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장면은 새로운 관객으로부터

관객을 변혁하려는 연극사의 사유와 실천들

새로운 장면은 새로운 관객으로부터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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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서 처음 ‘연극’이 태동한 이후로 2,500년간, 연극이 추구해온 것은 명확했습니다. 어둠 속에 앉은 관객을 무대 위 환영 속으로 끌어들여, 감정이입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만드는 것.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는 <시학>을 통해 연극을 정의합니다. “연극은 감정이입(empathy)을 통해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정화(카타르시스)함으로써 완성된다.” 관객은 어둠 속에 앉아 무대를 바라봅니다. 극중 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그들의 운명에 몰입하며, 마침내 눈물을 흘리거나 박수를 칩니다. 그리고 극장을 나섭니다. 이 때 작동하는 핵심 기제는 바로 ‘감정이입’ 입니다. 관객은 무대 위 사건에 몰입하여, 극 중 인물의 상황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경험하게 됩니다. ‘수동적 관객’의 탄생입니다. 프로시니엄 무대, 제4의 벽, 사실주의 연기. 근대 연극을 떠받쳐온 모든 장치들은 이 관객상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관객을 봉인된 환영 속으로 완벽하게 초대하는 것. 그것이 연극의 ‘발전’이었습니다. 극적 환상을 주기 위해서는 무대 위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 연극이 아니라 또다른 현실처럼 보여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20세기 초, 전쟁과 파시즘, 자본주의의 폭력을 목도한 예술가들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가? 관객을 어둠 속에 가만히 앉혀둔 채 감동을 주고 돌려보내는 것이 연극이 할 수 있는 전부인가? 발전해야 하는 것은 작품이 아니라 관객이 아닐까? 그렇게 어떤 이들은, 꽉 닫혀 있던 무대를 새로운 시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일에 매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극의 역사에서 '관객'을 재정의하려 한 예술가들의 사유와 실천을 소개합니다. 이성으로, 행동으로, 그리고 신체로. 서로 다른 경로를 택한 예술가들의 이야기입니다.

브레히트의 ‘서사극’과 낯설게 하기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미지 출처 : Getty Image

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사의 흐름을 변혁하는 ‘혁명’을 최초로 시도한 예술가는 바로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입니다. 그가 제안한 ‘서사극’은 그간 이어져 온 연극의 전통을 정면으로 거부한 혁명적 시도입니다. 브레히트 이전에는, 창작자가 설계해둔 정서적 경로를 일방향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관객에게 주어진 유일한 역할이었습니다. 관객은 생각하고 행동할 권한을 무대 위 인물들에게 위임한 것입니다. 

그러나 브레히트가 본 연극의 임무는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관객이 극장을 나선 후 현실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고,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연극은 사회를 위한 "시범(demonstration)"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의 연극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인 ‘낯설게 하기’는 관객이 극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고, 사건을 낯설게 느끼게 함으로써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게 합니다. 요컨대 브레히트는 감정이 아닌 이성에 호소하여, 관객이 무대 위 사건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사회적 모순을 발견하게끔 만드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두었습니다. 

이를 위해 브레히트는 다양한 전략을 사용합니다. 첫번째 특징이 바로 ‘해설자’의 존재입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 해설자는 무대와 객석 사이를 매개하며, 관객을 향해 질문을 던지거나 극에 개입하여 사건의 진행을 중단시키기도 합니다. 두번째 특징은 ‘노래’의 사용입니다.  이 때 노래는 감정이입을 돕거나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함이 아니라, 장면과 대화를 중단시키고 극을 해설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극 전체와 대립하는 노래의 가사는 극의 상황을 요약하거나 인물의 행동을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 외에도 극중극,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통해 앞으로 진행될 연극의 결말을 미리 ‘스포일러’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전략들은 모두 ‘극적 환상’을 파괴하고자 하는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모토는 연극을 어떻게 하면 오락적이고 동시에 교훈적일 수 있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정신적인 마약거래로부터 벗어나,
환상의 장소를 경험의 장소로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요컨대 그는 관객을 연극의 중요한 퍼즐로 격상시키고, 관객의 자세와 태도를 디자인하고자 했던 최초의 연극 예술가였습니다. 그러나 한계 또한 명확했습니다. 그가 기대했던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거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관객은 정치적으로 각성하지 못한 채, 여전히 객석에 가만히 앉아 있는 존재였습니다. 

아우구스토 보알의 '억압받는 자들의 연극'


보알의 토론 연극 이미지 출처 : La Escuela

브라질의 연극 예술가 아우구스토 보알(Augusto Boal)은 브레히트를 계승하며 반 아리스토텔레스 연극 전선에 가세한 예술가입니다. 브레히트가 관객에게 ‘생각할 권리’를 되찾아주고자 했다면, 보알은 한발 더 나아가 ‘행동할 권리’를 부여하고자 했습니다. 보알에게 연극은 시범이 아니라 ‘연습’이며, 관객은 더 이상 구경꾼이 아니라 직접 무대에 올라 해결책을 모색하는 주체가 됩니다. 이는 현실의 억압을 타파하기 위한 혁명의 예행연습이기도 합니다. 

보알은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넘어 ‘관객-배우’라는 개념을 창안합니다. 관객이 극을 중단시키거나, 직접 무대에 올라가 주인공 대신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해볼 수 있는,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 가장 민주적인 형태의 연극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관객을 직접 무대에서 투쟁하는 ‘행동하는 주체’로 해방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의 연극적 입장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용어는 바로 ‘억압받는 자들의 시학’ 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 속에서 관객을 억압해온 요소들을 타파하고자 했던 그는 배우와 관객, 무대와 객석, 주연과 조연의 분리를 거부하기 시작합니다. 장면마다 배우들이 맡은 역할을 바꾸기도 하고, 극장이 아닌 일상의 공간에서 연극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실천은 그가 창안한 ‘토론 연극(Forum Theater)'으로 이어집니다. 극에서 제기된 문제 상황을 관객 스스로 바꾸고 해결하는 논쟁과 토론, 연습의 장으로 무대를 탈바꿈한 것입니다. 허구의 무대에서 억압에 맞서 행동해본 사람은, 현실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습니다.

"연극은 아마 그 자체로 혁명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연극은 혁명의 예행연습이다."

- 아우구스토 보알 

요컨대 보알은 연극을 관객에게 돌려주고자 했습니다. 그는 브라질 군사정권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망명을 통해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친구이자 동료인 브라질의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와 함께 엘리트 교육의 대안을 모색하며, 교육과 연극, 정치 참여와 연극 사이를 연결하려 한 사회 운동가이기도 했던 그의 메소드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실천, 계승되고 있습니다.

아르토의 잔혹연극과 그로토프스키의 가난한 연극 

앙토냉 아르토의 잔혹연극 이미지 출처 : Britannica

브레히트와 보알이 공유하는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관객의 이성과 행동을 깨워야 한다는 것. 그런데 같은 시대, 전혀 다른 경로를 택한 예술가가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입니다. 브레히트가 관객의 이성을 깨우려 했다면, 아르토는 '감각'이라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아르토는 문학 서사를 무대 위로 옮겨놓는 것에 집중하던 기존의 연극을 비판했습니다. 텍스트와 언어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서구 연극의 문제라고 진단한 아르토는 신체의 움직임, 소리, 빛과 그림자를 활용하여 ‘연극성’을 복원하고자 했습니다. 언어와 서사 중심의 연극적 위계질서를 거부하고 관객에게 신체적 경험, 존재론적 충격을 전달하려는 ‘잔혹연극’을 창안합니다. 

아르토의 잔혹연극은 신화와 주술로부터 출발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제의나 멕시코의 아즈텍 문화 등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원시적 제의의 생동감을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연극을 단순한 관람이 아닌 집단적 제의로 변혁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의 잔혹연극은 무대와 객석을 분리하는 프로시니엄 구조를 해체하고, 관객을 공연의 한가운데에 배치합니다. 배우는 객석 사이를 누비고, 소리는 사방에서 쏟아지며, 갑작스러운 조명의 변화는 관객의 신체를 직접 자극합니다. 더불어 언어와 텍스트를 해체하고, 고함과 리듬, 떨림을 온전히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그가 꿈꾼 것은 페스트처럼 관객에게 침투하는 연극이었습니다. 전염병이 신체를 장악하듯, 연극이 관객의 이성을 우회하여 감각과 무의식을 직접 흔들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브레히트가 ‘생각하게 하는 연극’을 만들었다면, 아르토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연극’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진정한 연극적 경험은 평온한 감각을 뒤흔들고,
억압된 무의식을 해방하며,
일종의 잠재적인 저항으로 몰아간다.”

- 앙토냉 아르토

그러나 그의 신념이 무대에서 완벽하게 구현되지는 못했습니다. 재정 문제와 정신질환에 시달리던 그는 잔혹연극을 실현하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그의 꿈은 텍스트와 이론을 통해 후배 예술가들에게 전달되었고, 이를 실천적으로 계승한 예르지 그로토프스키(Jerzy Grotowski)의 ‘가난한 연극('Poor Theatre’)이 바톤을 이어받습니다. 

그는 아르토가 이론으로만 남겨둔 것을 실제 무대에서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로토프스키가 제안한 '가난한 연극'은 조명, 음향, 무대장치, 의상 등 연극을 구성하는 모든 외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배우의 신체만으로 관객과 직접 마주하는 것. 그에게 연극의 본질은 배우와 관객 사이의 직접적인 만남입니다. 영화나 텔레비전이 흉내 낼 수 없는, 연극만이 가진 유일한 특징은 살아있는 인간이 같은 공간에서 다른 살아있는 인간 앞에 서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로토프스키와 '가난한 연극' 이미지 출처 : Drama & Theatre

새로운 장면은 언제나 새로운 관객으로부터


브레히트와 보알, 아르토와 그로토프스키. 이들은 서로 다른 국가에서 태어났지만,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관객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연극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그들은 서로의 전략을 계승, 발전시켜 저마다의 연극론을 정립했습니다. 브레히트는 관객에게 생각할 권리를, 보알은 행동할 권리를, 아르토는 감각할 권리를 돌려주고자 했습니다. 그로토프스키는 살아있는 두 인간의 만남이라는 연극의 본질을 추구했습니다. 선택한 방법은 모두 달랐지만 방향은 같았습니다. 어둠 속에 수동적으로 앉아 있던 관객을, 무대와 함께 살아 숨쉬는 존재로 변혁하는 것. 그렇게 무대 밖의 세계를 변혁해내는 것.

그 유산은 오늘날에도 살아 있습니다. 관객이 직접 서사에 개입하는 이머시브 씨어터는 보알의 '관객-배우' 개념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형태입니다. 지역 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연기하고 토론하는 커뮤니티 연극은 보알의 토론연극이 뿌린 씨앗입니다. 텍스트 없이 신체와 공간만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퍼포먼스는 아르토와 그로토프스키의 정신을 잇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뒤 객석에서 벌어지는 토론과 대화들은, 브레히트가 꿈꿨던 '경험의 장소'가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어떤 관객일 수 있을까요? 혹은 어떤 관객이어야 할까요? 분명한 것은, 새로운 장면은 언제나 새로운 관객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