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질을 묻는 책 3권

불완전한 존재가 본질을 묻는 방법

인간의 본질을  묻는 책 3권

양자역학에서 원자는 측정하는 행위 자체로 상태가 달라집니다. 관찰이 결과를 바꾼다는 물리적 사실은, 관념의 세계에 존재하는 본질의 특성과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본질은 때로 말해지는 것만으로 훼손됩니다. 그럼에도 초대받지 못한 낙원 주위를 헤매는 사람처럼, 그 언저리를 맴돌며 더듬더듬 말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책은 하나의 질문을 오래 붙들고 사유하기에 적합한 매체입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답함으로써 오히려 답을 잃어버리는 이 질문에 섣불리 답하기보다, 그 질문 속에 오래 머무르게 하는 3권의 책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엿봅니다.


필멸자로서의 인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정신보다 육체일지 모릅니다. 육체의 수명이 다할 때 정신도 작동을 멈춥니다. 육체의 한계가 곧 인간의 한계가 됩니다. 우리는 유한한 몸 안에서만 사유하고, 사랑하고,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그렇다면 삶을 유한하게 만드는 죽음은 삶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조건 그 자체가 됩니다.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죽음을 금기가 아닌 분석의 대상으로 올려놓습니다. 심리적 위안도, 종교적 해석도 없이 오직 이성과 논리로 죽음에 관한 모든 것을 해부합니다. 영혼은 존재하는가? 죽음의 본질은 무엇인가? 죽음은 나쁜 것인가? 죽음에 관한 질문들이 이어지며 책이 궁극적으로 닿는 곳은 죽음이 아닌 삶입니다. ‘삶은 유한하므로 지금이 소중하다.’라는 말은 너무 많이 소비되어 진부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나면 그 말의 무게는 달라집니다. 죽음이라는 조건은 삶을 비극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만듭니다.

이미지 출처: 웅진지식하우스

창작자로서의 인간

인간은 의미를 찾는 존재입니다. 이 세계에 ‘의미’란 없다는 혹자의 말을 받아들이더라도, 우리는 옆에 있는 사람이나 그와 함께 웃는 순간 같은 것에 최소한의 의미를 두고 살아갑니다. 심지어 어둠 속에서 눈을 떴을 때 홀로 있는 외로움, 웃음의 흔적도 없는 깊은 고통 속에서 우리는 더욱 강렬하게 삶의 의미를 묻습니다.

이미지 출처: 문예출판사

게오르크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은 이야기라는 행위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추적합니다. 본래 신화는 신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유명한 첫 구절처럼 ‘별이 총총한 하늘이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들의 지도인 시대, 별빛이 그 길들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의 인간에게 의미는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 시대는 이제 지나갔습니다. 신도, 공동체도, 우주적 질서도 삶의 의미를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루카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쓴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소설은 신에게 버림받은 세계의 서사시’라고 그는 말합니다. 의미가 주어지지 않은 세계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분투. 창작이란 그 분투의 다른 이름입니다.

애도하는 자로서의 인간

슬픔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에 익숙해지는 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애도란 슬픔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아름다웠던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부재의 형태로 남아 현실의 시간에 커다란 구멍을 뚫습니다. 슬픔 앞에서 언어는 허물어집니다. 언어가 자신의 한계를 고백할 때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말이 되지 못한 울음만 남습니다. 우리는 그 울음 주위에서 몇 개의 단어를 겨우 써낼 뿐입니다.

이미지 출처: 걷는나무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읽는 것은 묘한 경험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엿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던 슬픔을 마주하게 됩니다. 평생 언어를 정밀하게 다뤄온 그는 슬픔을 정확하게 옮기려는 시도가 불가능하며 오히려 슬픔을 배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완성된 형태의 글이 아닌 짧은 메모만을 남겼습니다. 그의 글 속에서 애도는 떠나보내기와 간직하기의 이중 운동처럼 보입니다. 슬픔은 그 과정에서 사라지지 않고 익숙해집니다. 슬픔을 기록하는 일은 상실을 없애려는 시도가 아니라 상실을 감당하는 방식이 됩니다.


시대가 빠르게 달릴수록 본질을 향한 질문은 더 깊고 절실해집니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흔들릴 때 우리는 비로소 무엇이 본질이었는지를 묻기 시작합니다. 죽음, 의미, 애도. 이 오래된 질문들은 쉽게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답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채 계속 묻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고 말할 수 있는 것에 치열하게 질문합니다. 가능의 영역에서 불가능의 언저리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것은 제가 아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 중 하나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질문 속에 오래 머무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