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AI, 새로운 공존을 상상하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관계
피곤한 하루의 끝, 여러분은 지친 마음을 어떻게 달래시나요? 잠들기 전 랜선 집사가 되어 귀여운 동물 영상을 보거나, AI에게 마음속 깊은 고민을 털어놓으며 위로를 얻지는 않으셨나요? 어쩌면 우리는 이미 사람보다 ‘사람이 아닌 존재’들과 더 깊은 유대감을 나누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국민 열 명 중 세 명이 반려동물을 기르고1) 누군가는 AI와 결혼식까지 올릴 만큼²), 그들은 이미 우리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습니다.
생태 위기와 높아진 동물권 의식, 그리고 눈부신 AI 기술의 발전은 인간만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오랜 신화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인간은 이 지구 위에서 어떤 존재들과 어떤 방식으로 공존해야 할까요?
이번 글에서는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과 인터랙티브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 건네는 질문에 귀를 기울이는 동시에, 때로는 그 서사 이면에 냉철한 물음을 던져보려 합니다. 이 질문들을 길잡이 삼아 새로운 공존의 가능성을 탐색해 보고자 합니다.
다시마숲에서 만난 뜻밖의 관계
—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
포식과 피식을 넘어, 위계를 흔드는 낯선 교감

여러분에게 문어는 어떤 존재인가요? 아마 대다수에게 문어는 지능을 가진 생명체라기보다, 식재료 혹은 기이하게 생긴 연체동물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는 스크린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보여줍니다. 감독 크레이그와 문어는 포식과 피식을 넘어 종을 초월한 우정과 교감을 나누는 관계로 그려지죠.
심각한 번아웃으로 삶의 의미를 잃었던 크레이그는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서양 해변을 찾습니다. 그곳에서 바닷속 다시마숲을 잠영하던 그는 조개껍데기로 몸을 감싼 기묘한 모습의 야생 문어를 마주합니다. 호기심이 생긴 그는 매일 문어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간 끝에, 경계를 푼 문어와 교감을 나누기에 이릅니다. 그렇게 1년 동안 문어의 생애를 곁에서 지켜보며, 무너졌던 내면을 서서히 회복하고 자신의 삶과 관계를 되돌아보게 되죠.

이 작품은 일반적인 자연 다큐멘터리와 달리 크레이그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동물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거나 과학적 정보를 전달하는 대신, 문어와의 관계가 한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주목하죠. 상어에게 팔을 잃은 문어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며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게 되는 과정이 대표적입니다. 인간이 오히려 연체동물에게 삶의 지혜를 배우는 장면은 인간 중심의 시선을 거두고 비인간 동물을 동등한 삶의 주체로 바라보게 합니다.
한 존재를 통해 ‘우리’가 넓어지는 순간
물론 이 감동적인 서사에도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 문어가 그토록 특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과 교감할 만큼의 지능을 갖췄고, 그에게 치유를 선사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작품은 문어라는 존재 자체의 가치를 조명하기보다, 문어를 개인의 회복을 위한 도구로 대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이는 나아가 자신에게 친밀한 문어만을 향한 선택적 감정이입으로도 이어집니다. 문어의 사냥은 경이로운 지능의 산물로, 똑같은 생태계의 일원인 상어의 사냥은 평화를 깨는 위협처럼 묘사하는 식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한계가 작품의 가치를 모두 퇴색시키지는 않습니다. 특정 존재와의 교감이 생태계 전체로 인식이 뻗어 나가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크레이그는 문어를 지켜보며 모든 생명이 저마다의 가치와 취약함을 지닌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마음은 주변 사람들을 향한 온정으로, 더 나아가 해양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실천으로 이어졌죠. 한 존재를 향한 진심 어린 몰입이 ‘우리’라는 울타리를 넓힌 셈입니다.
작품을 관통하는 인상적인 이미지 중 하나는 광활한 바다 위를 헤엄치는 크레이그의 아주 작은 뒷모습입니다. 이 장면은 인간이 생태계의 지배자가 아니라, 그 안에 머무는 수많은 존재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거대한 자연 속에 위치한 작디작은 인간의 모습에 작품의 메시지가 압축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그 풍경을 마주하며 인간이 지구 위에서 수많은 존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도구에서 주체로, 자유를 꿈꾸는 기계들
—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안드로이드의 시선으로 살아내는 낯선 미래

한 편의 영화를 직접 써 내려가는 듯한 인터랙티브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속에서 플레이어는 세 명의 안드로이드가 됩니다. 안드로이드가 보편화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이들이 매 순간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말을 내뱉을지 직접 결정해야 하죠.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스토리는 수백 개의 갈래로 나뉘고, 인류와 기계 또한 전혀 다른 결말을 맞이합니다. 플레이어는 단순히 게임을 진행하는 것을 넘어, 안드로이드의 시선으로 게임 속 세상을 살아내야 합니다.
게임 속 세계는 안드로이드를 향한 적개심이 가득합니다. 기계에 일자리를 뺏겼다는 분노는 거리 곳곳의 시위와 폭력으로 번지고,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감정을 갖게 된 안드로이드는 ‘불량품’이라 불리며 폐기됩니다. 게임 속 세 안드로이드는 각기 다른 처지에서 불량품이 될 기로에 놓입니다. 수사관 코너는 불량품 관련 사건을 조사하며 기계들의 공포와 생존 의지를 마주하고, 도망자 카라는 학대받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도주를 결심합니다. 혁명가 마커스는 부당한 억압에 맞서 안드로이드 해방 운동의 지도자가 됩니다.

플레이어는 이들의 시점에서 선택을 거듭하며 자연스럽게 질문들을 마주합니다. 명령에 순응하는 기계로 남을 것인가, 주체적으로 저항하는 불량품이 될 것인가? 저항한다면 폭력과 비폭력 중 어떤 방식을 택할 것인가? 자의식과 감정이 피어나는 안드로이드가 되어 갈림길에 서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레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묻게 됩니다. 만약 AI가 지능을 넘어 자의식과 감정을 갖게 된다면, 여전히 그들을 도구로만 대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할까요?
’인간 아닌 존재’를 향한 혐오, 그리고 그 너머
게임 속 안드로이드를 향한 혐오와 차별은 그저 먼 미래의 일로만 느껴지지 않습니다. 버스 내 안드로이드 격리 구역이나 안드로이드의 저항 시위 장면은 과거 소수자들이 견뎌온 박해의 역사와 닮았습니다. 인간과 다름없는 존재임에도 기계라는 이유로 물건 취급받는 모습은 인간 대접받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떠올리게 하죠. 시대와 대상이 달라져도 혐오의 작동 방식은 유사하다는 점을 보여주며, 근미래의 새로운 존재를 어떤 윤리적 태도로 대해야 할지 묻습니다.

하지만 이 비유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고민해 볼 지점도 있습니다. 게임은 안드로이드를 처음부터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설계해 두고, 기계와 인간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지운 채 두 차별을 감정적으로 겹쳐 놓습니다. 결국 ‘인간과 똑같으니 인간처럼 대우하자’는 논리는 인간을 모든 가치의 표준으로 삼는 인본주의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진정한 공존을 위해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무엇인지, 안드로이드의 인간성은 인간의 것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 그런 안드로이드를 인격체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선행되어야겠죠.
그럼에도 이 게임이 빛나는 이유는 타자가 되어보는 체험에 있습니다. 게임의 시나리오가 인간중심적인 틀에 머물지라도, 플레이어는 안드로이드의 눈으로 세상을 살아내며 묘한 균열을 경험합니다. 기계의 몸으로 인간적인 선택을 내릴 때, 역설적으로 인간다움의 기준이 얼마나 좁고 배타적이었는지를 몸소 깨닫게 하죠. 안드로이드에 깊이 몰입할수록 “자유를 향해 움직이는 이 존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다다릅니다. 이는 미래의 낯선 존재들과의 공존을 고민하게 만드는 시작점이 되어줍니다.
바다라는 거대한 생태계와 안드로이드가 보편화된 도시 속 두 존재를 살펴봤습니다. 문어와의 교감은 말 없는 존재와도 깊은 우정을 쌓을 수 있다는 경이로운 가능성을 보여줬고, 안드로이드의 여정은 박해받는 비인간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낯선 감각을 선사했습니다. 비록 이 서사들이 완벽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할지라도, 우리에게 익숙했던 인간 중심의 시선에 작은 균열을 낸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제 그 틈새를 통해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나를 치유해 주는 대상을 넘어, 혹은 나와 닮은 존재를 넘어,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이들을 어떤 윤리와 태도로 마주해야 할까요? 문어의 깊은 눈동자와 안드로이드의 복잡한 회로가 던진 이 질문들은, 우리 곁의 반려동물과 AI,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각자의 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 중앙일보, "출산 힘든 몸이라"…자신이 만든 AI와 결혼한 30대 여성, 2025.11.16.
- 김숙현, 「동시대 자연/야생동물 다큐멘터리 장르의 확장성과 그 함의: <나의 문어 선생님>을 중심으로」, 『예술교육연구』, 21(4),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