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는 소리까지 느끼게 하는 힘

음악 영화에서 소년만화를 찾다

들리지 않는 소리까지 느끼게 하는 힘
© 판씨네마

재즈를 소재로 한 동명의 원작만화를 영화로 재현해낸 『블루 자이언트』는 재즈밖에 모르는 바보 주인공 다이가 도쿄에 상경하며 겪는 드라마를 그린다. 재즈가 소재이기 때문에 재즈 애호가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겠지만, 재즈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블루 자이언트』는 드라마적으로, 또는 청춘물로서 주인공 다이와 같은 밴드(이하 JASS)멤버 유키노리와 슌지의 성장을 보는 것 자체로도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온다. 재즈를 몰라도 전혀 상관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JASS의 각 멤버들이 살아오며 겪은 드라마가 흥미를 돋우고 그들의 열정에 감동하며 역으로 용기를 얻기도 한다. 꿈을 향해 달려가던 시절을 추억하거나, 지금 무언가 도전하고 싶지만 애매하게 고민하고 있는 당신이라면 이 삼총사에게 주목해보자. 청춘에 두고 온, 잃어버린 내 마음에 무언가. 그 무언가의 불씨를 일깨우고 싶다면 JASS의 뜨거운 파란 열기가 도와줄 것이다.

무한긍정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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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루 자이언트』는 원작 만화 1부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주인공 다이가 도쿄로 상경해 JASS를 결성하고, 실력을 갈고 닦으며, 도쿄 최고의 라이브 클럽 ‘쏘 블루’에 도전하는 모습을 그린다. 어쩌면 한낱 고등학생의 패기처럼 느껴지도 하는 다이의 도전에서 청춘에 대한 부러움과 동시에 현실의 벽을 생각하며 바라보는 조금은 냉소적인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과하면서도 이 무모함 때문에 두 동료들은 다이와 함께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 과함이 확신을 부르고 왠지 될 것만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다이의 면모에서 두 캐릭터가 떠올랐다. 사고뭉치에서 결국 증명해내는 강백호와 나루토다. 이들의 공통점은 안되는 일에도 무조건 된다는 생각으로 밀어붙인다. 그래서인지 『블루 자이언트』는 소년만화적 서사를 느끼게도 한다. 청춘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끓어오름을 말이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이런 '무한긍정’의 성격이 민폐라고 지적을 하지만, 가상이 아닌가. 가상에서라도 이런 무한긍정 속에서 왠지 나도 무언가에 도전을 했을 때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에너지를 받아가려 한다. 내 마음 안에 꽁꽁 숨겨둔 꿈을 한조각 꺼내어 이루어 내고 싶은 마음을 자아해 내는 것이다. 너무 어른스러운 시선을 잠시 접어두고 그들을 응원하게 되는 그런 마음을.

세명의 청춘, 세가지 방식

좌측부터 유키노리, 다이, 슌지 © 판씨네마

다이를 포함한 유키노리와 슌지 이 셋은 우리의 청춘 시절을 모두 대변한다. 다이를 보며 고등학교 시절 미술학원에 다니던 때가 떠올랐다. 나보다 늦게들어온 한 친구는 늘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계속 질문하고 물어봤다. 그렇게 실력이 단기간에 일취월장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처럼 틀렸을까봐 조마조마해 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마음보다는 앞만 보고 그저 달리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유키노리는 현실의 벽 앞에서 취업할 회사를 수도권과 지방 사이에서 고민하던 친구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감한 슌지에게는 늦게라도 자기가 원하는 일을 향해 가는 나를 동조시켰다.

각자의 상황에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온다. 그런데 이 세 캐릭터가 각자의 방식으로 그 순간을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다 보니, 관객도 "아, 나도 내 방식대로 해볼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슌지의 경우는 늦은 시작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많은 공감을 일으킬 것이다. “이 나이에 이직할 수 있을까?”, "지금 시작해도 될까?"라는 그런 마음 말이다. 이런 식으로 단순한 영화로 접근하기 보다 "포기하고 싶을 때" 위로가 되는 영화로 접근한다면 영화가 전달하는 에너지를 모두 흡수할 수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냐.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 타마다 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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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셋의 재즈에도 살아온 인생이 속속이 묻어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다이의 솔로에 유키노리는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여야하는 정제된 시스템을 가르치며 다이의 무모함을 한꺼풀 세련되게 다듬는다. 도전적인 다이의 성격과 맞춰진 길을 따라온 천재 유키노리, 그리고 새하얀 도화지에서 시작한 슌지는 그 미술학원의 한 친구처럼 빠른 발전을 보이며 만화(晩花)한다.

열정을 시각화하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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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피아니스트 히로미가 직접 참여한 OST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다. 단순히 배경음악이 아니라, 재즈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캐릭터들의 감정과 성장을 음악으로 대변하며 관객을 몰입시킨다. JASS의 첫 라이브를 장식하는 ‘FIRST NOTE’는 그들의 열정처럼 빠르고 강렬한 멜로디로 시작되고, 당당히 쏘 블루에 섰을 땐 파워풀한 진군가처럼 느껴지는 ‘WE WILL’까지 이렇듯 JASS의 연주 장면에서는 세 명의 서로 다른 음악적 개성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과정을 통해, 이들의 관계 변화와 성장을 음악적 언어로 표현해낸다. 그들의 음악 속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연주 장면에서는 2D에서 3D로 전환되는 부분이 아쉽긴 하지만, 이는 역동적인 연출을 위해선 필연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연주가 시작되면 단순히 음악적 나열이 아니라, 다양한 구도가 번갈아가며 리듬감 있게 연출되고, 스케치로 러프하게 표현되며 미려하게 흘러가거나, 연주자들의 땀을 이용한 연출이라던지, '요리왕 비룡' 또는 '따끈따끈 베이커리'가 생각날 정도로 요란스럽고 오버스러운 연출들이 재즈의 묘미를 알려주고 있다. 특히, 다양한 색의 전환과 프리즘 효과, 특히 유키노리의 솔로파트에선 화려한 손가락 모션이 눈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시각적 파장들은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며,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온몸으로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관객들은 격정을 숨기지 못하며 박수를 보낸다. JASS를 알든 알지 못하든 그들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노력을 알아챈 것처럼.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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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노리의 사고는 정말 가슴 아프다. 하지만 그 절망의 순간에서도 음악은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 각자의 솔로를 펼치며 마음에 있는 푸른 열정을 모두 쏟아낸다. 재즈를 모르는 나도 "이것이 재즈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결국 영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꿈을 향한 길에는 각자 다른 방식이 있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계속 나아갈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다이의 무모한 열정, 유키노리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의 고민, 슌지의 늦은 시작, 이 모든 것이 우리 삶의 어느 한 부분과 닮아있다.

혹시 지금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어서 망설이고 있다면, 『블루 자이언트』를 보길 권한다. JASS의 뜨거운 연주가 당신 가슴속 깊이 잠들어 있던 그 무언가를 다시 깨워줄 것이다. 그리고 말해줄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다시 시작해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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