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
책임과 역할의 경계에서 자립의 의미를 묻는 연극 세 편
우리는 흔히 ‘자립’을 홀로 서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뿐일까요?
연극 속 주인공들은 오래 전부터 이 질문을 던져 왔습니다. <인형의 집>(1879년 초연) 의 노라, <유리 동물원>(1944년 초연)의 톰, <젤리피쉬>(2018년 초연)의 켈리는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가지만 모두 ‘어떻게 나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마주하고, 각자의 답을 내렸습니다.
19세기 말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자립을 향한 질문은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한국 무대에 오른 세 편의 연극을 통해, 그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답을 따라가 봅니다.
연극 <유리 동물원>
가족과 책임으로부터의 자립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의 대표작 <유리 동물원>(1944년 초연)은 주인공 톰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추억의 극(Memory Play)’ 형식으로 쓰였습니다. 따라서 무대 위 사건들은 객관적인 현실이라기보다 톰의 기억과 감정을 통해 재구성된 모습으로 펼쳐집니다.
작품은 어머니 아만다, 아들 톰, 딸 로라로 이루어진 윙필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오래 전 아버지가 가족을 떠난 뒤, 톰은 신발 창고에서 일하며 생계를 책임집니다. 하지만 그는 작가를 꿈꾸며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합니다. 반면 로라는 어린 시절 앓았던 늑막염의 후유증과 그로 인한 위축감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유리로 만들어진 동물 인형을 돌보며 자신만의 세계에 머무릅니다. 아만다는 미인으로 추앙받고 수많은 구혼자들의 관심을 받았던 과거의 영광 속에 머물며 현재의 현실을 견뎌냅니다.
가족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현실을 견디던 어느 날, 톰의 직장 동료이자 로라가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했던 짐 오코너가 톰의 집을 방문하면서 가까스로 유지되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아만다는 짐을 로라의 미래를 바꿔줄 귀한 손님으로 여기며 큰 기대를 품지만, 그가 이미 약혼한 상태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희망은 산산이 부서집니다. 좌절한 아만다는 톰을 원망하고, 가족 간의 갈등은 극에 달합니다.
결국 톰은 아버지가 그러했듯 가족을 떠나 자신의 삶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작품의 마지막에서 어디를 가든 로라를 잊을 수 없었다고 회상합니다. 자유를 얻었지만 과거와 기억으로부터는 결코 자유로워지지 못한 셈이죠.
우리는 흔히 자립을 경제적 독립이나 물리적 분리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유리 동물원>은 자립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집을 떠난다고 해서 모든 관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며, 누군가를 향한 애정과 책임감, 그리고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고요. 어쩌면 자립은 관계를 끊어내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품은 채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일에 더 가까운지도 모릅니다.
도서 정보
테네시 윌리엄스『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유리 동물원』
연극 <인형의 집>
사회적 역할로부터의 자립

노라는 남편 토르발트에게 결혼반지를 돌려주며 말합니다. 자신은 아내나 어머니이기 전에, 먼저 한 인간이라고요. 이 결말에는 살인도, 배신도, 비극적인 죽음도 없습니다. 그저 한 여성이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집을 나설 뿐이죠. 그런데 바로 그 장면이 19세기 유럽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결혼 생활 8년 동안 노라는 아버지의 딸, 남편의 아내, 세 아이의 어머니로 살아왔습니다. 남편 토르발트는 노라를 ‘종달새’와 ‘다람쥐’라 부르며 아꼈지만, 그 애정 속에는 아내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귀여운 소유물로 바라보는 시선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라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믿었고, 남편 역시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습니다. 남편의 건강이 위태로워졌을 때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하면서까지 치료비를 마련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죠. 하지만 서명 위조 사실을 알게된 토르발트는 노라보다 자신의 명예와 체면을 먼저 걱정했습니다.
노라는 그제야 자신이 사랑이라고 믿어온 관계를 다시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지금껏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보다는 아버지와 남편이 원하는 모습에 맞춰 살아왔음을 깨닫습니다. 노라는 자신이 친정에서는 아버지의 ‘인형 딸’이었고, 결혼 후에는 남편의 ‘인형 아내’로 살아왔다고 말합니다.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본 노라는 더 이상 누군가의 딸이나 아내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이해해야 한다고 결심합니다. 결국 그녀는 결혼반지를 돌려주고 집을 떠납니다.
당시 이 결말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독일 공연에서는 노라 역 배우의 반대로 결말이 수정되기도 했는데, 헨리크 입센(Henrik Ibsen)은 이를 두고 “야만적인 만행”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남편과 아이들을 뒤로한 채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는 노라의 선택은 당시 사회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언이었습니다.
그러나 노라가 남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반지를 돌려주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도서 정보
연극 <젤리피쉬>
타인의 보호로부터의 자립

<젤리피쉬>는 다운증후군을 지닌 27세 여성 켈리, 켈리의 어머니 아그네스, 켈리가 사랑하는 청년 닐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켈리 역을 실제 다운증후군 배우가 맡는다는 것입니다. 2018년 영국 초연에서는 사라 고디(Sarah Gordy)가, 2025년 한국 초연에서는 배우 백지윤이 켈리 역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켈리가 내뱉는 말은 솔직하고 발칙합니다. 극 초반, 관객은 켈리의 대사에 웃음을 터뜨리지만, 극이 흐를수록 이내 웃음이 잦아듭니다. 우리가 무심코 품고 있던 편견과 마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무대 위의 켈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존재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사랑을 주저 없이 선택하는 인물에 가깝습니다. 해변에서 일하는 청년 닐을 만난 켈리는 먼저 다가가고, 먼저 마음을 표현하며, 때로는 소심한 닐을 이끌기도 합니다. 켈리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도하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켈리의 사랑은 곧 엄마 아그네스의 걱정과 맞닿아 있습니다. 아그네스는 세상이 딸에게 얼마나 쉽게 상처를 주는지 알고 있기에, 닐에게 켈리와 헤어져 달라고 부탁합니다. 아그네스가 나쁜 엄마여서가 아니라, 딸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된 행동은 모두 허용할 수 있을까요. 상대가 다칠까 봐 대신 결정해주는 일도 보호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결국 아그네스는 켈리에게 사과합니다. 그리고 딸의 선택을 존중하려고 노력합니다. 공연의 마지막 장면에서 켈리는 바닷가에서 해파리(젤리피쉬)를 바라봅니다. 물살에 떠밀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자신만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아름다운 생명체를요. 켈리가 해파리에 눈길을 주는 이유는 그 모습이 자신과 닮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연약해 보이지만 자신만의 방향을 따라 나아가는 존재 말입니다.
도서 정보
공연 정보
연극 <젤리피쉬>
9월 5·6일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9월 19일 오후 3시 광명시민회관 공연장
가족을 떠난 톰은 끝내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노라는 집을 나선 뒤에야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묻기 시작했습니다. 켈리는 누군가의 보호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인정받고자 했습니다. 세 사람은 모두 다른 선택을 했지만, 이들이 향한 곳은 결국 같은 방향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정해준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했다는 점에서 말이죠.
그래서 세 작품을 돌아보고 나면 자립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어디에 머무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누구의 기대보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