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팬덤에 갇힌 여성의 욕구들
캐롤라인 냅의 『욕구들』로 살펴보는 여성의 억압된 욕구와 통제

K-POP 아이돌 그룹을 덕질해본 적 있으신가요? 예전엔 K-POP 하면 아름다운 비주얼, 신나는 멜로디의 음악이 떠오르곤 했는데요. 이제는 듣는 음악을 넘어 하나의 문화이자 취미가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아이돌을 보기 위해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콘서트를 보러 가고, 소속사와 방송국에서 준비한 프로그램부터 보는 것을 넘어 팬들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고 생일을 축하하는 카페를 열기도 하죠. 아이돌을 꼭 닮은 인형 같은 굿즈를 구매하거나 직접 만들기도 하고, 같은 아이돌을 좋아하는 친구를 사귀는 건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덕질의 세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즐거운 덕질 가운데, 피로감과 분노를 느끼는 일 또한 잦아졌습니다. 과열된 K-POP 산업과 팬덤 속에서 뿌리 깊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더 복잡하고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경호원이 아티스트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한 팬들의 신체를 과도하게 접촉하고 폭행하는 인권 침해가 대표적입니다. 아이돌의 아름다운 외모를 동경하는 걸 넘어 과도한 다이어트와 성형을 요구하거나, 팬들 스스로를 검열하는 외모 지상주의 문제도 심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팬덤이 형성된 다양한 분야 중 유독 K-POP 팬덤에서 극심한 건 왜일까요? 팬층 대부분이 1020 젊은 여성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떠올리게 됩니다. 오늘은 여성의 억압된 욕구를 이야기한 캐롤라인 냅의 책 『욕구들』을 바탕으로 과열된 K-POP 문화의 현황과 원인을 살펴보려 합니다.
빠순이라는 이름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다양한 분야에서 ‘팬덤화’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사회 전반의 물질적, 경제적 성장을 기반으로 의식주를 넘어 여가를 책임져주는 상품과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각 분야마다 깊게 좋아할 거리들이 풍부해지면서, 자신만의 취향을 탐구하고 몰두하는 ‘덕질’의 시대가 온 것이죠. SNS의 발전까지 힘입어 좋아하는 대상이 같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응원하는 문화가 자연스레 자리 잡았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인기가 급증한 야구처럼 스포츠 분야도 덕질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경기장을 찾아 감독이 된 것처럼 함께 소리치고, 한정판 굿즈를 구매하고, 경기 결과를 열렬히 확인하곤 합니다. 게임 또한 팀을 응원하면서 방청을 가고, 우승을 함께 축하하며 기쁨을 나눕니다. 나아가 애니메이션부터 드라마, 영화, 공연/뮤지컬, 도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팬덤이 커지고 있습니다. 같은 대상을 좋아하며 일체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일상의 전반을 함께하고 있죠.

그런데 유독 이러한 팬덤이 비하되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K-POP 아이돌 분야입니다.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팬들을 ‘빠순이’라는 말로 낮추어 부르곤 합니다. 과도한 덕질을 비하하는 말에서 이제는 팬덤 내부에서 자조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팬덤 중에도 유독 아이돌 그룹의 팬들만을 ‘빠순이’라고 지칭하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팬덤 혐오

이처럼 K-POP 팬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비하하는 일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콘서트 현장에서 과도한 본인확인 문제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콘서트 티켓을 판매 목적으로 구매한 후, 비싸게 값을 올려 파는 리셀 문화와 맞물린 일이었습니다. 소속사 입장에서 과도한 리셀이 문제라면 티켓을 판매하는 개인과 업체에 대한 규제가 필요할 텐데, 화살은 티켓을 구매한 팬을 향했습니다. 문제는 이로 인해 실제 자신의 명의로 티켓을 구매한 일부 고객도 리셀 티켓을 구매한 것으로 의심받았다는 점입니다. 신분증 사진과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장을 거절당하거나, 주소와 주민등록번호부터 금융 인증서와 생활기록부까지 요구했다는 주장이 이어졌습니다.
경호원의 신체 접촉과 폭행 문제도 심각합니다. 공항에 아이돌을 보기 위해 찾아온 팬들이 과도하게 아이돌과 접촉하려 하거나 경로를 방해하는 행위는 분명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제지 수준을 넘어 팬이 심각한 상해를 입힐 만큼 경호원이 폭력을 행사한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팬사인회에서는 팬이 반입이 금지된 촬영 혹은 녹음 기기를 지참하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속옷 안까지 접촉하거나, 화장실까지 따라가는 일 등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K-POP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는 여성의 욕구를 이야기한 캐롤라인 냅의 책 『욕구들』과 연결됩니다. 캐롤라인 냅은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 시간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엘리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심각한 거식증, 알코올 중독 등으로 삶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 여성이기도 합니다.

냅은 여성이 경험하는 다이어트 강박, 성욕, 알코올 중독 등 다양한 욕망의 근원과 표출 방식을 탐구합니다. 특히 ‘인정욕구’에 대한 이야기에 주목할 만합니다. 여성운동으로 그 어느 때보다 여성의 경제 활동률이 높아지고, 자아를 실현하며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오늘날 여성은 남성과 동일하게 욕망을 추구하고, 대등하게 존중받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여성은 자유라는 명목하에 더욱 교묘하게 통제당하는 경험을 합니다.
한때 남자들이 장악했던 영역(각급 학교, 스포츠, 직장, 침실)에서 여자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하자, 여성을 어린애로 취급하고 수동적이며 연약하며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로 묘사하는 여성성의 이미지들이 그들을 막아섰다. 로절린드 카워드가 『여성의 욕망』에서 섰듯이 “여성의 몸은 이 사회가 메시지를 쓰는 장소”이며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미국의 평균적 모델의 점점 줄어드는 실루엣에서 점점 더 명료하게 새겨졌다. 너무 많이 갈망하지 마라, 너에게 주어진 한계선 밖으로 나가지 마라.
냅의 말은 존중받지 못하는 K-POP 여성 팬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들은 아이돌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많은 돈과 열정을 쏟는 적극적인 소비자임에도, 쉽게 무시당하곤 합니다. 팬들이 겪는 인권 침해는 단순히 소속사의 미숙한 운영을 넘어, 팬들을 통제와 감시의 대상으로 보는 사회적 시선에 기인합니다. 과도한 신체 접촉과 폭력은 여성을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로 간주하고 모든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를 표출합니다. 아이돌 그룹에 대한 애정을 쏟으며 소속감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었던 팬들은 이와 같은 과정에서 주체성과 존엄성을 훼손당합니다.
외모 지상주의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문제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이돌은 그룹마다 다양한 세계관과 음악, 퍼포먼스를 선보입니다. 하지만 가장 근간에 ‘비주얼’이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다른 이들보다 빼어난 외모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이미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이 핵심적입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동경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이 적정 수준을 지나치면서, 아이돌과 팬 모두 외모 강박으로 고통받게 됩니다. 아이돌 멤버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한 외모 칭찬은 흔히 너무 세분화되곤 합니다. 이목구비 하나하나, 신체의 작은 부분까지 모두 나눠 칭찬하고, 이상적인 모습을 벗어날 땐 비난의 화살로 뒤바뀌곤 합니다. 나아가 SNS와 유료 소통 서비스 등 아이돌과 팬 간의 실시간 소통 창구가 확장되면서 도를 넘은 평가와 비난, 성희롱성 발언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이돌에 대한 요구는 팬 스스로도 그 기준에 맞춰 검열하게 만듭니다. 자신과 주위 팬들도 최상의 상태로 꾸미기를 요구하고 아이돌 그룹과 만나는 오프라인 행사에서 꾸미지 않은 사람을 직접적으로 비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스스로 통제한다는 믿음

K-POP 팬덤에서 보이는 과열된 외모 지상주의는 사회에서 여성에게 요구하는 ‘완벽한 이미지’와연결됩니다. 팬덤의 주류를 이루는 1020 여성들은 일상적으로 외모로 평가받고, 이상적인 모습을 갖추도록 압박받습니다. 비주얼을 강조하는 K-POP 문화는 여성이 받는 압박을 가중시킵니다. 이점에서 문제는 다시 한번 캐롤라인 냅의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냅은 여성이 권한을 빼앗겼을 때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통제를 강화하는 경향을 지적합니다.
여자, 특히 근본적으로 권한을 박탈당했다고 느끼며 확신이 없는 여자는 새로운 규칙들을 만들고, 내적인 제약들로써 외적인 제약들을 대체하며, 안에서 밖을 조종하는 식으로 작동하는 지배 시스템을 설치한다. 이로써 자유의 폭정은 자아의 폭정으로 재설정된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일종의 심리적 장부 조작이다. 그 형식이 거식증처럼 극단적인 것이든 그리 심하지 않은 자동 반사적인 것이든 간에, 재고를 파악하고 예산을 점검하고 계산하고 조정하는 이 일은 하나의 목적에 기여한다. 바로 통제의 환상을, 논리와 질서의 환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K-POP 팬덤 내 과도한 외모 지상주의는 단순히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을 뛰어넘습니다. 완벽한 외모에 대한 강박으로 불안을 느끼는 여성들은 ‘내적인 제약’을 만들어 자기 스스로를 옭아매게 합니다. 마치 모든 조건과 결과를 고려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합니다. 외모에만 집중해 극심한 다이어트와 성형 등 높은 수준의 통제를 가하면서, 그 외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려 합니다.

내적인 제약은 자기 자신을 넘어 타인에게까지 확장됩니다. 팬이 다른 팬에게 뛰어난 외모를 요구하거나, 아이돌에게 살을 빼라고 비난하는 상황을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자신이 외부에서 받는 외모 강박을 타인에게 투사해 통제하려는 모습입니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은 상황에서 스스로 검열하고, 타인에게 요구한다는 건 언뜻 자유로운 선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외부 압력을 내면화하고 확대하는 ‘자유의 폭정’이 숨어 있습니다.
K-POP의 성장과 함께 팬덤 또한 확장되며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아이돌을 응원하면서 느끼는 기쁨과 위안은 특별합니다. 하지만 팬덤이 과열되면서 인권 침해, 외모 지상주의 같은 문제 또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다른 분야였다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논의될 일도 ‘빠순이’라는 이름으로 넘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생업을 제쳐두고, 아이돌 그룹에 모든 돈과 시간을 쏟아붓는 일은 개인의 안녕에 위험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철없는 개인의 일로만 치부하기엔 더 깊고 본질적인 문제가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K-POP 팬덤에서 발생한 문제는 단순히 팬의 문제라고 볼 수 없습니다.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억압, 그로 인해 여성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 권한이 박탈당하는 현실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과열된 상황을 진정시키고, 팬과 아이돌 모두 행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팬들 스스로 덕질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과 욕망을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아가 사회 구조적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현황을 분석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공동체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K-POP 아이돌과 음악만큼, 건강한 팬덤 문화가 자리 잡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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