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대는 삶과 마음을 조율하는 음악 만화 3선

인생의 화음을 찾아가는 청춘의 성장기

삐걱대는 삶과 마음을 조율하는 음악 만화 3선

음악은 소리를 맞추는 일이지만 실은 마음을 맞추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혼자 연습할 땐 몰랐던 감정이 누군가와 함께 연주할 때 비로소 드러나죠. 곡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어설픈 마음, 조율되지 않은 관계는 어딘가 부족한 음악으로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그래서일까요. 음악을 소재로 한 만화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유독 깊게 담깁니다. 연주를 통해 서서히 가까워지는 친구, 충돌하고 갈등하면서도 결국 서로의 소리를 이해해 가는 밴드, 과거의 시련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인물까지. 악기 너머에 있는 사람과 마음을 맞춰 가는 과정이 음악의 리듬처럼 때로는 경쾌하고 때로는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이번에 소개할 만화들은 ‘음악’이라는 공통된 키워드를 통해 ‘관계’와 ‘성장’이라는 보편적인 고민을 풀어냅니다. 다정하게, 격렬하게 때로는 아프게 각자의 균형을 찾아가는 청춘의 이야기 속에서 당신의 마음에 닿을 소리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격렬하고 자유로운 재즈의 맛

이시즈카 신이치, 『블루 자이언트

이미지 출처: 대원씨아이

주인공 다이는 친구가 데려간 재즈바에서 처음 들어본 재즈의 격렬함에 깊이 감동합니다. 그날 이후 다이는 세계 최고의 재즈 연주자가 되기로 결심하죠. 갑작스럽고 엉뚱해 보이는 목표였지만 바보 같을 만큼 솔직하고 정직한 것이 다이스러웠습니다. 고교 3년 내내 다이는 강변에서 혼자 색소폰을 연습합니다. 매일 부딪히듯 연습하던 다이를 눈여겨본 사람들이 하나둘 생깁니다. 악기점 주인의 소개로 재즈바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었지만, 결과는 ‘시끄럽다’라는 혹평. 충격을 받은 다이는 스승 유이를 만나 음악의 기초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합니다. 졸업 후 다이는 꿈을 좇아 도쿄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재능이 전부라 믿는 천재 재즈 피아니스트 유키노리를 만나고, 두 사람은 유닛을 결성합니다. 고교 시절 친구인 타마다까지 드럼으로 합류해 십 대 재즈 밴드 ‘JASS’가 탄생하죠. 세 사람은 최고의 밴드가 되기 위해 달려갑니다.

JASS의 음악은 세 사람의 각각의 재능과 열정 위에 완성되는 균형입니다. 유키노리는 다이의 거침없는 성장과 모든 것을 쏟아내는 연주에 충격을 받고, 타마다는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면서도 묵묵히 연습을 이어갑니다. 세 사람의 조율되지 않은 소리와 마음이 점차 하나로 모여갑니다. 서로 다른 만큼 세 사람의 진심이 통해 음악으로 나타날 때 더욱 묵직한 감동이 몰려옵니다.  

블루 자이언트는 스포츠 만화처럼 강렬한 쾌감을 선사합니다. 음악에 승패는 없지만 다이는 매 연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죠. 치열하게 부딪히고 땀으로 길을 내며 성장해 가는 다이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뜨겁게 만듭니다.

영화화된 블루 자이언트는 다이의 도쿄 상경 이후를 다룹니다. 일본의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우에하라 히로미가 음악감독을 맡아 원작의 감동을 이어갑니다. 만화에서 종이를 뚫고 나올 듯한 격렬한 선으로 표현된 JASS의 열정적인 음악을 영화 사운드트랙과 함께 직접 느껴 보길 추천합니다.

영화 『블루 자이언트』 사운드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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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자이언트 1 : 알라딘

닫혀있던 마음을 열어주는 재즈의 섬세한 선율

코다마 유키, 언덕길의 아폴론

이미지 출처: 애니북스

이 만화는 1966년의 일본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재즈를 통해 친구가 되고 사랑을 하고 아파하며 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카오루는 언덕길 위에 있는 학교에 가는 길이 괴롭기만 합니다. 잦은 전학 탓에 학교는 특별한 애정도 없는 곳이 돼 버린 지 오래인 데다 전학 첫날부터 학교에서 싸움이라면 제일 가는 문제아 센타로와 안 좋게 엮였기 때문이죠. 일하러 떠난 아버지 때문에 삼촌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마음 붙일 곳 없이 지내는 카오루에게 피아노는 그가 외로움을 잠시 잊게 해주는 친구였습니다.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는 친구 리카코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레코드 가게 지하실에서 피아노를 발견한 카오루는 반가워합니다. 하지만 곧 즐겁게 드럼을 연주하는 센타로의 의외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죠. 재즈가 아니면 음악이 아니라는 센타로의 말에 자극받은 카오루는 승부욕이 발동해 처음으로 재즈를 연습합니다.

Miles Davis의 Bag’s Groove 합주를 시작으로 카오루는 재즈 밴드의 일원이 됩니다. 무슨 곡인지도 모른 채 화음만 맞추며 연주에 합류한 카오루는 될 대로 되라며 건반을 두드리는 순간 오히려 큰 즐거움을 느끼죠. 학교를 마친 후, 방학 내내 지하실에 모여 연습하는 나날이 이어집니다. 언덕길은 어느새 반갑고 설레어 뛰어 내려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늘 경직되어 웃음없던 카오루의 얼굴에도 드디어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재즈를 연주하며 한 음 한 음 즐겁다는 감각을 느끼게 되었죠.

합을 맞추며 연주의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서로 알지 못했던 깊은 이야기가 하나둘씩 드러납니다. 센타로에게도 카오루는 선물 같은 친구였습니다. 매일 혼자 드럼을 연습하던 그에게 처음으로 함께 연주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이었으니까요. 센타로와 오랜 시간 단짝 친구로 지낸 리카코에게도 카오루는 각별한 존재로 다가옵니다.

누군가와 마음을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정말 소중한 일입니다. 서툴고 불협하던 시절을 지나, 조금씩 조율되어 가는 청춘의 소리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언덕길을 따라 재즈가 흐르던 그 시절을 직접 만나보세요.

『언덕길의 아폴론』 플레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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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길의 아폴론 1 : 알라딘
최근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작가로 손꼽히는 코다마 유키의 첫 장편 연재작으로 2009년 ‘이 만화가 대단하다’ 여성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학원물 특유의 풋풋함과 설렘 가득한 이야기에 60년대 일본…

마음으로 연주하는 피아노

아라카와 나오시, 『4월은 너의 거짓말

이미지 출처: 학산문화사

주인공 코세이는 어렸을 때부터 콩쿠르 1등을 휩쓸던 천재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과거형인 이유는 피아노 선생님이기도 했던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청각에는 아무 이상이 없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의 연주 소리만 들리지 않게 되었죠. 사실 코세이는 엄마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엄마를 기쁘게 하려고 필사적으로 연습했지만 돌아오는 건 냉정한 폭언과 폭력이었죠.

평범한 중학생으로 살아가던 어느 날, 코세이 앞에 악보보다 자신만의 해석을 우선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카오리가 나타납니다. 자유롭게 연주하는 그녀는 ‘메트로놈’이라 불리던 코세이의 정확한 연주에 균열을 냅니다. 카오리는 코세이의 음악을 다시 꺼내기 위해 끊임없이 손을 내밀고 두 사람은 함께 연주하며 점점 가까워집니다.

이 작품은 코세이가 자신의 트라우마에 직면해 엄마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 중심에 클래식 음악이 있습니다. 특히 코세이가 엄마가 생전에 자주 연주하던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슬픔’을 연주하며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엄마의 부재를 인정하고, 음악을 통해 엄마와 자신이 계속 이어져 있음을 깨닫게 되죠. 무미건조했던 코세이의 음악에 어느덧 그만의 색이 더해집니다.

주인공 이야기뿐만 아니라 음악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다른 연주자들의 에피소드도 흥미롭습니다. 처음엔 무너뜨려야 할 경쟁자였던 이들이 음악을 통해 연결된 가장 절친한 친구로 변해갑니다. 음악은 내면의 두려움과 불안을 해소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계기가 됩니다. 결국 이들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연주가 아닌 각자의 음악에 더욱 몰입합니다. 삶과 음악,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이 따뜻한 이야기를 음악과 함께 감상해보세요.

『4월은 너의 거짓말』 플레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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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너의 거짓말 1 : 알라딘
2013년 강담사 만화상 수상작.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 그림 작가의 작품으로, 엄마의 죽음 이후 피아노를 못 치게 된 소년이 열정적인 소녀를 만나면서 운명이 바뀌어가는 이야기를 그린 아름다운 청…

음악은 누군가의 손끝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함께할 때 더욱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냅니다. 세 작품의 음악은 삶의 균열을 조율하며 조금씩 여러 존재들과 마음을 맞춰 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서로 다른 재능이 섞이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고, 모난 마음이 재즈를 매개로 우정이 되며, 차갑게 멈춰버린 마음이 클래식으로 다시 흐릅니다.

이 만화들을 읽다 보면 우리도 문득 근심을 덜어낼 무언가를 찾고 싶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마음을 담아 표현하며 일상에서 삐걱대던 마음을 다듬어 가는 그 무엇이든지요. 단번에 찾기 어렵다면 우선은 이 만화에 기대보는 건 어떨까요.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이 만화들이 건네는 다정한 선율에 귀 기울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