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깃 ECLIPSE PLUMAGE
이산오 개인전

DRAWING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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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깃
ECLIPSE PLUMAGE
이산오
LEE SANOH
2025.4.19-5.217
철학적 비행
검은 숲속에서 한나절 정도 머무르면 의도하지 않게 한 가지 재주를 배우게 된다. 피로에 상접한 이들을 단번에 알아보는 것이다. 제각각 생김새는 다르지만, 꾸밈없는 눈에 드리운 안개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 부옇게 뜬 물방울이 한 점에 고여있구나, 하고. 어찌 보면 매몰찬 인식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모든 것의 덜미인 눈은 사력을 다해 제 시력을 지켜냈다.앞선 재주는 실용성이 다소 희박하지만, 끝내 결락으로 이어지지 않은 눈금이다. 앞으로 이를 밑바닥 존재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곳에 도달해야만 온전히 슬픔을 표현할 수 있을까.뿌리가 절반쯤 드러난 나무 밑동 주위를 시계 방향으로 돌며 차곡차곡 회전수를 쌓아 올리는 중이었다. 울창한 숲은 때때로 머리말을 토했고, 그럴 때마다 뒤에 요구되는 행동을 분별하게 했다. 게으름의 좌표가 흔들리고 있다. 더 이상 걸려 넘어질 돌부리가 예의 나무의 뿌리밖에 없을 때, 나의 기다림은 고이 간직된다.


정지비행 Hovering, 2025, 도자, 유리, 혼합매체, 25 x 27.5 x 8cm / 항상성 Homeostasis, 도자, 캔버스에 색연필, 혼합매체, 32 x 34 x 8cm | 이미지_양승규
아무개의 비명으로부터 시작된 살갗은 부는 바람에 창작을 강요하는 듯하다. “독창적으로 일어. 네가 읽거나 두드리는 문장은 숲의 뒷면일 터.” 그것의 빼곡함이 공간 없음을 사유하고, 여과 없이 투과된 덩어리에까지 생각이 뻗칠 때 순전한 이해는 계속된다.“일거수일투족을 감내한 정서는 나와 너의 것이 아니며 그렇게 우리에게서 벗어난, 때에 따라 추방된 빈자리의 묘목일지도.”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나의 말끝은 개었다. 언제부터 휑한 구름이 가득 꼈는지 알 수 없지만.생각과 닮은, 귀퉁이가 닳은 한 모금 물을 사변(思辨)에 끼얹으며 안심했다. 벌어진 틈 사이로 양손이 양식되는 장을 본 이후로 한쪽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얗게 자신을 태우는 별무늬 날벌레의 더운 숨, 접질린 날갯죽지, 상형 문자에 가까운 도로. 공중을 가까이하기에 이보다 나은 나열은 없을 것이다.‘이 가벼움은 무게가 줄어들었다는 것만으론 부족해. 결과론적인 상실이 아니라, 그 과정의 복판인지도 몰라.’


아에돈 Aedon, 2025, 도자에 색연필, 유리, 혼합매체, 23 x 26.5 x 7cm / 상공 Midair, 2022, 도자, 22 x 27 x 10.9cm | 이미지_양승규
시든 꽃 특유의 잔향이 이념에 수렴한다. 부재를 둘로 나누면 결국 영원과 현상이다. 부적절한 마음, 명암의 반대.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에 그 둘을 엮었다. 곧은 자세가 일찌감치 구부정한 준비, 무너질 결심을 하자, 이에 호응하듯 나는 웃고.공백의 시간이 고백한 사실은 전과 달라진 건 없다는 울음이었다. 그것은 때론 소용이 되곤 한다. 말은 점점 사라짐으로써 드문 존재로 변모했다. 크게 벌린 입이 좌우하는 건 어제와 오늘의 꼬리였다지.환상이 뒤숭숭해도 그것에 헤맴은 없다. 하늘에 길이 열렸다. 녹슨 해명은 불길한 인상의 온상인지도. 창가에 놓인 잔은 오래도록 식지 않았다. 어두운 방 안에서 잠들기를 체념한 이의 동통이 느껴진다.명쾌한 답변에서 길어 올린 말투는 기묘한 나라의 예사로운 바늘이 되었다. 이와 어울릴 실은 자신 처지에 감도는 불운을 명확히 인식한 사람의 시에서 발견되리라.


가시깃 Blood Feather, 2025, 종이에 색연필, 수채, 먹, 파스텔, 안료, 116.7 x 91cm / 군무 Flock, 2025, 종이에 색연필, 파스텔, 흑연, 먹, 안료, 90.7 x 72cm | 이미지_양승규
여러 행위가 열리는 나무. 그것을 베어 만든 빗장. 굶주려본 기억이 있는 자들과 아직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 사람들. 여정은 여기까지. 과도 앞에 과일. 과도한 생각은 금방이라도 기울 것 같아.아무 일 없어 보여. 말하지 않으면 알 방도가 없다고. 어떻게 파악을 하나. 어떡하지, 그 가공의 처지가.움푹 들어간 눈이 포착한 대상은 포용의 기원이자 한때 출발점이었던 무엇이었다. 무용과 맞닿은 포옹의 변천을 각진 바닥이 주워 담을지, 궁금한 까닭을 모른 척하기가 궁색해 아직 온전한 설비를 갖추지 못한 속내에 불을 붙였다. 그 위에 오래된 장면을 그을려 잔상을 쫓아낸다면 격조 있는 인사를 격주로 하게 될지도 모른다. 얼어붙은 나를 향해, 아니면 좀처럼 줄지 않는 종적을 위해. 일주일을 할애하여 만들어낼 수 있는 날개는 내성적이었다. 불특정 다수를 피하고자 빚어냈던 수줍음은 파란을 골려 그것에 색다른 곤경을 입혔으니. 지금까지의 어떤 진행과 무관하게 발끝이 차다.


양력 Lift, 2025, 캔버스 위에 색연필, 파스텔, 안료, 65.2 x 90cm / 낙하 Fall, 2025, 종이 위에 색연필, 수채, 파스텔, 먹, 혼합매체, 116.6 x 91cm | 이미지_양승규



아에로스 Aeros, 2025, 도자, 캔버스에 색연필, 혼합매체, 35.5 x 36 x 5cm / 자유비행 Free Flight / 변환깃 Eclipse Plumage, 2025, 캔버스에 색연필, 파스텔, 안료, 혼합매체, 73 x 60.3cm, 65.4 x 49cm | 이미지_양승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