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을까
세계의 본질을 탐구하는 세 권의 책
『강철의 연금술사』 좋아하세요? 이제는 고전이 된 이 만화에서 금지된 기술인 인체연성을 시도한 연금술사는 ‘진리’를 마주하게 됩니다. 더 큰 힘이든, 부재하는 사람과의 재회이든, 연금술사는 다양한 목적으로 연금술을 파고드는데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과정에서 저들은 연금술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당도합니다. ‘진리’는 이에 대해 명쾌하게 답하는 대신 자기소개를 통해 우회적으로 설명합니다. “난 너희들이 세계라고 부르는 존재. 혹은 우주, 혹은 신, 혹은 진리, 혹은 전체, 혹은 하나, 그리고 나는… 너다.”
신념에 따라서 동의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진리’의 저 말은 우리가 진리, 세계, 전체, 본질, 원리 등등 여러 가지로 부르지만 비슷하게 여기는 무엇이 있음을 환기합니다. 위대한 시인 말라르메는 시인의 존재를 완전히 소거한 비인칭의 시를 쓰면서 "우주 전체가 거기에 이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황현산, 『잘 표현된 불행』) 책, 모든 것을 종합하는 절대적인 책인 대문자 책(le Livre)을 추구했는데요. 이처럼 우리는 각자의 진리를 좇아 살아가는 데서 삶의 이유를 얻는지도 모릅니다.
연금술사나 시인처럼 세계의 본질을 탐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진리 탐구의 몇몇 실천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를 더 높은 경지로 고양시키려는 시도로부터 실존에 대한 이해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바라보는 해상도를 높여줄 세 권의 책과 함께 진리 앞에 잠시 다녀와 볼까요.
인간을 천사가 되게 할 수 있을까
에드워드 윌슨-리, 『천사들의 문법』

기독교와 불교의 교리를 합쳐볼 수 있을까요? 정치철학과 과학철학을 엮어보는 건 어떨까요?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중 하나인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철학과 종교 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마음과 물질을 하나로 통합하여 보편적인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진리에 도달함으로써 조화를 이루고 천사와 같은 단계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죠. 피코 이전에는 저 위에 무한하고 지고한 세계가 있고, 이승에서의 삶은 그리 특별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피코는 현실을 여러 단계가 겹쳐 있는 것으로 재정초하고, 우리가 위아래로 오르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단계들을 거쳐 올라갈수록 모순적으로 보이는 많은 것들이 조화를 이루게 된다고요.
흥미로운 점은 피코가 목소리와 말에 마법의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특정한 소리의 종류와 패턴을 통해, 운율과 시를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 새의 목소리를 통해 천사의 영이 우리 안에 스며들어온다고 보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이 기술을 습득한 사람들은 하나로 합쳐져 거대한 조화 속에 거하게 됩니다. 감정과 구어에서 이성과 문어로 사고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던 시기에 이러한 발상은 종교적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만, 아름다운 것으로 전해지는 외모의 천재의 급진적인 사유는 이후로도 큰 영향을 미칠 만한 것이었죠. 인간을 진리와 직접 연결하려 한 어느 천재의 시도는 혼란한 시대에 숭고함과 집단적 세계의 중요성을 상기시킵니다.
실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윌리엄 에긴턴, 『천사들의 엄격함』

양자역학이라고 하면 흔히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떠올리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양자역학을 다루면서 보르헤스, 하이젠베르크, 칸트를 이야기합니다. 보르헤스가 무슨 상관이길래. 그러나 의아함도 잠시, 보르헤스가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서 시간과 관찰의 본질을 다루고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이 책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아름다움을 더해줄 거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됩니다.
"결국 보르헤스가 그의 글 전체를 통해서 보여주듯이, ···(중략)··· 과거로부터 하나의 장면을 온전히 되찾을 수 없다는 것, 살면서 맞이한 어느 날 오후의 흐름을 다시 잡을 수 없다는 것 자체가 그 자아의 영속성을 보장한다. 하지만 그는 또다른 진실을 파악했다. ···(중략)··· 시간을 늦춰 단일한 프레임에 담는다는 생각···(중략)···이 관찰 자체를 파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가까이에서 볼수록 현재는 우리의 이해로부터 더 멀리 벗어난다는 것을 말이다."
_윌리엄 에긴턴, 『천사들의 엄격함』, 까치, 53-54쪽
우리는 세계가 연속적이고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오해합니다. 들여다볼수록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이는 말하자면 어떤 법칙들이 고전역학의 차원에서는 매끄럽게 들어맞는 것과 비슷할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현실을 파악하는 것은, 다시 말해 어떤 장면이나 지식을 ‘아는 것’은 그것을 분리된 대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알려줍니다. 우리 앞에 놓인 세계, 지금 이 순간의 세계는 전혀 알 수 없고, 오직 다른 대상, 다른 부분과의 관계를 통해 상대적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을요. 우리는 정해진 대로 움직이거나 선택하는 대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알 수 없음, 가능성의 구름을 헤매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헤매는 일을 저자는 자유 의지라고 부릅니다.
의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대니얼 C. 데닛, 『의식이라는 꿈』

세계에 대한 고전역학적 오해처럼, 자유 의지에 대해서도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오해는 아마 설명할 수 없는 고유한 의식의 영역이 있고, 우리가 그것을 통해 무엇을 결정한다는 것일 듯해요.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린 것처럼 말이죠. 철학자이며 인지과학자인 대니얼 데닛은 의식의 신비를 과학적으로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기존의 주장들을 검토하면서 저런 오해를 바로잡습니다. 의식은 놀라운 현상이지만, 그렇게까지 놀라운 현상은 아니라고요.
이 분야에서 오랜 기간 독창적인 업적을 남긴 데닛은 2024년 4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마도 말년의 그는 ai의 변화를 보면서 크게 놀라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생명이 ‘마음 없는’ 세포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기능하는 것이지, 어떤 신비로운 작용을 하는 게 아님을 지적해왔으니까요. 이 책에서 그는 폴터가이스트를 검증하는 과학자처럼 문제, 논변, 사고 실험 등을 하나하나 가져와 차례로 반박합니다. 누군가 믿고 있던 진실에 균열이 생기는 모습은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니지만, 도장 깨기와 같은 데닛의 달변에는 유쾌함이 있습니다.
의식에 대해 명백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이제 우리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알고 있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말하듯 의식이 ‘마음먹은’ 대로 질서 있게 움직이는 체계가 아니라, 정보, 표상, 신호 들이 경쟁하고 연합하는 아수라장이라는 것도 거기에 포함되죠. 통념과 환상에 머무르지 않고 앎은 갱신하고자 한다면, 데닛을 따라 우리의 머릿속을 이해해보기를 제안합니다.
세계를 완벽하게 알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그 순간 세계는 더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정지된 장면으로 남아버릴 것입니다. 대상을 관찰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최종적인 진리가 드러난 세계의 마지막 순간을 목도하는 대신, 진리를 탐색하는 노력들을 보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초월적인 세계와 분리되어 있고, 신비로운 힘에 의해 실존을 부여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단일한 개체로서가 아니라 다른 개체와 상호작용하는 연합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강철의 연금술사』의 말미에 주인공 에드워드는 진리를 볼 수 있는 문을 통째로 내어주고 잃어버린 동생의 몸을 되찾습니다. 문이 없어도 괜찮겠냐는 ‘진리’의 질문에 에드워드는 “연금술이 없어도 모두가 있”다고 대답합니다. 이 장면은 진리가 무엇이고 진리를 탐구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진리는 문 뒤에 기다리고 있지 않고, 세 권의 책이 보여주듯 갈등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관계적으로 드러납니다. ‘진리’가 에드워드의 대답을 정답이라고 평가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