발로 탈출한 두 청춘이, 각자의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백한 시선으로 담아냅니다.

소심했던 신지는 마사루를 따라 우연히 찾은 복싱장에서 코치에 눈에 띄어 본격적인 복서의 길을 걷게 됩니다. 반면, 자신만만했던 마사루는 날로 성장해 가는 신지를 바라보며 오히려 자신의 초라한 한계를 실감하죠. 결국 마사루는 복싱을 그만두고 야쿠자의 세계를 선택하며 신지와도 멀어집니다. 그리고 바로 이 사건이 끈끈했던 둘의 관계를 평행선으로 벌어지게 한 계기가 되어버리죠.

그러나 화려한 성공을 꿈꾸던 둘의 희망은 애석하게도 쓰디쓴 실패로 귀결됩니다. 신지는 타고난 감각 덕분에 유망주로 급부상하며 복싱 챔피언 직전까지 가지만 상대편에 비열한 방해공작에 휘말려, 결정적인 경기에서 허망하게 패배합니다. 마사루 역시 다를 바 없습니다. 조직 내 권력 싸움에 휘말려 목숨만 겨우 부지한 신세가 되죠. 이후 둘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함께했던 추억이 가득한 운동장에서 운명적으로 재회합니다. 서로의 비극조차 인지하지 못할 만큼 멀어져 있던 둘이었지만, 서로의 사이에서 끈질기게 작용하던 인력은 기어코 그들을 같은 공간으로 이끌죠. 신지가 말합니다. “우리 이제 끝난 걸까?” 이에 마사루는 웃으며 답합니다. “바보야,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이렇게 신지와 마사루는 서로의 실패마저도 지지하며 새로운 궤도로 나설 채비를 합니다.

긴 어둠을 함께 버텨낸 유일한 파트너
<트루 디텍티브>, 러스트와 마틴
루이지애나 주 경찰 소속의 두 형사, 러스트와 마틴. 이들은 성격부터 취향, 수사 방식은 물론 삶의 철학까지 단 하나도 겹치지 않는 극단의 위치에 있습니다. 러스트는 과거 어린 딸을 잃은 상처로 허무주의에 빠져 세상을 냉소적으로 대하고, 이에 반해 마틴은 단란한 가정 속에서도 세속적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일탈을 저질러 버리죠. 그들은 만남은 기괴한 방식의 연쇄살인을 추적해야만 하는 임무를 부여받으며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자칫하면 미궁으로 빠질 수도 있었던 사건을 함께 해결하게 되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둘의 차이가 오히려 수사에는 도움이 되었습니다. 러스트가 사건의 본질을 탐구하며 깊이 있는 가설을 세우면, 마틴이 특유의 넉살 좋은 인품과 행동력으로 현장의 단서를 수집해 내는 식이었죠. 한 개인으로선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둘이었지만,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선 최적의 파트너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목표가 해결되고 나니, 잠잠했던 둘 사이엔 다시 충돌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오랜 시간을 동고동락했던 덕분에 서로에 대해 낱낱이 알게 되었지만, 그렇기에 다툼에선 상대의 가장 아픈 부분을 찌르고 말죠. 결국 둘은 서로에게 증오만을 남긴 채 남남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17년 뒤, 과거 함께 해결했던 연쇄살인과 동일한 방식으로 살해된 시체가 발견되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사실 진범은 잡히지 않았고, 사건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경찰의 수사망은 오히려 사건에 대해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러스트와 마틴을 겨냥합니다. 둘은 현직 형사들에게 의심과 취조를 받으며, 자신들이 끝내지 못한 문제가 남아있음을 직시합니다.

그러나 경찰은 그들을 돕지 않습니다. 둘은 마치 17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서로의 포지션에서 다시금 사건을 고찰합니다. 그리고 오직 둘 만의 힘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데 성공하죠. 죽음에 문턱을 넘나드는 치열한 사투 끝에 범인은 사살되고, 너무나 길게 이어져왔던 악의 연대기는 비로소 막을 내립니다. 인생의 가파른 굴곡을 무려 두 번이나 함께 올랐던 둘이지만, 그 성격 어디 가나요. 사건이 해결된 후에도 두 사람은 갑자기 단짝이 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여전히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며, 짙은 평행의 궤적을 그려갑니다. 상대의 삶에 깊숙이 개입해 변화시키거나 구원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대신 일생일대의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고 똑같은 감각을 나누었던 누군가가 같은 하늘 아래에 있음을 곱씹으며, 은은한 위안을 받게 되겠죠.

우리는 관계에 중심엔 반드시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상정합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세 인연은 그 기대에 묵직한 한방을 날립니다. 이들은 결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그렇다고 상대의 삶을 구원하거나 아픔을 대신 짊어져 줄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각자의 궤도를 위태롭게 유영하는 고독한 항성들일뿐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이 완성되는 건 흥미롭게도 그 지독한 타자들 덕분입니다. 그들은 내 생의 가장 뜨거웠던 순간과 가장 처참했던 심연을 함께 했던 유일한 증인들이며, 나의 좌표를 확인시켜 주는 이정표, 그 자체입니다. 서로의 사이에 존재하는 이 강렬한 인력 덕분에 광활한 우주와 같은 세상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을 테죠. 비록 영원히 맞닿을 수 없겠지만, 멀리서 묵묵히 나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그들로 인해 우린 영영 고독할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