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 밖으로 향하는 대학로 뮤지컬
미드나잇 액터뮤지션, 오즈, 인사이드 윌리엄
‘자립’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보통 우리는 ‘어떤 순간’을 떠올리곤 합니다. 짐을 싸서 밖으로 나가는 날, 사직서를 제출하는 손 그리고 어떤 관계의 마침표를 찍는 말. 이런 결정적인 찰나가 자립이라는 단어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곤 하죠. 하지만 자립은 순간보다는 과정에 가까운 단어입니다. 어떤 자립은 외부의 충격에 의해 밀려나는 과정에서 이뤄지기도 하고, 의존하던 세계 밖으로 걸어가는 과정에 있기도 하며, 정해진 설정값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서사를 쓰기로 결심하는 과정에서 이뤄지기도 하죠.
이번 아티클에서는 대학로 뮤지컬 세 편을 통해 이런 다양한 층위의 ‘자립’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시스템의 거대한 폭력 앞에 선 나약한 사람들, 가상의 세계에 기대어 살아가던 존재, 그리고 대본을 뛰쳐나간 캐릭터들. 각자의 다른 방식으로 ‘자립’을 향해 나가는 여정에 함께 해볼까요?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두려움을 직면하는 일
뮤지컬 <미드나잇 액터뮤지션>
2026.04.08~2026.08.09 │ NOL 유니플렉스 3관 │ 100분
뮤지컬 <미드나잇:액터뮤지션> 중 그날이 찾아왔어
이야기는 12월 31일, 한 부부가 사는 집에 스스로를 ‘엔카베데’라 소개한 ‘비지터’라는 인물이 찾아오며 시작됩니다. 비지터는 극이 진행되는 내내 인물들이 감추고 있던 사실을 꺼내들며 선택을 강요합니다.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라는 핑계가 유효하지 않을 때, 부부는 서로의 민낯을 확인하며 상황은 극단적으로 치닫죠.
사실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는 ‘자립’은 용기 있는 결단이나 영웅적인 저항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죠. 내 안의 두려움과 나약함을 인정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진짜 자립이 가능하다는 역설적인 통찰입니다. 어쩌면 ‘자립’은 그래서 더욱 힘든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은 아제르바이잔 극작가 엘친의 희곡 ‘Citizens of Hell’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공포와 억압이 일상이 된 시대, 인간이 얼마나 쉽게 비겁해질 수 있는지 또 두려움이 짓눌린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날카롭게 파고들고 있죠. 스릴러와 코미디, 드라마를 유연하게 오가며 캐릭터의 이중적인 본성을 보여주는 방식은 관객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데요.
국내에서는 한국 창작진이 새롭게 만든 형식인 〈미드나잇: 앤틀러스〉와 영국 오리지널 프로덕션 형식인 〈미드나잇: 액터뮤지션〉 두 버전으로 올라온 바 있습니다. 현재 공연하고 있는 ‘액터뮤지션’은 말 그대로 배우들이 퍼커션, 바이올린, 기타, 더블베이스,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면서 다양한 배역을 함께 소화합니다. 배우이자 연주자인 이 존재들이 무대를 채우는 방식 자체가 하나의 역할에 갇히지 않으려는 이 작품의 주제와 기묘하게 맞닿아 있단 인상을 주고 있죠. 8월 초까지 유니플렉스 3관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국내 창작 버전인 ‘앤틀러스’ 역시 오는 10월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액터뮤지션’을 먼저 보고 ‘앤틀러스’까지 본다면, 극이 주는 매력을 훨씬 깊게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세계의 규칙 밖에서 진짜 삶을 향해 걷는 일
뮤지컬 <오즈>
2026.05.05~2026.07.19 │ 대학로 TOM 2관 │ 100분
뮤지컬 <오즈> 공식 트레일러
삭막한 현실이 버거워진 인간 ‘준’은 가상현실 게임 ‘오즈’ 속에서 겨우 삶의 낙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조차 무과금 유저로 무시받기 일쑤죠. 그러던 중 게임의 규칙을 어긴 AI ‘양철’을 만나게 되고, 의도하지 않게 한 팀이 되어 오즈의 스토리 모드에 진입하게 됩니다. 스토리 모드에서 1등을 차지하면 소원권을 얻을 수 있는데요. 준의 목표는 그 소원권을 얻어 돈 걱정 없이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양철과 모험이 계속 될수록 목표는 잊고 진심으로 게임을 즐기게 되는데요. 이 과정 속에서 양철과 준은 진정한 친구가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소원권을 얻는데 성공하지만, 시스템은 규칙을 어긴 양철을 없애려고 하죠. 준은 제 소원을 비는 대신 양철을 오즈 세상 속에 남겨둘 것을 바라게 됩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양철은 가상세계 속 구형 AI일 뿐이고, 어찌보면 준의 선택이 굉장히 어리석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준이 그 선택을 내릴 때 공감하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가장 ‘인간답고’ 또 ‘준다운’ 선택이기 때문이죠.
자립은 그런 선택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자신이 서있는 자리에서 크게 무엇인가를 바꿀 수 없더라도 의존하던 것을 달리 보는 것, 그게 바로 자립의 첫걸음이죠. 그런 그를 보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됩니다. 나의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하는 걸요. 준의 선택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인 자립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이미 초연과 재연을 거치며 국내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는데요. 올해도 극장에서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7월 19일까지 TOM2관에서 공연 예정이니, 혹시 노란 벽돌길을 따라 여행을 떠나고 싶으신 분들은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계속 해서 나만의 장르를 찾는 일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공연 예정 없음 │ 100분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연습실 스케치
작품 속 인물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은 바로 이 유쾌한 상상에서 시작합니다. 우리에겐 거장으로 알려진 셰익스피어가 거장이 되기 전, 집필 중이던 원고가 바람에 섞여버리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뒤섞인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 속에서 캐릭터들은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데요. 아버지의 복수 대신 시인을 꿈꾸는 햄릿, 로미오를 사랑하지 않는 줄리엣, 그리고 빛나는 무대의 주인공 자리를 원하는 로미오. 이들은 각자 본인에게 주어진 ‘역할’을 거부하고 서사 밖으로 뛰어나갑니다.
처음엔 셰익스피어가 그들을 말리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이런 이야기는 아무도 읽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그런 이야기로는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주인공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과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게 다르다고 외칠 때마다 셰익스피어의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도 커집니다.
극의 마지막에 셰익스피어는 결국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데요. 언제부터인가 자신도 타인의 인정과 평가만을 위해 글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애초에 자신이 글을 쓰기 시작했던 이유는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쓰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있었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인사이드 윌리엄’ 속 캐릭터들이 말하는 자립은 가장 근본적인 층위의 것입니다. 남이 써준 이야기에서 빠져나와, 누군가에게 대단해 보이지 않아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향해 걸어가는 것. 그 걸음이 바로 자립의 시작이라고, 이 작품은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아직 공연 예정은 없지만, 아르코 예술 기록원에서 실황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혹시 궁금하시다면 방문해서 관람하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자립은 각자의 속도로 찾아온다
세 편의 뮤지컬이 보여주는 자립의 모습은 저마다 다릅니다. 두려움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자립도 있고, 익숙한 의존으로부터 조심스럽게 걸어 나오는 자립도 있으며, 타인이 써놓은 이야기를 조용히 내려놓고 나만의 서사를 시작하는 자립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옳거나 용감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자립은 늘 각자 다른 속도와 방식으로 찾아오니까요.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 우리는 이미 어떤 방식의 자립의 과정에 서 있는지 모릅니다. 강제로 떠밀렸든, 스스로 걸어 나왔든, 혹은 아직 대본을 내려놓는 중이든 상관없습니다. 자립이란 결국 나의 속도로 오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