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을 향한 욕망의 끝에서
독이 된 발전을 다루는 영화 세 편
기술의 발전은 ‘나’의 가치를 높이는 데 얼마나 기여했을까요.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외모를 개선할 수 있게 됐고,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더 많은 사람과 실시간으로 연결 가능한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보이는 나’와 ‘진짜 나’ 사이의 간극을 극대화하기도 했죠. 남들만큼 완벽한 외모를 가져야 한다는 압박, 끊임없이 행복한 모습을 드러내고 싶은 갈증과 타인의 삶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경은 연결과 소통을 넘어 사생활과 자아의 경계마저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문제는 항상 적정 선을 넘을 때 발생합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세 편의 영화를 통해 발전을 넘어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상태에서 삶을 개선하겠다는 집념에만 몰두하면 어디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게 될까요.
젊음이라는 욕망이 삼킨 정체성, <서브스턴스>

인간의 생애에서 ‘노화’는 가장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젊고 예뻐지기를 갈망하죠. 특히 주인공 엘리자베스처럼 방송이나 매체를 통해 보이는 직업을 가졌다면 외모가 곧 능력이라고 믿게 됩니다. 의료 기술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외모를 더 가꾸는 것쯤이야 현대 사회에선 당연한 현상입니다. 하지만 개선을 넘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원래의 내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면. 두 개의 자아는 공존할 수 있을까요?
“기억하세요, 당신들은 하나입니다”
거울에 비친 주름진 얼굴을 보며 괴로워하던 엘리자베스에게 우연히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이 배달됩니다. 늙어버린 껍질을 벗고 젊고 완벽한 외모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는 주사였죠. 단, 간단한 규칙이 있습니다. 정해진 약물만 먹되, 14일이라는 간격을 반드시 지킬 것. 원래의 몸으로 2주, 완벽한 외모로 2주씩 반복하는 삶입니다.
처음엔 생각보다 순조로웠습니다. 생기 있는 피부와 탄탄한 몸매로 태어난 그녀는 스스로 ‘수’라는 새로운 이름까지 지어줍니다. 인기를 한 몸에 얻으며 전성기 시절의 황홀함을 다시 느낍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와 수, 계속 반복되는 두 개의 자아는 결국 충돌하고, 주객전도를 넘어 본래의 나를 파괴하는 괴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자아 분열의 과정을 매우 극단적으로 묘사합니다. 문자 그대로 ‘껍질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장면은 마치 새로운 생명의 탄생 과정같기도 하죠. 더 나은 육체로 누리는 삶은 포기할 수 없는 달콤한 유혹이었고, 집착은 기괴하고 흉측한 결말을 향해 달려갑니다.
이 두 생명체의 잔인한 뒤틀림을 보며 묻게 됩니다. 자아를 짓밟고 얻은 화려한 얼굴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아름다움을 미디어와 대중의 잣대로 판가름하는 게 옳은지 말이죠. 생명 과학 기술이 고도로 발달해서 이처럼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거나 혹은 복제인간이 현실에 등장하는 세상이 온다면 우리는 존엄성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걸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술의 발달은 윤리와 도덕성을 모른척 한 채 속도만 높이곤 합니다. 희생당하는 쪽은 늘 간절한 사람들이겠죠. 당신은 완벽한 외모로 탈바꿈 할 수 있는 약물이 있다면, 복용 하시겠습니까?
가짜의 삶, <언프리티 소셜스타>

SNS의 발전은 인류를 초연결 사회로 이끌었습니다. 손가락 하나로 지구 반대편의 일상을 엿보는 기회를 얻었지만, 그와 동시에 ‘보정’과 ‘과장’으로 편집된 삶도 함께 얻었죠. 영화 <언프리티 소셜스타>의 잉그리드는 인플루언서 테일러의 화려한 일상을 동경합니다. 여기서 멈추지 못한 그녀는 자신의 초라한 현실을 버리고, 테일러를 추종하며 그녀의 취향과 일상 하나하나까지 복제합니다.
수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테일러의 삶은 과연 진짜 동경할 만한 삶이었을까요? 무작정 LA 행 비행기에 올라 테일러를 만나러 간 잉그리드는 그녀와 인연을 맺는 데 성공하고, 친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테일러의 세상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잉그리드가 추구하던 인스타그램 속 완벽한 테일러가 아닌, 곁에 있는 사람을 소홀히 하며 사진찍는 것에만 미쳐있는 여성이라는 점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잉그리드는 멈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테일러의 관심을 독점하기 위해 연극을 벌이고, 거짓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주변 인물들을 위협하는 등 점점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나는_잉그리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모습까지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잉그리드의 선택은, 역설적이게도 그녀의 목숨을 구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 영화의 가장 잔인한 부분이기도 하죠. 누군가의 마지막 모습마저 콘텐츠로 소비된다는 것을 증명하니까요.
‘좋아요’ 하나로 맺어진 관계는 진심을 주고받는 관계보다 절대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겁니다. 타인의 시선에 좌우되어 영향력만 내세우는, 허울뿐인 관계의 끝은 결국 지독한 고립이 되겠죠. 영화는 언제나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먼저 돌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보여주기식 허세가 아닌, 응원과 연대라는 기능이 SNS의 진짜 목적이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보는 눈이 있을 때 세상은 더 나아질까, <더 서클>

극중 세계 최고의 회사이자, 거대 IT기업 ‘서클’은 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개인의 모든 행동과 사생활까지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세상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단순한 논리를 제시하며 라이브 방송, 안면 인식을 통한 정보 수집이 모두 가능한 초소형 카메라 ‘씨체인지’를 내놓습니다.
인간은 누군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섣불리 나쁜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이 점을 이용해 촘촘하게 설치된 씨체인지 카메라로 각종 범죄를 예방하고, 수배 중인 범죄자의 위치를 단숨에 파악하며, 위급한 상황에 놓인 환자도 신속하게 구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목숨을 잃을 뻔한 상황에서 씨체인지 덕분에 가까스로 살아난 메이는 ‘서클’의 기술을 동경하며 직접 실험 대상이 됩니다. 마치 영화 <트루먼 쇼>의 최신 버전처럼, 모든 사생활과 일과를 영상으로 공유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죠. 하지만 범죄 예방이라는 순기능 뒤에는 사생활 침해라는 심각한 부작용이 숨어있습니다.
“비밀이 없다면, 인간은 완전해질 수 있어”
메이는 자신의 모든 일상을 공유하며 대중의 지지를 얻지만, 그 투명함의 화살은 결국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향합니다. 집과 방 안까지 침투한 카메라는 알고 싶지 않던 비밀도 드러내고, 감시망처럼 작동하던 카메라 렌즈는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메이의 친구를 고립시키고, 끝내 죽음으로 몰아넣는 도구가 됩니다.

효율과 안전이라는 명분 아래 사생활이 사라진 세상은 낙원이 아니라 거대한 감옥입니다. 고도화된 기술이 인간의 '빈틈'을 메우려 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영역인 존엄성은 증발해버립니다.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도가 개인의 존엄까지 파괴해도 되는 걸까요. '보는 눈'이 세상을 더 안전하게 만들지는 몰라도, 그 안에서 숨 쉬는 개인은 투명하게 박제된 채 서서히 죽어갈 뿐입니다.
세 영화의 공통점은 처음엔 모두 악의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완벽한 외모를 향한 바람 때문에 나의 뼛속까지 짓밟힐 줄 몰랐으며, 그럴듯해 보이는 삶이 사실 속은 썩어있었다는 것도, 모두를 위한 투명성이 서로를 향해 겨누는 총알이 될 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단지 나의 인생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었을 뿐이죠.
현재 우리는 AI와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매일 SNS를 업로드하며 자의반 타의반 개인정보를 노출합니다. 거리에는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죠. 심지어 힘들게 운동하지 않아도 살이 빠지는 시술, 노화를 막기 위한 각종 시술까지 만연해있는 사회입니다. 이런 기술의 발달에 반대한다며 사회의 흐름을 거스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쩌면 이를 잘 활용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르죠. 그리고 발전은 분명 우리를 더 나은 차원으로 데려다줄 겁니다.
하지만 세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파멸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대에 발맞추어 가는 동시에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적정 선을 지키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겠죠. 나의 자존감과 중심을 지키는 태도가 현시대에 필요한 덕목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