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만으로는 안되는 이유
반복이 깨진 틈에서 발견한 노력이라는 허상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루틴을 가지고 있을까요? 루틴이 있어야만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는 걸까요?
잠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아침마다 러닝머신 위에서 경제 뉴스를 읽는 모습.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진 이들의 생활은 흔히 철저히 루틴을 관리하는 이미지로 소비됩니다. 이는 생산적이고 ‘성공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추구하고, 본받고자 하는 모습일 겁니다.
루틴이라는 반복적 행위는 단순한 습관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반복은 삶을 예측 가능한 구조 안에 두기 위한 장치이며, 이를 통해 일상을 통제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루틴을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이유 역시 그들의 방식을 모방하면 비슷한 삶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루틴을 반복하고 유지하는 노력 자체가 성공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사회적 신념도 작동하죠.
하지만 아키 사사모토(Aki Sasamoto)는 이러한 전제를 흔듭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는 루틴을 깨거나, 반대로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실험을 통해 반복의 의미를 다시 묻습니다. 루틴이라는 법칙을 잠시 멈췄을 때 생기는 가능성, 개인의 한계, 그리고 외부 환경이 삶에 개입하는 방식까지. 이번 아티클에서는 그의 작업을 통해 자신을 통제하는 ‘노력 신화’의 의미를 재고해 봅니다.
루틴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시작했던 루틴은 어느 순간 강박으로 변해 삶을 조여오기도 합니다. 아주 작은 규칙을 지키지 못했을 뿐인데 불안해지고, 곧이어 이것 하나 해내지 못했다는 자기비난이 뒤따릅니다. 하지만 사사모토는 이러한 압박이 깨지는 ‘틈’의 시간을 통해 삶이 생각보다 엄격한 통제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사사모토는 평소 바에서 술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일상은 급작스럽게 중단됩니다. 일상의 루틴이 불시에 끊긴 바로 그 순간, 그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을 보기 시작합니다. 바텐더가 먹는 도넛, 그와 아무렇지 않게 나누는 짧은 대화, 술잔이 부딪히며 나는 소리. 루틴 속에서는 지나쳤을 사소한 감각들이 낯설게 다가왔고, 영감이 되어 실제 작업으로 이어집니다. 반복이 깨진 틈에서 창작의 계기와 자극이 발생한 셈이죠.


이미지 출처: Art21(좌), Contemporary Art Library(우)
픽션 다큐멘터리 <An Artist Walks into a Bar>는 이러한 감각의 변화를 실제 작품으로 전환해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바텐더가 먹던 도넛은 숲 한가운데에서 관객과 작품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매개가 되었고(<Do Nut Diagram>), 유리잔은 특수 제작된 커다란 유리공 안에서 공기에 의해 끊임없이 구르며 소리를 냅니다(<Past in a future tense>). 바텐더와의 대화는 관객을 참여시키는 퍼포먼스로 이어졌죠(<Wrong Happy Hour>).


이미지 출처: Art21(좌), Akeroyd Collection(우)
생각해보면 루틴을 멈추는 일은 창의적 사고의 전제가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창의력을 위해 꾸준히 인풋과 아웃풋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배웁니다. 그러나 의외로 기발한 생각은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떠오르죠. 에디터로서 글을 쓸 때도 책상 앞에서 자료를 찾아 고민하는 시간만큼,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거나 친구들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을 때 불현듯 떠오르는 문장이 글의 중심으로 이어지기도 하니까요.
버티지 못한 나는 나약한가
“버텨라, 그것이 이기는 것이다.”_드라마<미생>
드라마 <미생>의 한 대사입니다. 버틴다는 건 한국 사회와 개인을 지탱해 온 원동력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믿음은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게 했고, 루틴의 반복을 멈추지 않게 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혹은 평생 이렇게 버티며 살아야 하는 걸까요?

아키 사사모토는 ‘항복점(Yield Point)’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재료공학 용어인 항복점은 물체가 외부의 영향으로 탄성을 잃고 더 이상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의미합니다. 이 개념을 인간에게 확장해 볼 수도 있겠죠. 항복점이 낮다면 작은 자극에도 흔들릴 수 있고, 반대로 지나치게 높다면 계속 버티는 데에만 에너지를 쓰다가 번아웃에 이르거나 방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는 계속해서 항복점을 높이라고 말하며, 항복점이 낮은 사람은 의지가 없는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사사모토는 동명의 퍼포먼스 <Yield Point>에서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며 항복점을 찾기 위해 자신을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거대한 쓰레기통을 옮기고, 그 뒤 숨겨진 트램펄린에서 반복적으로 뛰는 행위를 통해 묻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얼마나 탄력적인가? 우리는 스스로를 어느 지점까지 통제할 수 있는가? 고통과 스트레스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력이란 무엇인가?

하지만 작가가 몸소 보여주듯 항복점은 결코 객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삶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임계점을 스스로 알고, 그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 일입니다. 각자의 한계는 분명 존재하니까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노력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속도로 나아가며, 필요하면 멈출 줄도 아는 능력입니다. 각자의 항복점을 알고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삶은 지속 가능성을 갖기 시작합니다.
어쩔 수가 없다
루틴을 잠시 쉬어도 된다는 것, 각자의 임계점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고 해도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버텨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과 더 발전해야 한다는 요구는 계속해서 우리를 조급하게 만들고,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는 삶 앞에서 우리는 다시 흔들립니다.

59회 베니스 비엔날레를 위해 제작된 사사모토의 설치작품 <Sink or Float>는 우리가 놓인 현실적·외부적 조건을 시각화합니다. 병뚜껑, 달팽이 껍데기, 커피 리드, 돋보기 같은 잡동사니들이 에어하키 테이블처럼 설계된 싱크대 위에서 공기의 흐름에 따라 떠오르고, 가라앉고, 서로 부딪히며 움직입니다. 제어할 수 없는 공기 속에서 부유하는 사물들은 가속화된 현대 사회에서 현실에 흔들리는 개인을 은유합니다.

우리는 때로 계획대로 흘러가는 순간을 경험하지만, 아무리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대비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밀려나기도 합니다. 사사모토는 이러한 상황을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희망과 실망이 동시에 결정되는 순간”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의 삶은 결코 노력과 의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환경적 힘과 우연이 우리를 예상치 못한 지점으로 데려간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겠죠.

결국 내가 정해 둔 길, 혹은 사회가 ‘옳다’고 말하는 길에서 벗어나더라도, 그것이 곧 실패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탓으로 돌릴 필요도 없습니다. 노력만으로 목표에 도달할 수 없고, 운과 타이밍, 환경과 조건이 함께 맞물릴 때에만 가능한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경험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변수가 삶을 예측 불가능하게 하더라도 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이죠. 목표와 계획이 성과에 미치지 못했다고 해서 스스로를 몰아붙이는게 아니라 다시 방향을 조정하는 태도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노력’이 아닐까요?
늘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저 또한 커리어를 위해, 혹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끝없이 루틴을 만들고 사이드잡을 늘리며 하루를 촘촘히 채웠습니다. 한국 사회가 오래도록 반복해 온 “노력하면 된다”는 공식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한 채 ‘갓생’을 살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였죠. 한국을 떠나왔음에도 불구하고요. 그러나 도쿄 현대미술관에서 아키 사사모토의 작업을 보며 삶을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루틴을 짜도 삶은 예기치 않은 변수 하나로 쉽게 비선형으로 흐릅니다. 그 순간 깨닫게 됩니다. 반복을 강화한다고 해서 삶을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의지나 능력, 노력의 부족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요. 사사모토의 작업은 반복이라는 구조 자체가 성과나 선형적 삶을 보장하는 공식이 아니라, 오히려 우연과 환경에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 열린 과정임을 말합니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 우리가 스스로에게 씌웠던 과한 책임과 자기비난을 전복하죠.
결국 반복을 이해한다는 것은 삶을 완벽히 조율하려는 환상에서 한 발 물러서는 일입니다. 루틴을 버리라는 뜻은 아니지만, 루틴은 나를 압박하는 규율이 아니라 삶을 견디게 하는 리듬이 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습니다. 우연과 반복이 뒤섞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리고 스스로를 조금 더 너그럽게 대하는 감각. 그 지점에서야 우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갑니다.
아키 사사모토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