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고용한 예술가들
작가 이슬아, 가수 이성은, 배우 유희준
취업 준비를 하며 가장 막막한 부분은 누군가가 나를 선택해 주길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뛰어난 잠재력과 능력이 있다고 홀로 되뇌고 되뇌어도 고용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 결국은 자신을 갉아먹다가 “아,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구나” 하기도 한다.
예술의 세계는 더욱 혹독하다. 우리나라 문화예술계는 다채롭지 않고, 획일화된 문화예술을 보고 자란 대중은 수동적이다. 수동적이라함은, 대자본이 밀어주는 걸 보고 듣는다는 뜻이다. 예술가는 살아남기 위해 대자본에 굽신거린다. 출판사 문을 두드리고 오디션을 본다. 선택받지 못하고, 그 분기는 예술로 굶는 거다.
하지만 마냥 천장만 보고 누워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예술가들은 모두에게 있는 그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름하여 ‘인터넷’. 세상사람 모두가 끼고 사는 그것을 향해 소리쳤다. 저 여기 있어요!
이슬아와 뉴스레터
이슬아는 작가다. 지금은 “요새 잘나가는 작가 세 명만 꼽아봐” 하면 높은 확률로 그 안에 들어있을 만큼 그야말로 ‘인기 작가’가 됐다. 하지만 마른하늘 날벼락처럼 스타가 됐을 리가 없다. 이슬아가 주목받은 건 ‘일간 이슬아’ 덕이다.

‘일간 이슬아’는 이슬아가 한 달에 스무 편 정도의 글을 이메일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뜻한다. 구독료를 만 원. 이슬아의 통장으로 곧장 입금하면 이슬아는 신청자의 메일함으로 글을 직배송해 준다. 기사에 따르면 2018년에 서비스를 처음 시작하자마자 대박이 났다고 한다.
출판사라는 중간 다리가 마진을 떼어가지 않는 체계 속에서 이슬아는 무럭무럭 자란다. 글의 아름다움도 당연히 있겠지만, “이런 걸 해? 정말 독특하다!”라는 감탄에서 비롯된 관심도 있었을 테다.
그렇게 이슬아는 일시적으로 출판사의 도움을 받지 않는 작가가 됐다. 나의 글이 있고, 지면이 있으니 이게 작가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슬아는 이후로 출판사와 계약해 이런저런 책을 써냈지만, 간간이 ‘일간 이슬아’를 연재할 때만큼은 그는 명실상부 독립예술가였다.
이성은과 유튜브
이성은은 가수다. 2016~2017년 방송된 SBS 서바이벌프로그램 ‘K팝스타 시즌6’에 출연했다. 박진영의 흥겨운 그루브를 만들 만큼 맛깔나는 기타 연주와 보컬 스킬을 보여주면서 심사위원과 시청자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유튜브 댓글을 보면 여전히 다들 감탄 일색이다. 1등은 아니었지만, ‘안테나뮤직’에 캐스팅돼 본선 라운드에 진출했다. 하지만 이성은은 방송 이후 미국으로 돌아간다.

그의 목소리를 다시 만난 건 유튜브 채널 ‘Sung Holly’였다. 처음 들은 그때처럼, 아니 그때보다 단단해진 음악 실력으로 구독자를 모으고 있었다. 2020년 개설된 이 채널의 현재 구독자는 26만 명 이상이다. 2026년 5월에는 새 음원을 발매하면서 개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유튜브가 등장하면서 소속사 계약 없이 음악 활동을 하는 사람이 늘었다. 주기적으로 음악을 들으러 오는 ‘팬’이 늘어나는 데에 자본은 더 이상 필수 조건이 아니다.
유희준과 숏폼
유희준은 배우다. 드라마나 연극에서 그를 본 사람도 있겠지만, 최근 그가 눈에 띈 건 숏폼 덕이다. 유희준은 인기 만화이자 애니메이션 ‘헌터X헌터’의 주인공 성대모사를 기막히게 잘 한다. 슥슥 숏폼을 넘기다 보면 그녀를 만날 수 있다. 그가 “오레와 곤!”이라고 외치며 12살 남자아이 자아를 꺼내는 순간 웃음이 터진다.

유희준은 2023년 대학로 연극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고, 2024년에는 드라마 운빨로맨스에 출연했다. 2024년 ‘SNL 코리아 시즌5’ 크루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시즌이 끝나면서 하차했다. 아직 대중에게 익숙한 배우는 아니었기에, 유희준은 연기가 고팠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만한 재능이 있으니 뽐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돌연 애니메이션 성대모사를 시작했고, 팔로워 6만 명 이상을 모았다. 이제 숏폼은 그를 위한 어엿한 무대가 됐다.
세 사람은 선택받길 기다리지 않았다. 글을 쓰면 작가, 노래를 부르면 가수, 연기를 하면 배우이니 자신의 재능을 보여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누웠다. 예술 그 자체에 재능을 가진 데에 더불어 나를 잘 보여주는 것 역시 이들의 ‘예술적’ 재능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현 시대의 예술가는 더 이상 선택받길 기다리지 않는다. 이제는 나만의 무대를 꾸며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