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놓쳤던 생활예술
도예로 알아보는 공예의 본질
우리는 흔히 예술이라고 하면 회화나 조각을 떠올립니다. 미술관 벽에 걸린 그림이나 전시장 중앙에 놓인 큰 대리석 조형물 같은 것들이 있겠네요. 우리는 생각보다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에 따라 구분을 짓습니다. 전시장에서 도자기를 보면 공예품, 그게 설령 사람보다도 훨씬 큰 크기의 도자 작품이라고 해도 여전히 공예라는 단어만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죠.
사실상 모두가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예술이라고 부르는 데에 있어서는 주저하지 않지만, 분명 조형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자나 직물 혹은 목공이라는 재료로 만들어졌다면 공예라는 인식틀에 가둬버리고 맙니다. 공예를 공예라고 부르는 게 딱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공예와 예술을 분리해왔기에 지금껏 불필요하게 이분법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듯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나뉘어졌을까, 뭐가 다를까. 사실 생소한 질문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디자인과 예술의 차이에 대해서는 많이 고민해봤을 테지만 공예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선 깊이 생각할 기회가 적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공예를 자연스레 비주류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죠. 그러나 현대도예는 실용적인 역할을 하는 전통 공예의 범주를 벗어나 공간을 구성하고 그 자체로도 존재 가능한 조형 작업으로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공예와 예술이 나뉘게 된 배경을 따라가며,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구분이 과연 지금도 유효한지 질문해보고자 합니다.

예술과 공예는 어떻게 나뉘어왔는가
공예의 본질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했던 구분점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예와 예술은 다른 분야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내심 예술을 더 고급스럽게 느끼고 공예는 전통적이고 실용적인 것으로 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관습처럼 굳어져 내려온 시대착오적 사고입니다. 본래 예술의 본질은 공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공예는 인류 문명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가장 오래된 예술입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흙을 빚어 만든 토기는 음식을 담기 위한 도구가 되기도, 공동체의 상징이자 의례적 의미를 지닌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즉, 공예는 애초부터 실용과 심미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했던 생활 예술인 셈이죠.
그러다 예술의 영역에 변화가 나타난 건 르네상스 시기를 기점으로 순수미술이 점차 하나의 사회적 체계로 조직되고 이후 특정 계층과 제도 안에서 독립적인 영역으로 분리되면서 부터 시작합니다. 여기에 18C 이후 칸트의 미학이론이 더해지면서 예술에는 목적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라붙게 됩니다.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쉽게 말해 쓰임, 기능, 목적이 있는 것과 목적없이 그저 감상의 대상(회화작품)으로만 존재하는 것으로 두 대상을 나눈 것이죠.
미적 취미 판단은 목적없는 합목적성을 따른다
- 칸트 『판단력 비판 』-
이로써 예술은 그 자체로만 존재해야 한다는 논리가 만들어지며 '목적 없는 순수미술(Fine Art)'과 반대로 쓰임을 목적으로 한 '공예(Applied Art)'라는 범주로 나뉘기 시작합니다.
하워드 리사티에 따르면, 공예는 기능성과 목적을 지닌 제작 활동이면서 동시에 제작자의 예술적 자아가 물질적으로 구현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껏 굳어진 관례들로 인해 우리는 기능과 쓰임에만 주목하며 공예가 지닌 잠재적인 미학 가능성을 억압해왔죠. 예술이라는 이름과 나누게 되면서요.
그렇게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기능과 쓰임이라는 측면에만 주목하며 공예를 예술보다 낮은 범주로 인식해왔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칸트 이후 정립된 미학적 기준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예술을 자율적이고 비기능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관점이 공예를 상대적으로 종속적인 영역에 위치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물론 덕분에 이후 미학과 예술 이론이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었음에는 변함이 없으나, 기능과 비기능을 기준으로 한 구분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가만, 건축과 디자인, 그리고 오늘날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오브제 작업들을 떠올려보면 기능의 유무만으로 예술과 공예를 구분하는 방식은 더 이상 충분한 설득력을 갖기 어렵지 않나요?
오늘날 공예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왼쪽: 다카하시 하루키, 청주비엔날레 / 오른쪽:이헌정 개인전, 현대카드 스토리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공예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요.
현대도예는 더 이상 사용을 전제로 한 물건에 머무르지 않으며, 기능을 상실하거나 애초에 기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제작된 작업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크거나 무겁고, 형태가 명확하지 않거나 만질 수 없는 설치 형태로 존재하는 작업들은 전통적인 기준으로는 더 이상 공예라고 부르기 어려운 지점에 놓여 있습니다.
현대 공예는 이러한 구분을 넘어서 공간과 관객, 경험 속에서 의미를 생성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설치도예는 독립적인 대상이 아니라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고, 관객의 동선과 시선을 유도하며 경험을 만들어내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흙’이라는 인간에게 있어 매우 익숙한 재료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습니다. 익숙한 재료가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제시될 때 우리는 대상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소주잔이 크게 만들어지면 소주 대신 맥주잔으로 사용하듯, 형태와 쓰임이 알맞게 매칭되는 공예품들이 있죠. 그러나 형태가 낱낱이 분리된 상태로 큰 전시장 바닥에 디스플레이되어있다면? 또는 물건의 크기가 말도 안되게 크고 작아 손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체가 아니게 되었을 땐?
맞습니다, 자연스레 낯섦을 경험하게 되죠. 이처럼 설치 도예는 작품을 통해 사고를 돕고 성찰을 할 수 있게 만들며 그 자체로 예술적인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오늘날의 공예는 실용과 무용이라는 구분으로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공예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는 것이 아닌 오히려 그 본질이 다시금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공예는 여전히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고 있죠.
현대도자는 어디서 왔는가
도자공예의 전통은 한국과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오랜 시간 축적된 기술과 미학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현대도예’라고 부르는 흐름은 이러한 전통의 중심이 아니라 서구, 특히 미국에서 먼저 형성됩니다.
20C 중반 미국의 ‘점토 혁명’은 관습에서 벗어나 도예를 자유로운 표현 매체로 전환시키며 순수미술의 맥락 속에서 공예를 재해석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이 과정에서 도예는 더 이상 그릇을 만드는 기술에 머무르지 않고, 물질 자체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확장됩니다. 흙을 다듬기보다 찢고 쌓고 변형시키며 그 물성을 드러내는 시도들은 감각과 에너지를 표현하는 행위로 이어졌고 이후 도예는 사회적 메시지와 개념적 접근을 포괄하는 매체로 발전하게 됩니다. 나아가 앞서 이야기했듯 설치, 퍼포먼스, 장소 특정성과 결합하며 하나의 장르로 규정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게 되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변화들이 공예가 예술로 새롭게 확장된 것이 아닌 이미 구분되어 있던 예술의 체계 안으로 다시금 도예가 편입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우리가 공예를 이해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공예는 독자적인 영역으로 인식되기보단 여전히 예술과의 관계 속에서 그 위치가 규정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국의 경우, 근대화 과정에서 공예는 산업이나 디자인과 충분히 분화되지 못한 채 미술의 틀 안으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공예를 현대적으로 받아들이기 좀 더 어려운 지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공예를 이해하는 방식을 다시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외부의 기준으로 계속해서 공예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면서요.
이를 위해서는 동아시아, 더 나아가 한국적 맥락에서의 현대공예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우리만의 맥락과 언어를 바탕으로 공예를 다시 바라보려는 시도를 해야합니다. 필자는 공예를 인식하는 방식을 전환하는 데에서 그 시작이 움틀 거라 믿게 됩니다.

공예는 인류의 생존과 함께 시작된 가장 오래된 생활 예술입니다.
기능과 아름다움은 처음부터 분리된 적이 없었고, 인간의 삶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존재해왔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온 기능과 무용, 예술과 공예라는 구분은 특정한 시대와 사고방식 속에서 만들어진 사고였죠.
그리고 오늘날의 작업들은 그 틀이 더 이상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동시대의 공예는 물건의 범주를 넘어 경험과 인식의 방식으로 확장되며, 기존의 구분을 자연스럽게 흔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공예의 본질은,
새롭게 정의하기 보다
오히려 굳어진 관례들을 다시 바라보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