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흩어져도 태도는 모인다

본질은 명사가 아닌 부사다

직업은 흩어져도 태도는 모인다
Photo by Giorgio Trovato / Unsplash

지금도 누군가는 자기소개서의 첫 줄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한다. 필자도 댄서였던 과거를 지울지, 마케터이자 에디터인 현재를 강조할지 항상 갈림길에 서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정의하기 위해 좁은 틀 안에 자신을 구겨넣고는 한다. 흑과 백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비로소 ‘진짜 나’로 인정받는 것 같은 불안함 때문일까? 사실 사회는 오래전부터 사람을 명사로 분류해왔다. 직업, 직함, 소속같은 그 명사들이 명확할 수록 사회 안에서 더 쉽게 읽히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그 명사에 끼워 맞추려 할수록, 그 역할들을 해내는 ‘나’라는 사람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된다. 필자는 본질이 흑과 백,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그레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임하는 여러가지 역할들, 그것들은 과연 서로 다른 파편일 뿐일까? 아니면 당신이라는 사람을 지탱하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일까?


끊임없이: 다빈치의 노트에는 경계가 없었다

사회는 오랫동안 무언가 하나를 선택해서 깊게 파는 사람만을 정답으로 간주해왔다. 댄서는 춤만 추어야하고, 마케터는 업무에만 매진해야 한다는 이분법적 고정관념이다. 이런 흑과 백의 프레임 안에서 여러 개의 역할을 수행하는 1인 N역은 본질이 흐려진 사람, 혹은 어디에도 깊게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그런데 사회가 명사를 요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직업이라는 명사는 사실 개인을 위한 정의가 아닌, 사회가 개인을 빠르게 분류하고 소비하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 의사, 변호사처럼 사회가 인정하는 명사에 가까워질수록 시스템안에서 더 쉽게 읽히고 배치된다. 명사를 벗어나려 해도, 타인의 시선이 우리를 다시 그 안으로 밀어넣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자화상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하지만 현대보다 훨씬 앞서 N잡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는 화가이자 조각가였고, 해부학자이자 발명가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을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500년 전 비행기와 헬리콥터의 원리를 스케치로 남긴 발명가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직업 명사를 가졌느냐가 아니다. 그가 했던 다양한 활동이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해부학을 공부한 건 더 정확한 인체를 그리기 위해서였고, 새의 날갯짓을 관찰한 건 비행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노트에는 회화론과 기계 설계도, 근육의 단면도가 같은 페이지 안에 뒤섞여 있다. 분야의 경계가 그에게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다빈치의 일대기를 따라가면 그가 어떻게 연결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인다. 그는 14살에 피렌체의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 공방에 들어가 회화, 조각, 금속 세공을 동시에 익혔다. 수련기부터 이미 하나의 기술만 연마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이후 밀라노 공작 스포르차 (Ludovico Sforza)의 궁정에 초청받았을 때, 그는 스스로를 화가로 소개하지 않았다. 편지에 적어 넣은 직함은 군사 기술자, 건축가 음악가였다. 궁정에서 보낸 17년 동안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면서, 동시에 거대한 기마상 점토 모형을 빚었고, 수력 기계와 비행 장치의 스케치를 쉬지 않고 채워나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해부학자료
이미지 출처: 위키독스 (https://wikidocs.net/335001)

해부학은 그 중 가장 이질적으로 보이는 선택이다. 하지만 다빈치에게 해부는 낯선 영역으로의 도전이 아닌, 그림을 더 정확히 그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는 병원에서 직접 메스를 들고 30구 이상의 시신을 해부했다. 근육, 혈관, 심장의 단면을 페이지 가득 정밀하게 기록했다. 그 스케치는 당시 의학 교과서보다 정확했고, 동시에 인체를 묘사한 가장 아름다운 드로잉이기도 했다. 과학적 정확성과 예술적 감각이 그에게는 애초에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다빈치처럼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깊이 있는 성취를 이룬 사람을 오늘날 폴리매스(Polymath)라고 부른다. 하나를 깊게 파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와 달리, 폴리매스는 서로 다른 영역을 연결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다빈치가 그랬듯 이들에게 여러 역할은 재능의 분산이 아니었다. 각각의 경험이 서로를 단단하게 받쳐주는 구조였다. 해부학이 회화를 깊게 만들고, 회화가 다시 발명의 언어가 되었던 것처럼. 결국 중요한 건 몇 개의 우물을 팠느냐가 아니라, 그 우물을 파는 사람의 태도였다. 필자 역시 그 질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집요하게: 댄서의 근육으로 삶을 지탱하다

댄서라는 명사가 아닌 집요하게라는 부사로 본질을 찾다
Photo by Olenka Kotyk / Unsplash

과거의 필자는 무대 위에서 움직임을 언어로서 소통하던 댄서였다. 박자와 음악에 온 신경을 밀어 넣고, 손끝의 각도 하나로 감정을 증명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필자는 소비자에게 가치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마케터이자 에디터로 살아간다. 처음 이 급격한 인생의 궤도 수정을 감행했을 때, 필자의 내면은 이질적인 두 세계가 충돌하며 내는 비명으로 가득했다. 무대 위에서 거친 숨을 내뱉던 나와 사무실 책상 앞에 정적으로 앉아 기획안을 쓰는 필자가 도무지 같은 인격체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혼란은 필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튜버이면서 작가이고 직장인이면서 DJ인 사람들, 이른바 부캐 문화가 일상이 된 시대에 우리는 하나의 명사로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명함의 직함이 1~2년 단위로 휘발되는 시대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여러 명사의 껍데기를 갈아입으며 살아가야 한다. 부캐는 늘어나는데 정작 본캐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는 아이러니를 마주한다. 이 과정에서 ‘진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정체성의 혼란은 우리가 마주할 수 밖에 없는 보편적인 고독이다.

하지만 어느 마감을 앞둔 깊은 밤, 문장 하나를 수십 번 고쳐 쓰며 밤을 지새우던 필자는 문득 낯익은 감각을 마주했다. 화면 위를 유영하는 커서를 쫓는 이 지독한 집요함이 사실은 10년전 연습실의 습한 공기속에서 완벽한 동작 하나를 만들기 위해 피멍이 들도록 수만 번 바닥을 굴리던 그 댄서의 근육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댄서들은 음악의 박자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쪼개어, 그 미세한 틈새에 리듬을 새겨넣는 고통스러운 훈련을 반복한다. 그 지루하고도 치열한 수행의 시간은 몸에 단순한 기술 이상의 태도를 각인시킨다.

a woman standing on one leg in a dark room
Photo by Chris Yang / Unsplash

그 태도는 이제 소비자들의 미묘한 심리적 결을 찾아내 기획의 논리를 세우고, 독자의 마음을 두드리는 글의 호흡을 다듬는 과정으로 옷을 갈아입었을 뿐이다. 필자의 본질은 댄서라는 화려한 명사에도, 마케터라는 차가운 명사에도 갇혀있지 않았다. 모든 역할의 이면에서 스스로를 쉼없이 몰아붙이고 다듬어왔던 수행의 태도야말로 진실된 필자의 모습이었다. 춤을 추던 근육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삶의 골격이 되어 현재를 더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었다. 결국 필자가 가진 여러개 명사는 사실 하나의 태도를 담기 위한 그릇이었음을 깨달았다.


일관되게: 명사가 아닌 부사로, 본질의 재정의

우리가 스스로를 명사로 정의하려고 할 때, 인생의 방황은 필연적으로 시작된다, 명사는 고정된 틀이며, 동시에 우리가 도달해야만 하는 마침표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댄서’라는 명사만 쫓다 보며 무대를 내려오는 순간 존재의 가치가 소멸할 것 같은 공포에 휩싸이고, ‘마케터’라는 명사 속에만 나를 가두면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창조적 갈증을 외면하게 된다. 사회가 정해준 명사의 칸막이는 우리를 분류하지만, 그 안에서 ‘나’라는 생명력은 점차 시들어간다. 하지만 본질을 부사로 정의하기 시작하면 인생의 문법이 달라진다. 무엇(What)을 하느냐는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어떻게(How) 하느냐는 쉽게 변하지 않는 본인만의 고유한 문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정의하는 본질적인 부사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사실 부사는 거창한 깨달음 뒤에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반복해온 사소한 행동의 궤적 속에 숨어 있다. 필자 역시 혼란스러웠던 정체성의 시기를 지나며, 필자의 결을 발견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세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 과정은 흩어져있던 과거의 파편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꿰어내는 시간이었다.

man sitting facing monitor
Photo by Simon Abrams / Unsplash

먼저 관찰하기였다. 필자는 어떤 명사를 만들어낼 때가 아니라, 어떤 과정속에 있을 때 가장 깊게 몰입하는지를 살폈다. 기획안이라는 결과물을 완성했을 때의 쾌감보다, 그 기획안의 논리를 세우기 위해 자료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단어 하나를 ‘지독하게’ 골라내는 과정 자체에서 살아있음을 느꼈다. 댄서 시절에도 화려한 무대위의 필자의 모습보다 거울 속 동작이 음악과 1mm의 오차도 없이 맞물리도록 ‘치밀하게’ 조정하는 순간에 가장 몰입해 있었다. 필자의 몰입으로 부사 ‘집요하게’를 정의하게 되었다.

다음은 연결하기였다. 전혀 접점이 없어보이는 과거의 경험들 사이에서 공통된 태도를 찾아보았다. 과거 아르바이트를 하며 손님들의 취향을 ‘세밀하게’ 기억해 메뉴를 추천하던 습관과, 현재 에디터로서 독자가 궁금해할만한 지점을 ‘날카롭게’ 포착해 문장을 다듬는 행위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댄서로서 음악의 숨은 소스를 ‘섬세하게’ 찾아내던 감각은, 마케터가 되어 시장의 숨은 니즈를 ‘민첩하게’ 읽어내는 태도로 이어졌다. 직업이라는 명사가 바뀌었을지언정, 그 일을 대하는 필자의 습관적 부사들은 이미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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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Kelly Sikkema / Unsplash

마지막으로 제거하기였다. 필자를 설명하던 모든 직함과 소속이라는 명사를 제외했을 때, 마지막까지 지니고 있던 태도가 무엇인지 자문했다. 만약 내일 당장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그를 어떻게 해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의 끝에 남은 대답은 명확했다. 어떤 환경에 놓이더라도 하고자는 대상을 ‘깊게’ 파고들 것이며, 주어진 문제를 ‘집요하게’ 해결하려 들것이다. 명사라는 껍데기를 모두 벗겨냈을 때 비로서 드러내는 부사들이 필자의 진짜 본질이었다.


이미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색을 가진 그레이이다. 흑과 백 사이에서 오늘 하루도 치열하게 고민하며, 때로는 댄서로, 마케터로, 에디터로 살아가고 있다. 독자가 지금 무엇을 하든, 그 껍데기에 너무 매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독자가 그 일을 대하는 고유한 태도가 바로 독자의 본질이다. 직업은 내일 바뀔지 몰라도, 세상을 대하는 그 따뜻하고 집요한 태도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오늘 독자의 본질은 어떤 부사로 정의되었나요? 그 태도를 반복하는 것이 우리가 평생에 걸쳐 본질을 알아가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독자의 명함을 뒤집어 독자를 설명하는 부사 하나를 적어본다면, 어떤 단어를 고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