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 품어낸 환희, 크리스티앙 보뱅
세상의 경이로움을 바라보는 가장 고요한 방법

크리스티앙 보뱅(1951-2022)
그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크뢰조에서 태어난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입니다.
투명하고 섬세한 문체로 삶과 죽음, 글쓰기와 사유, 사랑과 고독, 깊이와 표면의 양극단을 같은 선상에 펼쳐 보이며, 그것들이 서로를 반(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의 반(半)일 수 있음을 입증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필자는 그를 감히 철학가이자 사색가로 부르고 싶습니다.
보뱅의 글은 글쓰기 행위에 대한 깊은 성찰로 가득합니다. 단순히 인체의 역동적 에너지를 소모하며 문자를 그려내는 행위에 그치지 않으며, 글쓰기를 수평적 관계의 확장 수단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글쓰기를 자아와 타자, 그리고 세계와 대면한 채 수직적 깊이로 들어갈 수 있는 문으로 제시합니다. 그 여정에서 글쓰기는 존재의 본질과 마주하는 필수적 행위가 됩니다.

그의 소박한 삶은 곧 그의 글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글쓰기는 존재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행위였고, 그 진실은 고독 속에서 발견됩니다. 그래서 보뱅은 문단과 거리를 두었고, 물질지향적 삶보다 형이상학적 삶을 더 높은 가치로 삼았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글쓰기가 어떻게 깊이와 표면, 고독과 연결을 아우를 수 있는지 명확하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보뱅이 바라본 세상의 빛과 찬란함에 스며든 삶의 흔적을 글로 풀어낸 세 작품을 소개합니다.
『환희의 인간』

평범하다는 것이 과연 중요하지 않음으로 그 의미가 귀결될 수 있을까요?
보뱅은 지나치게 일상적인 것들조차 경이로움을 부여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아무것들로의 신분 상승이 일어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 내가 먹고 마시고 보고 만지는 그 행위의 모든 객체들은 내일이 된다 하여 변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들도 시간을 머금어 낡아지겠지만 말입니다. 그것들은 나에게 매일 다른 주제로 말을 걸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 자리에 머물고 있을 뿐. 그것이 평범함입니다. 그래서 보뱅은 그들을 주시합니다. 그리고 대화를 건넵니다. 가장 고요하고 정적인 방식으로요. 그렇게 모든 것들은 의미가 됩니다. 애초에 의미 없이 태어난 사소한 것들은 없음을 인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나의 다정함과 섬세함이 점철되어 삶은 시로 채워져 갑니다.
환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즐겁고 기쁜 일을 기꺼이 ‘환희’라 하지만, 보뱅에게 ‘환희’는 가볍지 않습니다. 동적이지 않으며, 앳되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고독의 자리에서 한참을 어둠 속에 지새워 본 자만이 그 끝에서 발견하는 내면의 빛을 찬미합니다. 긴 밤을 지나면, 청명한 아침의 밝음이 더없이 반가운 법입니다. 어둠이 남긴 자리에 스며든 빛은, 어쩌면 환희의 진정한 얼굴일지도 모릅니다.

"한 부인이 자기 아이가 네 살 때부터 술라주의 그림을 좋아했는데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그 아이와 비슷한 나이 때 술라주는 눈이 내린 풍경을 모두 검게 칠했다. 나는 내 앞에 있는 아이를 이해한다. 어린아이였던 술라주도 이해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설명할 수가 없다. 설명으로는 결코 이해시킬 수 없다. 진정한 깨달음의 빛은 누군가가 결정할 수 없는 내적 분출인 영감에서만 올 수 있는 것이다." - 40page
"단 한 편의 시라도 주머니에 있다면 우리는 죽음을 걸어서 건널 수 있다. 읽고, 쓰고,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하는 삼위일체다." - 84page
『빈 자리』

"언제나 말해지지 않는 것, 그것이 진실이다. "
보뱅은 부재를 노래합니다. - 관조적이되, 온화하게.
그 부재는 외로움이 아니라 기다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슬픔이 우리를 지배하기보다 애틋함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보뱅에게 부재는 깊은 개인적 체험에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빈 자리』에서 그는 상실을 애도하는 차원을 넘어, 부재 자체를 하나의 존재 방식으로 바라봅니다. 침묵과 묵상의 태도로 빈 공간을 그저 여백 그 자체로 받아들이려 하지요. 부재 또한 존재의 흔적이니까요.
부재는 존재로 되돌아보게 합니다. 지나간 유년의 그림자와 흘러간 청춘의 계절이 떠난 그 자리에 머물며, 깊이 숨을 들이마십니다. 존재의 잔향이 혹여 숨결 속에서 살아남아 그것이 번성하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이러한 부재의 자각은 삶을 차분히 바라보는 힘을 줍니다. 거대해진 현실과 태엽 같은 일상이 끊임없이 우리를 재촉하지만, 삶이 바다라면 우리는 그 위를 떠다니는 존재일 뿐입니다. 녹록지 않은 순간들은 파도가 되어 우리를 흔들지만, 우리는 그 파도에 맞서 헤엄치려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몸의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부유하면 됩니다. 거추장스러운 '인위의 것'을 벗어 던지고, 자연스러운 '무위의 존재'로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보뱅에게서 배우는 용기입니다.
‘경이로움이란 죽음을 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쓰라림과 어두움 그리고 삶의 다른 모든 것들을 대할 때처럼, 첫 경험의 타는 듯한 아픔 속에서, 전례 없는 깨달음의 신선함 속에서 죽음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작은 파티 드레스』

작은 파티 드레스, 이 책은 독서의 유익과 글쓰기의 유희를 찬란하게 들려줍니다. 그리고 세상의 본질과 사랑의 속성이 차분하게 드러납니다.
보뱅은 책을 읽는 이유를 본인의 삶 속에서 괴로워하는 생명을 보기 위해서, 그리고 그 고통이 제자리를 찾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이 대목은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참선'을 닮아 있습니다. 단순히 마음을 고요히 집중시키는 행위를 넘어, 내면의 산란함을 관찰하며 현상의 본질을 통찰하는 방법이니까요. 보뱅이 평생을 책을 통해 얻고자 한 유일한 욕구이자 삶 최고의 절대적 가치로 보입니다.
고독은 부정이고 결핍된 사랑이 아니라, 태초부터 본인의 내면 깊은 곳에 머물고 있었고, 영혼의 사유를 통해 범세계적인 환희와 사랑을 만날 수 있는 필수적인 삶의 일부였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의 없다. 가난한 삶만 있으면 된다. 너무 가난해 아무도 원치 않는 삶. 신 혹은 사물들을 피난처로 삼는 삶이다. 그곳에는 무(無)가 차고 넘친다." - 91page
어쩌면 보뱅은 속세를 등진 것이라, 애초에 그것이 자신의 관심 영역 밖이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등졌다'라는 표현에는 욕망과 그 좌절로 인한 자발적 자기보호라는 뉘앙스가 풍기지만, 보뱅에게 부귀영화는 처음부터 추구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진정한 풍요는 타인으로부터 수여받는 가시적 보상이 아니라, 오직 자신만이 충족시킬 수 있는 비물질적 가치였을 테니까요. 그저 영혼의 자유를 위한 넓은 목초지만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필자는 독서를 즐깁니다. 흰 종이에 적힌 검정 글씨의 의미를 해독하는 행위. 책을 읽는 나는 마치 고고학자 같습니다. 이제 책은 물건에 대한 애정과 집착을 넘어, 독서라는 정적 행위가 나에게 주는 편안함에 이릅니다. 더 이상 좋은 책이나 정석의 독서 행위란 실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의 책도 단일한 의미를 담지 못하니, 책은 그것을 읽는 사람이 주체적으로 해석을 만들어가는 창작 행위입니다 .
가장 고요하지만 다채로운 행위. 고독하지만 축제처럼 느껴지는 순간의 장. 이것이야말로 예술로의 삶이 아닐까요.
당신의 눈 속, 삶의 저변. 즉 근원에 가 닿는 또 다른 독서만이 당신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당신 안에 자리한 책의 뿌리로 직접 가닿는 독서, 하나의 문장이 살 속 깊은 곳을 공략하는 독서. - 48page
책을 읽는 순간 당신은 당신의 삶으로부터 삶 자체로, 단순 현재에서 완료된 현재로 건너간다. - 99page
편안하게 음독하기엔 부드러운 질감의 책은 아닙니다. 다만 나를 스쳐가는 문장들이 그저 무한의 시간 속으로 흘러간다는 필연을 받아들인다면, 분명 어느 한 문장만큼은 우리 안에 남아 내면의 영원으로 스며들어가는 풍요로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삶은 결국 내 안에 진득하고 깊게 머물며 남아있는 단 하나만으로도 든든해질 수 있으니까요.
보뱅이 우리에게 건네는 것은 거대한 철학이 아닙니다. 그저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경이를 발견하는 눈, 부재 속에서 기다림을 읽어내는 마음, 그리고 독서를 통해 존재의 진심을 투영해 보는 일입니다. 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며, 그 속에서 고요하지만 진실된 환희를 발견하는 여정입니다.

"나는 하늘의 푸르름을 바라본다. 문은 없다. 아니면 오래전부터 문은 이미 열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끔 이 푸르름 안에서 꽃의 웃음과 같은 웃음소리를 듣는다. 곧장 나누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소리를. 그 푸르름을, 당신을 위해 여기 이 책 속에 담는다." -『환희의 인간』중