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이면을 채우는 불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패션업계에서 일하기를 꿈꿨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영화.
전 세계가 기다렸던 그녀들이 돌아왔다.
20년이란 세월이 무색하도록 그대로인 모습으로.
나도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언젠가 저런 삶을 살게 될까, 동기들과 자주 입에 올리던 영화였다. 물론 지금은 각자의 삶을 찾아 제 위치를 떠나버렸지만, 여전히 '미란다'와 '앤디'라는 이름에 설레는 우리들이었다.
어느덧 나이가 들어버려 변한 것은 나뿐인 줄 알았으나, 영화 속 <런웨이>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더 이상 종이 잡지를 소비하지 않는 시대, 모든 것이 디지털화돼버린 세상에서 이제 트렌드와 가십의 속도는 인간이 따라잡기 어려울 만큼 빨라져 있었다.

겉보기엔 화려하고 거리가 먼 세계를 그려낸 영화에 우리가 자꾸 마음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그 휘황찬란한 세계의 이면에는 우리와 같은 불완전한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극 중 '앤디'만 봐도 그렇다. 우리는 그녀에게 우리의 삶을 투영한다.
2006년, 처음 '앤디'가 잡지사에 들어갔을 땐 어떻게든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회 초년생의 모습을 보며 공감했었다. 2026년, 이제 어느덧 사회의 일원이 되어 성장한 그녀에게는 더 성숙해진 고민이 찾아온다. 직업적 가치관과 세상의 기준점 사이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리고 불안정한 일자리와 취업 시장에서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하는 삶.
게다가 이번엔 모두의 우상이기만 했던 '미란다'에게도 일생일대의 위기가 찾아오고, 결국 그녀 또한 한 명의 불완전한 존재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세상에 흔들리고 바람에 휘청이는 이들이 나 혼자만이 아님을 느끼며 또 위로받는다.

극 중 '미란다'가 이런 말을 한다. 인간은 위대한 존재지만, 결국 인간이기에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결국 이러한 존재들이 모여 이루어가는 것이다. 각자의 모양과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제 위치를 간신히 지켜가면서 어떻게든 자기만의 빛을 잃지 않으려 수많은 고뇌와 고통을 이겨가면서.
그 시절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는 수많은 이들에게 화려한 패션업계를 동경하게 만들고 꿈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지금, 나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잔잔한 위로를 받는다.

선택한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내가 한 선택을 사랑하기에. 높은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은 것을 포기하고서도 끝없이 전진했던 '미란다'처럼. 불완전한 내가 가진 빛을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세상에 부딪혀도 자기만의 모양을 찾아가는 '앤디'처럼.
부딪히고 무너져도 괜찮아. 거기엔 또 우리만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기에. 그래서 또 몰랐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우리는 인사를 건네면 되는 것이다.
"다시, 안녕."
그리고서 자기의 길을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나만이 갈 수있는, 나의 선택이 쌓여 만들어진 그 길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