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tancing 거리의 윤리

케이 이마즈, 김주리, 임노식, 마리아 타니구치

Distancing 거리의 윤리
<Distancing 거리의 윤리>, 케이 이마즈, 김주리, 임노식, 마리아 타니구치, 2026.002.24 - 05.02, 타데우스로팍 서울, 이미지_양승규

나를 견주는 것과 싸워. 코끝에 맺힌 뿔에 영특함을 바라기도 하며 애써 쥔 것을 스스럼없이 놓고. 목적이 과도하게 들어찬 거리를 하릴없이 걷는다. 별수 없다는 말을 그저 말로서 느끼며.
소스라치게 놀란 일이 나를 따르며 어디를 가든 두세 걸음 뒤에 있고. 빈 공간을 찌르는 손, 잊은 동굴 따위를 무리하게 나열하고 마는 사람의 모습에 분명 도둑이 든 거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일의 이해. 홀로 우뚝 선 유리잔 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무감각.
"까무룩 들었기에 선잠이 아니라뇨. 모든 게 너무도 기묘한 양상을 띠어 확언할 수 없어요. 점점 개운치 않은 일만 쌓이는걸요."

kei Imazu, Shw Who Treads, 2026, Oil on canvas, 194 x 97cm 이미지_양승규

과장된 웃음을 의식에 가둘 수 없었다. 그것은 유연하게 움직이며 빠져나갈 수 없는 데가 있겠냐고 묻듯 당연하다시피 이를 증명했다. 내가 흘린 생각과 쏟은 물로는 어떻게 하여도 해금 앞에 모난 제재일 뿐이었다.
문을 여는 시늉한다. 그러고선 문지방을 넘는 도중에 멈춘다(과정과 하나가 된다). 발 한쪽은 바깥에, 나머지는 안에. 이렇게 어정쩡함을 고수하는 바다.
흐르는 시간에 적신 말이 인사로서 제 역할을 분명하게 하지 못할 때 축축한 말을 안고 번화한 거리를 달리는 것도 좋겠다. 그 길은 감정으로 가득하고, 곳곳에 격정이 넘실거린다.
때아닌 부유로 혼잡스러운 마음에 부랑을 놓아 표류하는 사고에 방식이란 없다.

불타오르는 우체통을 멀찍이서 바라본다. 붉은 것을 눈앞에 둘 때마다 비통함을 감출 수 없다. 지극히 섧은 상태로 뒤뜰의 넉넉한 품을 떠올리곤 천천히 눈 감는다. 으슥한 곳 중 하나가 대뜸 기억에 포개진다.
비명은 빈자리를 찾아가고 축제의 끝자락은 강물에 가닿았다. 어찌 보면 생활은 다듬을 가치가 있는 들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람에 섞인 먼지가 손등에 부딪치고, 우중에 장대는 누군가의 억양을 묘사하듯 흔들리는데.
모순 없는 세계가 모쪼록 순탄하길 바란다. 혹은 그 반대가 되어 순탄한 세계가 아무쪼록 모순 없기를 기대한다.

*눈에 선한 장면은 내게 어떤 장치라고 선언하듯 다짐한다.

마리아 타니구치, Untitled, 2026, Acrylic and pencil on canvas, 228 x 114cm (MTG 1001) / Untitled, 2025, Acrylic and pencil on canvas, 228 x 114cm (MTG 1002) / untitled, 2025, Acrylic and pencil on canvas, 228 x 114cm (MTG 1003) 이미지_양승규

눈앞에 펼쳐진 일련번호를 식별하는 일에 싫증이 난 건 아니지만, 조금 지루했다. 갈수록 지루해질 테고, 그러면 머지않아 이 일을 싫어하게 되려나.
숫자는 떼를 이루며 이동하는 듯하다. 더 이상 먹을 풀이 없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양 떼처럼. 그 속에 생김새가 다른 녀석이 있다고 해도 나는 이를 구별하지 못하리라. 나중에야 그렇군 하고, 뒤늦게 생각을 뒤척일 뿐.
담장을 넘다가 문득 꼭대기를 향한 설익음을 발견할 때 다시는 이를 경험하지 못할 거라는 느낌이 자욱하게 근심을 가렸다. 그것의 심층부에 낮게 깔린 예언은 보기보다 자유롭게 반복을 취한다.

김주리, desert 07_BdCpAC, 2026, Brick dust, ceramic powder, ash, coal, mixed media and artist panel, 183 × 161 × 8cm / desert 06_QsGpAVs, 2025, Quartz sand, glass, ash, stone powder, mixed media and artist panel, 183 × 161 × 8cm / desert 05_BdCpAC, 2025, Brick dust, ceramic powder, ash, coal, mixed media and artist panel, 183 × 161 × 8cm 이미지_양승규

벽돌 하나, 화분 둘, 성냥갑 서넛.
바닥에 빈 병이 구른다. 방금 닦음질을 끝냈는지 표면엔 물기가 어렸다. 회전하는 병은 마치 얕은 바다를 건너는 듯하다.
거센 바람 대신 개념적인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돛대보단 솟대가 필요할지도.

무참히 번쩍거리는 양상을 뒤로하고 간만에 만끽한 텅 빔은 처우를 개선한 결과였다. 달라진 점을 찾아 그 전과 비교하는 데 흥미는 없어 여전한 공백을 바라보았다.
언젠가부터 무언가를 바라는 일에 무게추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성가심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거추장스러운 만남이 나를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