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흰 티만 판매한 편집숍 #FFFFFFT

세계 최초의 흰 티 편집숍이 아무 흰 티나 팔지 않는 이유

10년 동안 흰 티만 판매한 편집숍 #FFFFFFT

흰 티는 아무거나 입어도 그만일까요? 필자는 흰 티를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합니다. 안에 받쳐 입는 내의, 그리고 단품으로 입는 흰 티. 그중 공을 들여 고르고, 조금 더 값을 쓰는 건 주로 단품이죠. 무지 티보다는 그래픽이나 일러스트가 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브랜드 로고라도 작게 들어간 제품을 고릅니다. 솔직히 무지 흰 티만 입고 외출하는 건, 어쩐지 내복만 입고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주 틀린 감상은 아닌 게, 본래 티셔츠는 남성용 속옷이었습니다. 19세기, 옷을 입기 전 입던 원피스형 속옷이 그 시작이었죠. 20세기 초, 미군이 제복 안에 입는 속옷으로 흰색 면 반소매 셔츠를 보급하면서 언더셔츠가 널리 퍼졌고, 그 이후 노동 현장과 패션, 매체를 거치며 지금 아는 티셔츠의 개념이 자리잡혔다고 할 수 있죠.

오늘날 티셔츠 없는 스타일링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내복에서 겉옷으로 넘어와 옷차림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흰 티는 현대 패션의 본질에 가까운 옷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는데요. ‘흰 티는 결국 내복일 뿐’이라는 필자의 시야를 조금 넓혀준 편집숍이 있습니다. 바로 무지 흰 티만 취급하는 편집숍, #FFFFFFT입니다.


세계 최초의 흰 티 편집숍

이미지 출처 : Magazine House

퓨어 화이트칼라의 RGB 값은 (255, 255, 255)입니다. 이를 16진수로 바꾸면 #FFFFFF가 되죠. 여기에 ‘티셔츠’를 뜻하는 ‘T’를 붙인 곳이 오늘 소개할 세계 최초의 흰 티셔츠 전문점, #FFFFFFT입니다. 이름부터 ‘흰 티셔츠’인 이곳에서 취급하는 품목은 이름 그대로 흰 티셔츠뿐이에요.

대표인 나츠메 타쿠야는 어렸을 때부터 패션을 좋아했는데, 브랜드 숍이나 편집숍에서 흰 무지 티셔츠의 종류가 다양히지 않은 게 의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가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가게를 열었다고 하는데요. 그렇다고 아무 흰 티셔츠나 드려 판매하는 건 아닙니다. ‘편집숍’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브랜드의 흰 티를 엄선해 소개하고 있죠.

이미지 출처 : #FFFFFFT 공식 인스타그램

길단, 헤인즈, 프룻 오브 더 룸처럼 벌크형 티셔츠로 익숙한 브랜드는 물론, 아나토미카, 템베아, 벨바 신처럼 빈티지와 워크웨어 신을 기반으로 한 중고가 브랜드의 티셔츠도 만날 수 있습니다. 한 장에 15만 원을 웃도는 디자이너 브랜드와 니치 브랜드의 티셔츠도 취급하고 있어요. 원더 루퍼, 피그벨, 메종 코니콩 등이 대표적이죠. 이처럼 #FFFFFFT는 오직 흰 티만을 다루되, 그 안에서 가격대와 취향, 만듦새를 세분화한 제품 큐레이션을 펼쳐 보입니다.


백색이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미지 출처 : #FFFFFFT 공식 인스타그램

‘무지 흰 티’는 브랜드 입장에서 상업적인 목표를 세우기 쉬운 품목은 아닙니다. 눈에 확 띄지 않아 바이럴이 되기 어렵고, 필요 이상의 공을 들이기에도 애매해 보이죠. 하지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생산자, 즉 브랜드의 역량을 가장 정직하게 느낄 수 있는 옷이기도 합니다. 시각적인 요소가 없다고 해서 디자인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미지 출처 : #FFFFFFT 공식 인스타그램

예를 들어 클래식한 테일러링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브랜드가 박시한 가오리 핏의 흰 무지 티셔츠를 만든다고 가정해 봅시다. 브랜드의 주 컬렉션과 티셔츠가 잘 맞물리지 않는다면, 브랜드도 소비자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물이 됩니다.

그러니 흰색 무지티는 패턴, 원단, 소재의 선정 등 디테일한 부분에서 브랜드의 철학을 느낄 수 있는 옷입니다. ##FFFFFFT도 바로 이 점에 집중합니다. 고객이 직접 입어보고, 만져보고, 비교하며 자신에게 맞는 흰 티를 고르기를 권하죠. 실제로 이곳에서는 반드시 직접 입어봐야 합니다. 온라인 쇼핑몰이 없거든요.


와인을 테이스팅하듯, 흰 티셔츠를 골라라

이미지 출처 : #FFFFFFT 공식 인스타그램

오직 오프라인 판매, 그것도 월요일과 토요일 딱 이틀만. 이것이 #FFFFFFT의 운영 방식입니다. 이마저도 변동이 있어 방문 전에는 인스타그램 공지를 확인해야 하죠. 어르신들이 보면 “돈 벌 생각이 없구먼” 싶을 법하지만, 2016년 개점 이후 이곳은 임대료 비싼 하라주쿠 땅을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실제 구매 전환율도 약 90%에 이른다고 하죠.

이 독특한 운영 방식에 대해 #FFFFFFT는 “고객들이 어트랙션을 타는 마음으로 방문하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흰 티를 고르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도록 만든 운영 방침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화면 속 썸네일과 몇 줄의 설명만으로는 흰 티의 차이를 알아차리기 어렵기 때문이죠. 같은 흰색, 같은 무지 티셔츠처럼 보여도 목의 높이, 원단의 밀도, 어깨선의 위치, 몸에 닿는 감촉에 따라 전혀 다른 옷이 되니까요.

이미지 출처 : #FFFFFFT 공식 인스타그램

매장은 좁습니다. 직원 2명을 포함해 대략 6명 정도가 들어가면 꽉 들어찰 정도죠. 고객은 직원의 세심한 설명을 들으며 티셔츠의 세부 사항을 하나씩 고려해 제품을 고룰 수 있습니다. 넥은 어떤 방식으로 마감했는지, 원단의 두께는 어느 정도인지, 어떤 소재를 사용했는지, 착용감은 어떤지, 내가 원하는 핏에 맞는지. 각자의 기준에 따라 제품을 비교하면서요.

이미지 출처 : #FFFFFFT 공식 인스타그램

색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필자는 피부가 어두운 편이라 아이보리나 오프 화이트 컬러를 선호하는데요. 안에 입든, 밖에 입든 흰 티는 얼굴색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옷인 만큼 어떤 색조를 고르느냐도 중요합니다.

#FFFFFFT는 티셔츠를 고르는 일이 ‘와인이나 커피를 테이스팅하듯’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을 찾는 과정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오프라인 판매 원칙과 제한된 운영 시간은 그 자체로도 화제성이 있지만, 흰 티셔츠를 구매할 때 필요한 비교의 과정을 생각하면 이들의 철학과도 잘 맞아떨어집니다.


오직 이곳에서만 파는 '흰 티셔츠'

편집숍과 브랜드의 협업 제품인 ‘별주’ 모델은 그 자체로도 방문 동기가 되곤 합니다. 구입할 생각이 없었더라도, 오직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특별한 제품이라는 점이 셀링 포인트가 되죠. #FFFFFFT에도 별주 모델이 있습니다. 이들의 확고한 콘셉트와 철학에 공감한 브랜드들과 협업해 한정판 흰 티셔츠를 만들기도 해요.

이미지 출처 : #FFFFFFT 공식 인스타그램

올해 4월에는 ‘선스펠’과의 별주 모델을 발표했습니다. 선스펠은 1860년 영국에서 설립된 데일리웨어 브랜드로, 베이식한 디자인에 고급 천연 소재와 탄탄한 만듦새를 더해 높은 가격대에 판매되고 있죠. 기본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FFFFFFT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는 브랜드인데요.

이번 협업은 선스펠의 스테디셀러인 ‘루프백 스웨트셔츠’를 베이스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플레인한 스웨트셔츠를 반팔로 바꾸고, 컬러는 역시 화이트로 맞췄습니다. 발매가는 22,500엔으로 높은 편이지만, 선스펠의 헤리티지를 바탕으로 한 별주 제품이라는 점에서 충분한 수요가 있을 듯합니다.

스타일 별로 제안하는 PB 티셔츠

이미지 출처 : #FFFFFFT 공식 인스타그램

흰 티셔츠에 진심인 만큼, 이들이 만든 PB 상품은 어떨지도 궁금해집니다. #FFFFFFT의 첫 번째 오리지널 아이템인 ‘DNM’은 데님을 위한 화이트 티셔츠를 표방합니다. 데님과 흰 티의 조합은 심플한 코디의 정수라 할 수 있죠. 그렇다면 데님과 어울리는 흰 티는 무엇일까요? 빈티지한 무드가 자연스럽게 느껴질 만큼 묵직하고, 견고하게 마감한 티셔츠일 겁니다.

이를 위해 미국산 면으로 만든 굵은 면사를 일반적인 티셔츠보다 약 2배 정도 사용해 고중량 원단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입을수록 몸에 맞게 길들여지는 재미가 있는 사양인데요. 빈티지 티셔츠의 제직 방식을 살리기 위해 루프휠 편직기를 사용해, 루프휠 티셔츠 특유의 폭신한 질감도 구현했습니다. 여기에 두꺼운 바인더 넥으로 빈티지한 디테일을 더했죠. 핏은 데님 재킷이나 셔츠와 레이어드하기 편한 레귤러 핏으로 완성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 #FFFFFFT 공식 인스타그램

이 밖에도 포멀 재킷, 밀리터리 스타일에 어울리는 티셔츠를 제작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각 스타일에 맞는 사양과 최고급 면을 엄선해 만든 제품들이죠. 올해 10주년을 맞아 발매한 ‘LUX’는 #FFFFFFT가 흰 티셔츠를 다루며 쌓아온 노하우와 철학이 집약된 럭셔리 티셔츠입니다. 세계 최고급 초장면으로 꼽히는 ‘해도면’을 사용해 만든 오리지널 원단으로 제작했다고 하죠.

지우지 못할 오염 없고, 품지 못할 색깔 없다

이미지 출처 : #FFFFFFT

흰 티셔츠는 어느 아이템과 매치해도 무난해 활용도가 높습니다. 하지만, 오염에 쉬운 ‘백색’이기 때문에 관리가 어렵기도 해요. 세탁한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오염이 남기도 하고요. 많은 소비자들이 값 비싼 흰색 무지 티를 구매하기 꺼려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어요. 더러워지기 쉬우니, 가성비 좋은 흰 티를 사고, 입다가 버리거나 잠옷으로 쓰는 거죠. 

이미지 출처 : 기무라 비누라공업

2017년, #FFFFFFT가 창립 기념으로 발매한 흰색 티셔츠 전용 세제를 만든 것도, 흰 티를 오래 입기 위한 제안으로 볼 수 있습니다. 1923년에 창업한 ‘기무라 비누공업’과 협업해 만들었는데요. 전통 방식인 ‘가마솥 제법’으로 제작해 효소를 살려 피부나 땀에서 나는 단백질 성분의 얼룩을 효과적으로 분해할 수 있다고 하죠.

성분은 산소계 표백제인 과탄산나트륨을 기반으로 합니다. 미지근한 물에서도 표백 효과가 잘 나타나 원단 손상을 줄일 수 있고, 살균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해요. 흰 티를 새로 사는 일만큼이나, 이미 가진 흰 티를 제대로 돌보는 일까지 고민한 셈입니다.

이미지 출처 : #FFFFFFT

필자는 ‘흰 티 전문점’이라는 소개를 처음 들었을 때, ‘검은 티도 다뤄볼 법하지 않나?’라는 궁금증이 생겼는데요. 실제로 #FFFFFFT는 과거 검은색 무지 티셔츠 편집숍 ‘#000T KABUKICHO’를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는 폐점했지만, 2021년부터 약 2년 반 동안 일본 최대 유흥가인 가부키초 한복판에서 검은 티셔츠만 판매했죠.

가부키초는 예로부터 야쿠자를 비롯한 폭력 조직과 유흥업소의 이미지가 강한 지역이지만, 동시에 성별, 나이, 직업,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뒤섞이는 동네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검은 티’를 판매한 건, 도시의 어두운 면모를 끌어안는 동시에 모든 색을 흡수하는 검정의 성질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받아들이겠다는 메시지 같기도 합니다. 


패션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필자는 대체로 어떤 대답에도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 편입니다. 각자의 이유가 분명하다면, 그 또한 틀린 답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한 가지 의견을 골라야 한다면, 저는 패션을 ‘태도’라고 보는 쪽에 동의합니다. 과거의 옷이 신분이나 지위를 보여주는 표식이었다면, 오늘날의 패션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아이템을 고르고, 무엇을 어떻게 입느냐는 착용자의 취향과 관심사를 드러냅니다. 반대로 옷이나 액세서리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태도 역시 하나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그 자체로 “나는 다른 곳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는 선택을 보여주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패션은 개성이다’라는 표현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습니다.

#FFFFFFT의 운영 방식과 큐레이션은 언뜻 보면 특이한 취향을 겨냥한 영리한 기획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오직 흰 티만 팔고, 온라인 판매도 하지 않으며, 정해진 날에만 문을 여는 방식은 분명 화제성을 만들기 좋은 요소죠. 하지만 10년 가까이 한 가지 품목만 집요하게 소개해왔다는 건, 진정성이 없으면 어려운 일입니다. 흰 티 한 장을 고르는 데도 이렇게 많은 기준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고, 그 기준을 고객이 직접 확인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패션이 태도라면, #FFFFFFT가 보여주는 태도는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빠르게 고르고 쉽게 버리는 대신, 직접 입어보고 비교하고 오래 관리하는 것. 흰 티를 통해 이들이 말하는 본질은 작고 구체적인 기준을 세우고, 그에 맞는 물건을 고르는 일에 있습니다. 기본이란 아무 생각 없이 고를 수 있는 옷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기준을 가장 솔직하게 확인하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