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의심한 디자이너들
어떤 가구는 역사가 된다
우리는 늘 처음 맞닥뜨린 상태를 ‘본질’로 여기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구조 역시 누군가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결코 바뀌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본질을 의심하며,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디자이너들이 있습니다. 테이블 다리가 4개인 것이 너무 익숙했던 시절, “왜 꼭 그래야만 하는가?” 질문을 던진 것이죠. 이 질문은 기존의 형태를 뒤흔들고 끝내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냅니다. 이번 글에서는 본질을 다시 써 내려간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믿는 본질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려 합니다.
의자 다리는 꼭 4개여야 할까?

뒷다리가 없는 의자 - 캔틸레버 체어
오랜 시간 사람들은 의자 다리는 4개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사람의 무게를 제대로 지탱하려면 다른 대안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1925년, 네덜란드 출신의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 마르트 스탐은 이 믿음을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그는 배관공이 쓰는 강철 가스관을 이어 붙이며 실험을 거듭했어요. 마침내 1927년, 뒷다리 없이도 앉을 수 있는 캔틸레버 구조의 의자를 완성해 냅니다.

엄밀히 말해 캔틸레버 구조는 19세기 건물에서 이미 사용되던 건축 원리였어요. 한쪽 끝을 고정 후 반대쪽은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만들어 고정단에서 전체를 지지하는 방식인데요. 스탐은 이를 가구라는 영역에 새롭게 적용해 냈습니다. 강철관 특유의 탄성으로 공중에 앉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어 무척 편안합니다. 당시 예술가 쿠르트 슈비터스는 이 의자를 보고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해요. "다리가 넷이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둘이면 충분한데.” 이후 마르셀 브로이어 등 당대 거장들이 의자를 각자의 방식으로 발전시켰고, 오늘날 너무나 당연히 쓰이는 구조 중 하나가 되었답니다.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의 다리는 몇 개인가요?
테이블 다리는 꼭 여러 개여야 할까?

와인잔을 닮은 외다리 테이블 - 사리넨 튤립 테이블
의자에 이어, 테이블 다리의 본질 또한 오랜 기간 4개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간혹 악보대처럼 받침대 구조의 외다리 테이블이 존재했지만 용도와 크기가 한정적이라 대중화되지 못했죠. 1950년대, 핀란드 출신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에로 사리넨은 이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합니다. 그는 5년에 걸쳐 수많은 축소 모형을 제작하며 실험에 몰두한 끝에, 1957년 다리가 단 하나뿐인 튤립 테이블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사리넨이 이 테이블을 만든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그는 “일반적인 실내에서 의자와 테이블의 다리들은 지저분하고 혼란스러운 풍경을 만들어낸다”라고 밝히며, “나는 그 ‘다리들의 슬럼가(the slum of legs)’를 정리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러니 해결책도 명쾌했습니다. 바로 다리를 줄이는 것. 그는 상판에서 바닥까지 하나로 이어지는 기둥을 세우고 곡선을 더했어요. 커다란 상판을 지탱하면서도 시각적으로는 가벼워 보이는 형태를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완성된 아름다운 실루엣이 마치 꽃봉오리를 닮았다 하여 ‘튤립’이란 애칭으로 불리게 됩니다. 오늘날엔 셀 수 없이 많은 모조품과 변형의 결과물이 곳곳에 놓여 있죠. 이제는 다리가 하나라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더는 놀라움을 느낄 새도 없을 만큼요.
나무를 구부릴 순 없을까?

유려한 곡선의 나무다리 - 스툴 60
‘단단하고 곧다’라는 것은 나무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이 나무 스툴을 보다 보면 뭔가 이상해요. 분명 자작나무 소재인데, 다리가 직각으로 꺾인 L자 형태입니다. 1933년 핀란드의 건축가 겸 디자이너 알바 알토는 나무를 소재로 규격화된 스툴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게 가구 장인과 협업해 나무 끝에 홈을 파고 얇은 나무 조각을 삽입한 뒤 원하는 각도로 구부리는 방식을 개발합니다. 벤트 니(bent knee) 공법이 탄생한 순간이었죠.

그는 이렇게 만들어진 튼튼한 L자 다리 세 개를 둥근 자작나무 상판에 그대로 연결했습니다. 별도의 이음새 하나 없이 간단한 조립만으로도 안정적인 스툴이 완성됐죠. 게다가 다리가 세 개인 덕분에 수직으로 쌓아 보관할 수 있어 공간 효율이 중요한 공공장소, 도서관 등에서 크게 환영받았습니다. 알바 알토는 이 공법을 곧장 표준화된 부품 생산에 활용해 몇십 가지의 제품을 응용 제작했어요. 당시 비평가 지그프리드 기디온은 "목재 가구의 역사에서 100년 넘게 진정으로 혁신적인 것은 없었는데, 알토가 처음으로 그것을 해냈다"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세 디자이너가 던진 질문은 비슷했어요. “왜 꼭 그래야만 하는가.” 그 질문 하나가 의자의 다리를 없애고, 테이블의 형태를 바꾸고, 나무 가구의 제작 방식을 새로 썼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 당연하게 놓인 것들도 처음엔 누군가의 의심에서 시작됐을 거예요. 어쩌면 지금도 누군가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무언가를 조용히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묻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새로움의 싹은 거기서부터 움틉니다. 당신은 어떤 질문을 던져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