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노래하는 두 도시의 벽화예술
갈등 위로 피어난 오색찬란 빛깔들

마음의 벽은 물리적인 벽이 되어 도시를 나누고 사람들을 멀어지게 합니다. 어느덧 일상이 된 갈등 속에서 깊은 상처는 오래도록 남아 사라지지 않죠. 하지만 공고히 쌓은 벽 위로 형형색색의 빛깔이 입혀질 때 도시의 표정은 달라지기 시작하는데요.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라는 한 페스티벌의 슬로건처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배척하기보다는 먼저 화해의 인사를 건네볼 수는 없을까요?
독일 베를린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전쟁과 범죄로 상처 입은 두 도시는 예술을 통해 아픔을 딛고 화합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요. 하나로 연대하는 사회를 꿈꾸는 두 도시의 예술 벽화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1961년 8월의 어느 새벽,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나누는 장벽이 세워집니다. 바로 냉전 시기에 동독 정부가 서독으로 탈출하는 주민들을 막기 위해 세운 베를린 장벽인데요. 철조망 형태였던 장벽은 이후 155km에 이르는 견고한 콘크리트 벽으로 건설되면서 28년간 도시를 분단했습니다. 장벽 주변에는 전기 울타리와 지뢰를 비롯해 자동 사격 장치까지 설치되어 ‘죽음의 지대(Todesstreifen)’라 불렸고, 상당수의 시민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죠.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독일 통일을 상징하는 역사적 명소이자 세계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야외 갤러리인데요. 1989년 가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21개국에서 모인 100여 명의 예술가들이 한데 모여 평화와 화합을 주제로 장벽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무너진 공산주의 체제를 풍자하는 <형제의 키스>로, 그림 앞은 인증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이고 있죠. 어느덧 갤러리는 연간 3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는데요. 베를린 장벽 재단은 베를린 장벽과 독일 분단의 역사를 보존하며 이를 알리는 다양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춤추며 하나로 통합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 장벽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자동차, 냉전 시대 동서독을 연결하는 유일한 길목이었던 베를린 브란덴브르크 문을 입에 물고 있는 비둘기 두 쌍의 모습까지. 베를린은 과거의 아픔을 흔적 없이 지우는 대신, 그 위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어 과거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45년간의 길고 긴 분단의 시간은 이제 예술이 되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건넵니다.
파벨라 프로젝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아름다운 항구도시이자 약 200년 동안 브라질의 수도였던 리우데자네이루. 푸르른 해변이 펼쳐진 여유로운 도시의 이면에는 어두운 사회문제가 자리 잡고 있는데요. 리우의 인구의 10% 이상이 거주하는 빈민촌 파벨라(Favela)는 마약부터 총기 밀매 등 각종 범죄가 들끓는 지역으로, 대낮에도 총격전이 벌어지고 갱단이 거리를 배회하는 곳이죠. 정부마저 포기한 무법지대인 이곳의 주민들은 기본적인 일상을 지키거나 제대로 된 교육마저 받을 수 없는 실정인데요.
2005년, 빈민가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해 리우데자네이루에 방문한 네덜란드 출신의 예술가 듀오 하스와 한(Haas&Hahn)은 파벨라의 참혹한 현실을 목격합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한 이들은 이내 지역 사회 기반의 공공 예술 프로젝트인 ‘파벨라 프로젝트’ 착수하는데요. 2개의 벽화 프로젝트를 선보인 이후 2010년에는 산타 마르타 지역의 건물 34개를 주민들과 함께 알록달록한 무지갯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합니다. 25명의 청소년과 주민들을 고용해 교육하고, 7,000㎡에 이르는 면적에 벽화를 그려나가면서 예술의 장을 펼쳐 나가죠.

이후 도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데요. 파벨라 프로젝트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언론에 보도되었고, 관광객도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파벨라에 도입된 경찰 평화 유지대(UPP)의 성과까지 함께 맞물리면서 살인율과 마약 밀매 활동도 감소할 수 있었다고 하죠. 비록 파벨라의 범죄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예술가 듀오가 건네는 평화의 메시지는 주민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마음에 울림을 전했습니다.
벽을 쌓아 올리는 것도, 무너트리는 일도 결국 인간이 하는 일입니다. 한때는 냉전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던 베를린 장벽이 이제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드는 화합의 장으로 변한 것처럼 말이죠. 폭력과 대립으로 얼룩진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혐오보다는 이해를, 침묵보다는 행동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