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되지 않는 소리들

관계를 끊는 세 개의 청취

연결되지 않는 소리들
출처: Unsplash - Kirk Cameron

공연장에 앉아 음악이 시작되기를 기다릴 때, 여러분은 어떤 소리를 기대하시나요? 아마도 하나의 흐름, 이어지는 선율, 점차 쌓여가는 긴장과 같은 것들일 것입니다. 한 음 다음에 다른 음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고, 선율은 흐르며, 리듬은 앞으로 나아가고, 여러 악기는 서로 호흡을 맞추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음악은 흔히 관계의 예술로 여겨집니다. 음과 음이 이어지고, 여러 성부가 서로 기대고 밀어내며, 연주자와 청자는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등 음악은 수많은 관계 위에서 작동 때문입니다.

하지만 20세기 음악의 여러 흐름, 특히 모더니즘과 실험음악의 계보에서는 이러한 익숙한 기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작곡가가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일부 작곡가들은 음과 음의 연결, 시간의 흐름, 소리의 중심을 새롭게 조직하며 우리가 음악을 듣는 방식을 넓혀 보였습니다.

소리들은 더 이상 긴밀하게 이어지지 않고, 어떤 작품에서는 음들이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춘 듯 들리며, 어떤 순간에는 아예 연주자가 소리를 내지 않기도 합니다. 관계를 강화하기보다 약화하고, 때로는 끊어내다시피 하며 새로운 청취를 열어 보인 것입니다.

음악에서 관계가 끊어질 때, 우리는 무엇을 듣게 될까요?


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점처럼 흩어지는 음악

Anton Webern 《 5 Pieces for Orchestra, Op.10》

서양 음악은 오랫동안 음과 음 사이의 관계를 정교하게 조직해 온 역사였습니다. 화성은 ‘두 개 이상의 음(화음)이 연결되며 만들어내는 울림’ 속에서 긴장과 해소의 질서를 이루었고, 대위법은 ‘두 개 이상의 독립적인 선율’을 동시에 배치해 각 성부가 관계를 이루며 하나의 구조를 만들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톤 베베른(Anton Webern)의 음악은 이러한 익숙한 흐름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하나의 선율이 길게 이어지기보다, 짧은 음들이 서로 떨어져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톤 베베른의 《5개의 관현악곡 Op.10》은 1911년에서 1913년 사이에 작곡된 짧은 오케스트라 소품들입니다. 이 작품은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음악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극도로 압축된 형식 안에서 다채로운 악기 배치와 세밀한 음향 변화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 과정에서 긴 선율이나 두터운 화성의 전개보다, 짧게 스치고 사라지는 개별 음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게 만듭니다. 흔히 베베른의 음악을 두고 ‘점묘적’이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음 하나하나가 선으로 이어지기보다 서로 떨어진 점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음높이만큼이나 ‘음색’ 또한 중요한 구조 요소로 작동합니다.

한 악기에 잠깐 반짝인 소리가 곧바로 다른 악기에서 다시 나타나고, 특정 악기가 선율을 길게 끌고 가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기대하는 ‘멜로디를 따라가는 듣기’가 여기서는 쉽지 않지요. 그래서 이 작품을 들을 때는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따라가려 하기보다,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각 음의 음색과 질감에 더 집중해 보면 좋겠습니다. 긴 선율의 연속 대신, 짧고 응축된 개별 음들의 거리와 서로 다른 악기 색채가 더 선명하게 들릴 것입니다.

베베른이 보여주는 것도 바로 그런 지점입니다. 선율을 길게 이끌어 가는 대신, 그동안 하나의 흐름 속에 묻혀 지나가기 쉬웠던 각 악기의 색채와 잔향을 짧은 소리들의 거리와 배치를 통해 드러내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머무는 시간

Morton Feldman 《 Palais de Mari 》

모턴 펠드먼(Morton Feldman)의 《Palais de Mari》는 1986년에 작곡된 피아노 독주곡으로, 부니타 마커스의 위촉으로 작곡되었고 화가 프란체스코 클레멘테에게 헌정되었습니다. 펠드먼 말년의 작품답게, 이 곡은 전통적인 의미의 ‘전개’나 ‘완결’보다 소리의 지속,반복의 미세한 변화, 긴 시간 속에 남아 있는 잔향을 더 중요하게 다룹니다.

이 음악은 듣고 있으면 긴장이 점점 고조되는 느낌보다는, 비슷한 장면이 조금씩 다른 표정으로 오래 이어지는 인상을 줍니다. 화려한 절정이나 명확한 해소가 있기보다 한 음이 남긴 울림이 다음 음이 등장하기 전까지 머물고, 그 사이의 잔향과 적막이 또 하나의 층위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곡에서 중요한 것은 음 그 자체만이 아니라 음과 음 사이의 시간, 즉 소리와 소리 사이의 여백입니다. 이 곡에서 관계는 단절이라기보다 ‘지연’과 가깝습니다. 음들은 적극적으로 나아가지 않고, 서로 충분한 거리를 둔 채 나타나며 공존합니다. 바로 그 거리감 때문에 귀는 더 예민해집니다. 조금 전에 등장한 소리가 아직 남아 있는지, 이번에 등장한 음은 직전의 음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고요처럼 보이는 시간 안에 어떤 미세한 변화가 숨어 있는지를 스스로 찾아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음악이 앞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하고, 변화가 뚜렷하게 드러나기를 기다리지만, 이 곡은 그런 기대를 잠시 내려놓고, 소리의 잔향과 쉽게 지나치기 쉬운 차이에 귀를 기울이게 합니다. 그렇게 듣기 시작하면, 이 음악은 더 이상 그저 느리고 정적인 곡으로만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음악이 멈춘 자리에서 시작되는 청취

John Cage 《4'33''》

존 케이지(John Cage )의 《4′33″》는 1952년에 작곡된 작품으로, 같은 해 초연되었습니다. 흔히 ‘침묵의 곡’이라고 불리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작품은 작곡가의 의도된 연주 소리가 비워진 그 자리에서 악기 외의 공연장 안팎의 주변 소음이 작품의 일부로 들리도록 만드는 곡입니다. 

이 곡을 처음 접하면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연주자는 무대 위에 앉아 있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부터, 평소라면 배경으로 밀려나 있던 것들이 집중적으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객석의 기침 소리, 누군가 몸을 고쳐 앉는 작은 소음, 냉방기 소리, 멀리서 어렴풋이 들리는 도시의 잔향 같은 것들 말입니다. 실제로 이 작품의 초연에서도 관객의 기침, 의자 소리, 발소리 등이 ‘4분 33초’ 동안의 음악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크게 달라지는 것은 음악의 중심입니다. 기존의 관습에서는 작곡가가 의도한 음과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중심이라고 생각하지만, 케이지는 그 중심을 과감히 옮깁니다.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물러나, 공간과 우연, 그리고 그것을 듣고 있는 청자의 상태가 주체로 등장합니다. 케이지는 모든 소리를 미리 정해 두기보다, 그 순간의 상황과 환경에 열어 두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런 태도는 흔히 ‘불확정성’이라고 불리는데, 소리를 통제하기보다 그때그때의 조건 속에서 음악이 형성된다는 생각입니다. 이 ‘불확실한 우연’이 이 작품의 본질이 됩니다.

그래서 《4′33″》는 관계의 중심을 옮긴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곡가와 연주자가 이끌던 구조 대신, 공간과 청자, 우연한 소리와 현재의 시간이 관계의 핵심이 됩니다. 음악이 ‘주어지는 대상’이 아니라, 그 순간의 환경과 청취 행위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이 되는 것이죠. 이 작품이 지금까지도 계속 이야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음악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음악으로 듣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이 곡은 청취의 책임을 우리에게 맡깁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것이 아닌, 우리가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소리를 듣지 않은 채 지나쳤는지를 깨닫게 하지요. 익숙한 질서가 멈춘 자리에 새로운 감각이 들어오는 경험, 그 자체가 이 작품의 핵심입니다.


베베른, 펠드먼, 케이지의 음악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관계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선율이 더 이상 긴밀하게 이어지지 않고, 소리는 적극적으로 나아가기보다 머물며, 때로는 연주되는 소리 자체가 비워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듣게 됩니다. 하나의 흐름을 따라가기보다, 각각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빠르게 지나가며 놓쳤던 것들을 다시 듣게 되며, 평소에는 배경으로 물러나 있던 것들까지 선명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도 비슷한 순간을 겪습니다. 일이 막힘없이 잘 풀리거나 관계가 지나치게 순조로울 때는, 그 안에 있는 사람의 마음이나 각각의 순간을 자세히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멈추어 서고, 잠시 거리를 두는 순간이 찾아오면 보이지 않던 것들을 선명하게 알아차리게 됩니다우리는 이런 공백이 생기는 것을 쉽게 불안해하고 곧바로 채우려 하지만, 어떤 순간은 그렇게 빠르게 지나갈 때보다 잠시 머물렀을 때 비로소 자기 모양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 음악들이 보여주는 것도 바로 그런 감각일 것입니다.

음악에서 관계가 끊어질 때, 우리는 무엇을 듣게 될까요?

아마도 그것은,
지금까지 너무 당연해서 듣지 못했던 것들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