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숙주

강철규 개인전

버림받은 숙주
<버림받은 숙주>, 강철규 개인전, 2026.05.01 - 06.20, 아라리오갤러리 이미지_양승규

ㄱ꼼짝하지 않고 버림을 바라보았던 기억 때문에 하루를 던진 사내가 있다. 그의 존재 방식은 번짐이며 그가 뒤돌아설 때마다 세상은 미온한 감정에 든다.
처음 방문한 곳에서 뜻하지 않던 두드림과 조우했다. 이는 막연한 기다림을 궁색한 언어로 설명하는 것과 유사한 기분을 느끼게 하여 자못 비장한 표정이 눈앞에 얼기설기 얽혔다.
낭패와 남과 다른 위치 안으로 의식 일부를 걸쳐 두고 기어이 뾰족한 사물과 사물의 뾰족함을 분별한다. 인내심이 많은 사람들의 공통이 보통으로 떨어지던 때의 감각은 추운 지방의 사유와 맞닿아 있다.
모두가 목도한, 은근한 마지막이 바스락거린다. 어떤 태도를 지지하며, 어렵사리 잠든 사람을 흔들어 깨우며.

강철규, 버림받은 숙주, 2026, Oil on canvas, 227 x 182cm 이미지_양승규

달콤한 꿈과 나를 떠난 빈자리 같은 거. 그런 거는 꼭 낮은 선반에 있고, 그 앞에 서면 태도가 분명하지 않은 빛이 퉁명스럽게 사물을 대한다. 낡은 노트와 선고받은 벽지는 금세 서먹해진다.
걔와 언제 만났었고, 억측은 눈대중으로 불어오며 실오라기 서너 가닥 서로를 넘겨짚지.
줄기차게 이어질 이동에 질려 자세 한 번 바꾸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시간은 공간적인 특성을 띠었다. 기거할 수 있는 면모는 언제나 이상적인 깊이를 일게 한다.

강철규, 바람, 2025, Oil on canvas, 38.5 x 45.7cm / 환영, 2026, Oil on canvas, 38.5 x 45.6cm 이미지_양승규

옳다고 여기는 것은 어김없이 나를 옭아매는지도 몰라. 부동은 결국 심정에 어린 어떤 정지를 질질 끌며 처한 상황을 유보하는지도. 그게 막 어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자연스러운 것까진 없지. 뭐라도 있길 바라는 시기의 역설. 대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돋은 기우와 무더운 기후. 들뜬 기분.

떠나갈 듯 웃은 끝에 낯선 종이 위로 떨어진 손은 생활과 부대끼며 살던 기억을 쥐었다. 자국을 양산하는 움켜쥠에 불필요한 움직임이 겉돌고,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는 사람의 속이 다량의 순간을 잡았다.
붙잡음에 괸 고개가 자황색으로 타오르자, 이에 장황한 이야기가 옮겨붙어 원을 그린다. 필요 이상으로, 필요 이상으로.

울적하기엔 여긴 경황이 없다. 분주하다고 말한다. 그러고 있으면 머릿속 구덩이 하나가 메워진다. 그것은 이제 평탄한 땅의 일부이다. 눈을 감고 걸어도 괜찮을 터다. 그곳은 더 이상 움푹하지 않고, 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정신과 몸은 얼마간 하나가 된다.

연한 강물 앞에서 어떤 감정을 면한다. 이를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은 아니나, 강에 당도했을 때 은근한 기대는 나와 충돌하였다. 이 사건은 봉합하지 않은 상처가 되어 벌어지고 찢어진 모두의 입구로서 기능한다.
강의 하류와 상류, 이 두 곳 중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절로 움직이는 몸이다. 강의 폭은 점점 좁아진다. 나는 호흡에 대해 생각하고, 이 생각의 쓸모에 대해 생각한다. 도중에 숨이 막힌다. 강의 끝과 동시에 덤불이 시작된다. 결국 이렇게 됐을 거라는 말을 타인의 목소리로 한다. 누군가 황급히 창문을 닫는다.

강철규, 중심의 망령들, 2026, Oil on canvas, 227 x 1822cm 이미지_양승규

담장을 경계로 저쪽은 밤이고 이쪽은 낮이야. 안팎의 문제보단 우리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할 수 있지. 담장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중심을 잃은 김에 그것을 그저 바라봄 직한 대상으로 여길 것인가, 아니면 비유의 총체 혹은 그와 유사한 무엇으로.

복잡한 모닥불 위로 원을 그리며 비행하는 새가 지난다. 지난한 시기는 적절하게 시위를 당긴다. 음산한 분위기가 형성되려다가 만다. 위기는 때론 위기처럼 보이지 않았다.

강철규, 자아, 2026, Oil on canvas, 25 x 25cm 이미지_양승규

주위가 어두워지면 굳이 바위 뒤에 숨지 않아도 된다. 눈 밖의 세상이 꼭 그것의 안과 같아서 제자리에 맥없이 쓰러지기도 하지. 부산스러운 하늘 아래 부자연스러운 말투가 있어 그것이 투정을 담을 때 스스럼없는 이들은 사라진다. 돌출된 사고를 기억에 묶어두고.
주머니에 찔린 손이 부르튼다. 삭막한 사회를 쥔 적도 있는 그것은 이젠 주먹을 쥔다. 용서. 품에 들이닥친 용서. 방황도 길을 헤맨 정황도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몸을 웅크리며 미미한 체중을 인식한다. 머지않아 고엽에 닳은 숨이 뛸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