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 속에 담긴 진정한 색채

화가 윤형근의 삶이 도달한 본질적 아름다움

단색화 속에 담긴 진정한 색채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청다색>, 2007 /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이 그림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도대체 무엇을 그린 건지, 이 그림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만큼 화가 윤형근의 그림은 단순하고 추상적입니다. 그렇기에 처음 그의 그림을 보면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죠. 분명 그림인데 무언가를 그린 것 같지는 않고, 대충 붓을 움직여 대충 도화지를 칠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윤형근 작가의 생애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본다면 그의 그림은 전혀 간단하게 보이지 않을 겁니다.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군부독재 시기 등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해 온 윤형근 작가의 생애를 들여다본다면 단색화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의 본래적 가치를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인데요.

화려하고 다양한 색깔들로 자꾸만 덧입혀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아름다움의 본래적 가치는 무엇일까요? 이번 아티클에서는 윤형근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통해 그 가치를 깊이 탐구해보려고 합니다.


화려한 안개

윤형근 작가의 작품이 처음부터 단색으로만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초기 그의 작품은 이후의 작품들과 같은 사람이 그렸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데요. 그렇다면 윤형근 작가의 작품은 왜 그런 방식으로 변화해갈 수밖에 없었을까요?

1928년 올곧은 선비 집안에서 태어난 윤형근 작가는 해방의 기쁨 속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합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인생의 스승, 화가 김환기와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는 한국전쟁 속에서 총살 위기에 처했다가 겨우 살아남게 되죠. 그러다 전쟁 중 부역 행위 및 복무 기피가 문제가 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 동안 투옥 생활을 하다, 숙명여고 미술 교사로 재직하며 서울 신문회관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엽니다. 이때부터 그의 본격적인 작품 활동이 시작된 것이죠.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당시 윤형근 작가의 작품은 서정적이고 풍부한 느낌이 가득한데,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그의 단색화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죠. 이러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데에는 김환기 작가에게 받은 깊은 영향이 큰 몫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윤형근 작가의 초기 작품과 후기 작품이 이토록 다른 것은,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었던 그가 1960년대 당시에는 삶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었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널리 알려진 단색화 작품들보다 이 작품이 더욱 화려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윤형근 작가의 목소리는 화려한 안개에 가려져 더 희미하게 들리는 듯하네요. 그러다 이 안개가 조금씩 거두어지기 시작하자 그의 목소리가 점차 선명해지죠.

안개가 거두어지자 드러난 잿빛의 세계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안정기에 접어든 윤형근 작가의 삶은 끝내 다시 그를 뒤흔들고 말았습니다. 1973년, 유신정국의 혼란 속에 그에게 커다란 시련이 닥쳐오는데요. 교직자회의석상에서 그가 입시부정설에 대해 교장에게 해명을 요구한 뒤 이틀 후, 그는 레닌모를 쓰고 다닌다는 이유로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경찰에 송치됩니다.

그의 작가노트에 따르면 그의 작품에서 '고운 색채가 잠깐 사이에 사라지고 어둡고 살거운 빛깔'로 변해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좋아야 했던 20대 청춘을 악몽 속에서 지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윤형근 작가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잿빛으로 물들어가던 중, 1974년에는 김환기가 세상을 떠나 인생의 스승까지 잃으며 그는 말 그대로 암흑과 같은 시기를 지나게 되는데요.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윤형근 작가는 만 45세에 비로소 본격적인 작품 제작을 시작했으며, 그는 이후 스스로 '천지문(天地門)'이라고 명명하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끈질기게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그의 작품들은 면포나 마포 그대로의 표면 위에 하늘을 뜻하는 청색(Blue)와 땅의 색인 암갈색(Umber)을 섞어 만든, 검정 같지만 완전한 검정은 아닌 듯한 색을 큰 붓으로 푹 찍어 내려 그은 것들이죠.

윤형근 작가가 화려한 색채로 드리워졌던 안개를 걷어내고 새로운 잿빛 작품 세계를 이어가게 된 것이 오직 그의 선택만으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를 고통스럽게 했던 외부 사건들의 개입이 그의 작품 세계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으로 만들었던 걸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필연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작품 세계를 그가 쉽게 포기하거나 놓아버리지 않고, 죽기 직전까지 끈질기게 이어갔다는 점입니다.

무너져내리는 잿빛 기둥들

<다색>, 1980 /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끝이 날 줄 알았던 세상의 비극은 또 다시 1980년의 광주항쟁으로 이어지는데요. 윤형근 작가는 이러한 상황을 마주하며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상태로 그동안 올곧게 그어 왔던 검은 기둥들을 사선으로, 마치 무언가 무너져내리듯이 내려긋기 시작합니다. 당시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그동안 그가 붙잡고 있던 견고한 믿음 같은 것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요.

'낙엽이 다 지고 나목의 숲 속에 산비탈에 거목이 넘어져서 썩어 가는 것을 봤다. 한쪽은 이미 흙이 되어 가고 있었다. 분명히 그 빛깔은 흙 빛깔과 다름없었다. 그 나무가 쓰러진 것으로 보면 꽤 오랜 세월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숙연해졌다.' 당시 윤형근의 일기 속 문장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참혹한 심정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색>, 1980 / 이미지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쓰러지는 기둥들은 사람들 같아 보이기도 하고, 또 그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는 것들은 마치 눈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신용덕 미술평론가에 따르면, 윤형근 작가는 "예술은 심심한 거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 그림을 보고도 그의 작품에 대해 함부로 '심심하다'라는 말을 남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윤형근 작가가 추구하고자 했던 심심함은 단지 거추장스러운 색채나 선들을 없앤 단순함이 아니라, 거두어낼 것을 다 거두어내 현실의 공백이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명백함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윤형근은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끝까지 지켜내다가 2007년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가 남긴 작품들 속에서 본질적인 아름다움의 여운을 감각할 수 있죠.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피상적으로 표피가 알록달록하고 빛깔이 곱고 뭐 이런 게 아름답다고 난 생각 안 해. 진리에 사는 것 진리에 생명을 거는 것. 그게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거예요. 진실한 사람은 착하게 되어있고 진실하고 착한 사람은 내면세계가 아름답게 되어 있어. 그것뿐이에요." 2002년, 파리 장 브롤리 화랑에서의 윤형근 개인전 영상에 담긴 윤형근 작가의 말인데요. 윤형근 작가의 작품들은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을 착실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결국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무언가를 덧입히고 고치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불필요하고 과장스러운 것들을 소거하는 과정의 끝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덧칠하는 손길들이 때로는 세상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가리고 숨겨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자, 그렇다면 이제 다시 아티클에서 처음 보았던 그림으로 돌아가 보시길 바랍니다. 그 그림을 보고 여전히 전과 같은 생각이 드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