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토, 흔들려야 비로소 깊어지는 것
지진 이후, 노토에 남은 이들이 이어가는 것들
발전을 어떻게 측정하는가. 대개 나오는 답변은 원론적이다. 더 많은 인구, 더 높은 소득, 더 빠른 성장. 로컬의 발전을 논할 때도 마찬가지다. 지방 소멸, 인구 절벽, 고령화. 이 단어들이 반복되는 자리에는 늘 비슷한 처방이 따라온다. 사람을 끌어와야 한다. 청년이 돌아와야 한다.
그런데 이 잣대가 닿지 않는 곳이라면 어떻게 되는가. 돌아갈 기준점이 무너졌고, 되찾을 어제도 남아있지 않다면? 더 많아지거나 더 빨라지는 것으로 발전을 증명할 수 없을 때, 그 단어는 어떻게 다시 쓰여야 하는가.
2024년 새해 첫날, 일본 노토 반도에 규모 7.6의 지진이 발생했다. 해안선을 따라 쓰나미가 몰려왔고 건물이 무너졌다. 인프라 복구에만 15년 가량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대부분의 젊은 세대가 이주를 선택했다. 이미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서서히 흘러가던 지역의 시간이 한순간에 멈췄다. 어떤 기준으로 재도 숫자는 줄어들고 있었다.
그로부터 2년, 그럼에도 노토를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떠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남기로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그 선택이 만들어낸 순간들을 소개한다.
존재를 알리는 불빛

노토 반도로 향하는 길에는 재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융기된 도로, 해안선을 따라 쌓인 폐기물 더미, 아직 복구되지 못한 건물들. 인구가 빠져나간 빈자리와 재난의 상처가 겹쳐진 풍경이었다. 이런 곳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의구심이 자연스럽게 쌓이는 여정이었다.
와쿠라 온천 지구에 들어서는 순간, 어둠을 밝히는 몇몇 불빛에 걱정이 사라졌다. 일본 이시카와현을 대표하는 온천으로 약 1,200년의 역사를 가진 이 지구는 지진 이후 대부분의 료칸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 적막함 속에서도 료칸 '노토라쿠'의 불빛은 선명했다.
노토라쿠의 주인은 지진으로 건물 곳곳이 무너졌고, 한동안은 다시 문을 열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고 했다. 복구하는 동안 다른 료칸들은 하나둘 문을 닫은 채로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빠르게 영업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이유를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이 인상적이었다. "불을 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온천 지구의 불이 계속 꺼져 있으면, 남아있는 사람들도 이 자리를 포기하게 될 것 같았다."고.
재난 이후의 복구에서 '영업 재개'는 보통 경제적 지표로 읽힌다. 얼마나 빨리 일상을 되찾았는가. 노토라쿠의 불빛은 마을 사람들에게 또다른 방식으로 작동했다고 한다. '우리도 여기 있다'는 신호로.
물론 불빛 하나가 지역을 살려낼 수는 없다. 상징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을 버티게 하는 무언가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공간이 살아있어야, 그 안에서 이어져 온 것들도 살아남을 수 있다. 노토라쿠가 먼저 문을 연 것은, 이 다음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만든 일이었다.
노토라쿠 온천(日本の宿 のと楽)
https://www.notoraku.co.jp/
1 Chome-14 Ishizakimachi Kashima, Nanao, Ishikawa 926-0178 Japan
(〒926-0178 石川県七尾市石崎町香島1-14)
추락에도 버텨내는 힘

다음이 쌓이면 전통이 된다. 노토를 대표하는 공예품, 와지마 칠기는 수많은 손길을 통해 이어져 온 지역 문화다.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기술은 대를 이어 전해져 왔고, 공방은 전수가 일어나는 자리였다. 지진은 바로 그 터를 무너뜨렸다. 대대로 문화를 지켜온 이들에게, 공방을 다시 세우는 일은 건물의 복구가 아니었다. 전수의 책임을 되찾는 일이었다.
'시오야스 칠기 공방'을 방문했을 때, 공방은 이미 수리가 완료된 상태였다. 5대째 맥을 잇고 있는 공방 주인의 안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장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칠기를 만들고 있었다.
공방 주인이 강조한 것은 예상 밖의 지점이었다. 지진의 강한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칠기에는 금이 가지 않았다는 것. 나무의 결을 살리고 여러 겹의 옻칠을 쌓아 만드는 와지마 칠기의 구조가, 충격을 흡수하며 형태를 유지했다는 설명이었다.

그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던 건 단지 대단한 기술력에 감탄해서가 아니었다. 마을이 흔들리고 건물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그 안에서 만들어진 것은 살아남았다는 것. 어떤 것들은 재난 앞에서도 부서지지 않는다는, 장인의 방식으로 전하는 메시지처럼 들렸다. 수백 년간 쌓여온 기술의 층위가 재난의 충격을 흡수했듯, 쌓여온 세월은 순간의 위기를 버텨낼 완충재가 된다.
기술은 이제 공방만의 것이 아니었다. 지역 곳곳의 학교에서 다음 세대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장인의 대가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도, 전수의 방향은 오히려 넓어지고 있었다. 흔들림 속에서도 금이 가지 않은 칠기는, 이 기술이 남겨질 이유가 충분함을 스스로 증명했다.
시오야스 공방(輪島塗しおやす漆器工房)
https://shioyasushikkikoubou.com/
20 Hizume, Oisemachi, Wajima, Ishikawa 928-0032, Japan
(〒928-0032 石川県輪島市小伊勢町日隅20番地)
피해자가 아닌 전수자의 언어

수백 년 간 계승 문화 안에는 그 시간을 겪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 담긴다. 노토 철도의 가타리베 열차는 앞서 본 것들로부터 짐작할 수 있었던 재난의 순간을 강렬하게 전달했다. '가타리베(語り部)'는 이야기꾼을 뜻하는 일본어. 이 열차에서 그 역할을 맡은 건 지진을 직접 겪은 지역 주민 겸 역무원이었다.
열차가 달리는 내내, 역무원의 이야기를 따라 본 풍경은 서사를 덧입었다. 지진이 발생하던 순간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승객들과 함께 열차에서 내려 쓰나미를 피해 어디로 피하고자 했는지.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창밖을 보면, 그냥 지나쳤을 언덕이 당시 주민들이 오르던 피난처가 되었다. 같은 창밖을 보고 있어도, 이야기를 들은 사람과 듣지 않은 사람은 완전히 다른 기억을 갖게 되는 것이다.
기억은 열차가 멈추는 역마다 조금씩 다른 색을 입었다. 해당 노선은 민간 철도사들의 지원에 힘입어, 지역 안에서 가장 빠르게 복구됐다. 그 이유는 아이들의 새 학기 입학에 맞추기 위해서라고. 여기에 역마다 포켓몬스터 캐릭터까지 새롭게 그려졌다. 재난의 기억이 새겨진 노선 위에, 등교할 아이들을 위한 그림이 칠해졌다. 이 열차가 품은 기억은 그날의 아픔만이 아니었다. 그 위에 덧씌워진 다음 세대를 향한 의지이기도 했다.


가타리베 열차에서 바라본 역사와 돌고래 사진 ©주소영
색색의 역을 지나 마주한 노토의 나나오 만은 이제껏 듣고 보아온 재난이 연상되지 않을 만큼 평화로웠다. 고요하다 못해 아름다운 풍경에 믿기지 않게 재난의 여파도 여전했다. 잔잔한 바다 위, 고기잡이를 위해 세워진 전망대는 더 이상 사람을 세우지 못한다고 했다. 그 일을 맡았던 어르신은 이제 바다가 아닌 지나가는 열차 속 관광객을 향해 손을 흔드는 역할을 하셨다. 어르신과의 맞인사가 끝나고 역무원이 덧붙였다. 지진 이후 거칠어졌던 이 바다에 이제 돌고래가 돌아왔다고. 사람도, 바다도, 각자의 방식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재난 이후 지역의 이야기가 외부로 전달되는 방식은 대개 두 가지다. 피해자로 호명되어 뉴스에 등장하거나, 복구의 성공 사례로 소비되거나. 두 방식 모두 이야기의 주도권이 외부에 있다. 가타리베 열차에서는 그 주도권이 달랐다. 직접 겪은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전하는 것. 재난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과, 재난을 살아낸 사람이 그 경험을 직접 전수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소비되고, 후자는 기억된다.
노토철도 열차(震災語り部観光列車 – のと鉄道)
https://nototetsu.jp/kataribe/
To-3 Omachi, Anamizu, Hosu District, Ishikawa 927-0026 Japan
(〒927-0026 石川県鳳珠郡穴水町字大町ト33番地)
흔들림에도 버틸 수 있는 뿌리는 어디에서 오는가
지방 소멸을 다루는 담론은 대개 인구를 논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남아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데려올 수 있는가. 그 기준 안에서 노토는 실패한 지역에 가깝다. 인구는 줄었고, 젊은 세대는 떠났고, 복구는 더디다.
하지만 인구가 줄어도 남은 사람들이 그 땅의 이야기를 직접 말할 수 있을 때, 공간은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인구는 있지만 이야기가 없는 곳은, 어떤 의미에서도 살아있는 곳이 아니다.

열차를 타고 달리던 중, 멀리 신사가 보이자 역무원은 노토의 회복을 함께 기원해주길 바란다며 두 손을 모았다. 그 순간까지 들어온 이야기들이 있었기에, 탑승객 전원이 기도에 응했다. 이 땅이 겪어온 것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사람으로서 진심을 모으는 시간이었다.
응원의 마음으로 바라 본 노토는 '복구 중인 곳'이 아닌 '발전 중인 곳'이 되었다. 달라진 건 노토가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의 눈이었다. 그 이야기를 직접 전해준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발전이란 외부에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의 눈에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한 명 더 생겨난다는 것은, 지역 부흥의 또 다른 방식일 수 있다.
그래서 이 질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그 땅의 이야기를 직접 전할 수 있는 사람이 아직 거기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