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그림이 어떻게 사실적일까

예술사 속 단어를 따라가며 시대와 관계맺기

흐릿한 그림이 어떻게 사실적일까
<마스크2>, 존뮤익, 2008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을 실감했던 순간이 있나요? 같은 말을 쓰고도 서로 다른 의미로 이해해 대화가 어긋났던 건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경험일 겁니다. 분명 단어는 같은데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이는 데에는 서로가 지나온 상황들이 달랐기 때문이겠죠. 이처럼 우리는 같은 단어를 두고도 서로 다른 의미로 이해하며 종종 관계의 미묘한 어긋남을 경험하곤 합니다.

필자는 예술사를 배우며 가장 오래 붙잡고 씨름했던 단어가 있습니다. 여러 미술사 책을 읽다 보면 ‘사실적이다’, ‘현대적이다’와 같은 표현이 반복해서 등장하는데요. 그림과 그의 기술적 설명이 시각적으로 납득부터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인상주의가 사실적인 묘사를 한다는 설명을 보면서는 지금껏 공부했던 사조와 기법들까지 헷갈리기 시작했죠. 그 순간부터 예술사에서 반복되어 사용되는 단어들 간 공통된 부분과 차이점을 집요하게 물고 넘어졌던 것 같습니다.

각 사물들의 무너진 윤곽과 급하게 휘갈겨 놓은 듯한 붓질로 가득한 모네의 그림.
도대체 왜 ‘사실적’이라고 불리는 것일까요?

예술사를 따라가다 보면 고대미술부터 지금의 현대미술까지 그 찬란했던 과정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기법적 서술에 앞서 사람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달라져왔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예술사 속에서 동일한 단어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다른 의미로 사용되어 왔는지 살펴보고 그 의미의 변화가 작품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따라가 보겠습니다.


사실주의 속 사실: 있는 그대로

우리가 어떤 그림을 보고 사실적이라고 말할 땐 보통 사진처럼 정밀하게 묘사된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표면의 질감이나 빛의 반사, 사물의 형태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그대로 재현된 그림을 흔히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포토리얼리즘(Photo-Realism) 또는 우리 말로 극사실주의라고도 하죠.

그러나 미술사에서 말하는 사실주의(Realism) 속 ‘사실’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사실주의 미술은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 이후의 격동기에 시작합니다. 당시 예술가들은 급격한 산업화로 늘어난 도시빈민과 심해지는 계급 갈등 속에서 이상 대신 현실을 작품에 들이기 시작합니다.

사실주의의 직전 흐름이었던 낭만주의 회화를 보면 그 차이가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실제 역사적 사건인 7월 혁명을 바탕으로 그려졌지만 그림의 중심 인물은 프랑스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이상화된 존재입니다. 극적인 구도와 빛의 연출, 강렬한 감정 표현으로 자유를 위한 민중들의 투쟁과 숭고함이라는 의미를 고양시키고 있죠.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외젠 들라크루아, 1830

반면 귀스타브 쿠르베의 <오르낭의 장례식>에선 특별한 영웅도, 극적인 사건도, 숭고한 분위기도 없습니다. 그저 한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평범한 장례식이었는데요, 그림 속 사람들은 슬픔에 잠겨있기보다 지루해하거나 딴청을 피우는 등 아주 일상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보통 큰 캔버스의 역사화들은 종교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 또는 신화적 이야기를 주제로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무려 7미터의 캔버스에 40여명의 사람들을 실물 크기로 제작됩니다. 그러니 당시 기준에서 쿠르베의 그림이 얼마나 파격적인 시도였는지 체감 되시나요? 그동안의 미술계에서는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들을 주제로, 그들의 일상을 화면 가득 담았습니다. <오르낭의 장례식>이 던졌을 충격은 바로 현실의 반영이었죠.

<오르낭의 장례식>, 귀스타브 쿠르베, 1849-1850
"내게 천사를 보여 달라, 그러면 나는 천사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 귀스타브 쿠르베 -

이 두 작품은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에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주의는 신화나 역사, 영웅을 중심으로 하던 기존 회화의 전통에서 벗어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삶을 작품의 주제로 끌어들였습니다.

결국 사실주의에서 ‘사실적이다’라는 말은 사진처럼 정확한 묘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실 자체를 예술의 중심으로 가져오려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인상주의 속 사실: 보는 그대로

그러나 눈으로 보는 현실을 그렸다고 해서 사실적인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회가 더욱 발전함에 따라 사진 기술이 등장하며 예술의 영역을 대신하기 시작하자, 눈이 느끼는 현실을 재해석하고자 인상주의가 도래합니다. 빛과 색의 변화를 순간적으로 포착해 담아내고자 한 인상주의는 과학적이고 실험적인 도전이었습니다.
눈으로 본 순간의 인상. 그들이 생각하는 가장 사실적인 그림을 나타내보인 것이죠.

사실주의가 현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데 집중했다면, 인상주의는 대상을 바라보는 순간의 시각적 경험에 주목합니다. 특히 인상주의 화가들은 작업실이 아닌 야외에서 작업하며 다시 반복될 수 없는 순간의 빛과 공기의 상태를 빠르게 화면에 옮기려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통 회화가 중요하게 여겼던 또렷한 윤곽과 안정된 형태는 점차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인상, 해돋이>, 모네, 1872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는 이러한 시도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빠른 붓질과 흐릿한 형태,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색채로 이루어진 이 그림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확하고 정밀한 사실적인 그림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는 사물을 또렷한 형태로 인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시각은 빛과 색의 변화 속에서 대상을 받아들입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바로 이 지점을 포착하고자 했습니다. 정리하면, 인상주의 속 '사실'은 '지각되는 방식 그대로’를 의미하는 것이죠. 시각적 인상의 충실에서 출발해 빛의 변화에 따른 색의 변화를 담아내는 것으로, 이후 인상주의는 그림의 주제보다 방법을 더 중요시하게 됩니다.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단어

아카데미 미술은 수백 년간 제도권 안에서 얼마나 사실적으로 대상을 묘사하는 지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여기서 사실이란 이데아적 이상을 얼마나 진짜처럼 보이게 묘사할 지를 뜻합니다. 19C 중엽, 사실주의가 등장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을 작품의 중심으로 끌어들였습니다. 특정 계층을 위한 예술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맞닿아 있는 그림을 그립니다. 인상주의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사실적으로 탐구합니다.

이제 우리는 ‘사실’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죠. 단어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건,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단어는 시대와 맥락,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정의되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종종 예술사를 연대기처럼 이해하려 하지만 예술사의 흐름은 사람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변화해 온 과정과도 같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 서로 다른 의미를 떠올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또 다른 단어들—예를 들어 ‘현대적이다’라는 표현 역시, 과연 어떤 기준과 맥락 속에서 이해되고 있는 것일까요?

이번 아티클이 예술사 속 단어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바라보고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해온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작은 계기가 되었기를 바라며.

마무리로 제게 이러한 학문적 탐구의 즐거움을 주었던 책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